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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칼럼] 기다림, 그 소망의 분투

중앙일보 2013.08.19 00:48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유럽의 여름은 투르 드 프랑스의 계절이다. 수백의 은륜(銀輪)이 프랑스 국경을 넘나들며 알프스 산록의 푸르고 울창한 숲길, 피레네 산맥의 깎아지른 바윗길을 돌아 20여 일 동안 장장 4000여 ㎞를 질주하는 투르 드 프랑스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사이클 경기다.



 역대 투르 드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챔피언은 고환암의 역경을 이겨내고 7년을 내리 우승한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이었다. 그러나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진정한 챔피언은 암스트롱이 아니라 독일의 얀 울리히 선수다. 그는 암스트롱이 처음 우승한 1999년부터 줄곧 2위에 머물러 온 암스트롱의 숙적이었다.



 2003년, 울리히와 다섯 번째 대결을 벌이던 암스트롱은 어이없게도 제15구간에서 구경꾼의 가방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암스트롱에게는 절망의 순간, 울리히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울리히는 넘어진 암스트롱 곁에 사이클을 세우고는 그가 일어나기를 묵묵히 기다렸다. 잠시 뒤 암스트롱이 일어나 다시 달리기 시작하자 울리히는 그제야 페달을 밟고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울리히는 또다시 암스트롱에게 우승컵을 내주고 말았다. 참 바보 같은 짓이었지만 누구도 그를 바보로 여기지 않았다. 승부 조작도 마다 않는 각박한 경기의 현장에서 불운하게 넘어진 라이벌이 다시 일어서기를 넉넉히 기다려 준 울리히의 배려를 스포츠팬들은 ‘위대한 멈춤’이라고 극찬했다.



 암스트롱은 빨리 달렸고 울리히는 바르게 달렸다. 그 차이는 몇 년 뒤 뜻밖의 결과로 나타났다. 2012년 국제사이클연맹(UCI)은 암스트롱이 지속적으로 금지 약물을 복용해 온 사실을 확인하고 그의 모든 수상 실적을 박탈했다. 2003년 우승 자격도 박탈됐으니 당시 2위였던 울리히가 그해의 진짜 챔피언인 셈이다. 울리히의 기다림은 소극적·수동적인 방관의 자세가 아니었다. 소망 가득한 분투(奮鬪), 진정한 승리의 에너지였다.



 달리는 것이 성장이라면 기다리는 것은 성숙이다. 성숙 없는 성장은 속절없이 나이만 먹은 미숙아나 다름없다. 봄에 뿌린 씨앗이 금방 수확의 결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비바람과 뙤약볕, 가뭄과 태풍의 시련을 견뎌내는 오랜 기다림 끝에야 가을의 들녘은 비로소 풍성해진다. 기다림은 자연 앞에 겸손한 성찰의 눈길이며, 하늘의 섭리를 신뢰하는 소망의 몸짓이다.



 오늘의 한국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회일 것이다. ‘빨리 빨리’는 한국인의 별명이 됐다. 일이나 사업은 물론 골프나 휴가도 경쟁하듯 조급히 치러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부박(浮薄)한 시절이다. 그 조급함 덕분에 이만큼 먹고살게 됐는지는 몰라도, 진득한 기다림의 여유를 만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요즘엔 온갖 김치가 시장의 상품으로 나오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집집마다 손수 김장을 담갔다. 기나긴 겨울밤, 어머니가 마당의 김장독에서 퍼온 차디찬 동치미 국물에 오이 잘게 썰어 말아주시던 밤참 국수 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냉장 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한여름의 밥상에도 김장김치가 오르고 한겨울의 장바구니에도 딸기가 담긴다. 이러다가는 제철 과일의 맛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잘 묵힌 된장의 곰삭은 맛을 떠올리며 한 해를 지긋이 기다리던 설렘도 사라졌다. 기다림이 없는 인스턴트 먹거리가 넘쳐날수록 우리의 식탁은 자연의 이치를 멀리 거스르고 있다.



 기다림이라는 말이 이제는 마치 외국어의 낯선 단어처럼 서먹해졌지만, 우리 어버이들의 삶은 오랜 기다림의 일생이었다. 뼛속까지 스며든 가난 속에서도 이를 악물고 논밭을 일구시던 할아버지·할머니들…, 왜적에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에 가족을 잃고서도 좋은 날 오기를 기다리는 소망 하나로 그 서러운 세월을 피땀 흘리며 건너온 우리네 아버지·어머니들…. 그 기다림이야말로 빈주먹, 맨손으로 나라를 세우고 경제를 일으키며 자유민주의 시대를 활짝 연 대한민국 역사의 밑거름이었다.



 광복과 건국의 달 8월이다. 광복은 주어진 것이었지만, 자유대한의 건국은 안팎의 도전을 물리치고 스스로 쟁취한 승리였다. 울리히가 투르 드 프랑스의 진정한 챔피언이었던 것처럼, 우리 선인(先人)들은 소망 가득한 기다림으로 혼돈과 격동의 시대를 바르게 그리고 꿋꿋하게 달려온 역사의 챔피언이었다.



 저 위대한 건국의 씨 뿌림에서 전쟁과 혁명, 산업화와 민주화의 힘겨운 경작을 거쳐 마침내 오늘의 결실을 우리에게 물려준 어버이 세대의 발자취에 새삼 머리를 숙인다. 그리고 우리의 몫으로 남겨진 역사의 소명을 다시금 되새긴다. 통일을 향한 기다림, 그 소망의 분투를.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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