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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大, 사회적 기업으로 빵공장 세워 … KT는 통신망 구축 사업

중앙선데이 2013.08.17 23:56 336호 4면 지면보기
황순택 대사
지난 14일 키갈리 시내에서 한국식 빵공장이 문을 열었다. 한동대가 세운 사회적 기업 ‘라즈 만나’였다. ‘만나의 신비’라는 뜻이다. 이 빵공장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마련한 ‘대학과의 파트너십을 통한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한동대 재학·졸업생들이 지원해 설립됐다. 학생들은 지난해 1월부터 르완다 곳곳을 다니며 사업 아이템을 물색한 끝에 빵공장을 선택했다. 제빵기계는 한국에서 들여왔다. KOICA가 2년간 10억원을 대고 한동대가 일부를 지원한다. 지도교수 겸 공장 대표인 도명술(55·한동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많은 이윤을 챙기자는 게 아니라 르완다 젊은이들의 고용 창출과 기술 전수, 경제적 자립을 돕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공장 직원은 한국인 8명, 현지인 25명. 채용된 현지인 중에는 대학살로 가족을 잃거나 아예 고아가 된 젊은이도 있고, 미혼모도 있다. 채용 공고를 보고 100명 넘게 몰려들어 최종 선발까지 애를 먹었다.

르완다 재건 돕는 한국의 손길

르완다는 올해 한국과 수교 50주년을 맞이했다. 그러나 양국 관계가 그동안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963년 국교를 맺고 72년 한국대사관을 개설했으나 르완다가 친북 성향을 보여 75년 대사관을 철수했다. 87년 외교관계를 재개했지만, 불안정한 정세로 인해 90년 대사관 문을 닫고 탄자니아 한국대사관에서 겸임을 했다. 2003년 취임한 폴 카가메 현 대통령이 한국을 ‘국가재건의 모범 대상국’으로 꼽으면서 관계가 다시 풀리기 시작했다. 카가메 대통령은 2008년, 2011년 각각 한국을 방문해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 2010년에는 KOICA가 르완다 최초의 종합기술훈련원을 세워주었다. 훈련원에선 요즘도 학생 3000여 명이 주·야간반으로 나뉘어 이론과 실기를 익히고 있다. 주르완다 한국대사관이 정식으로 개설된 것은 2011년 12월이다. 황순택(사진) 대사는 “수교 50주년을 맞아 한국 음식축제, 한국 관련 퀴즈대회, 한국영화주간 행사, 태권도대회 등 10가지 행사를 마련해 연중 내내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72년 르완다와 수교했던 북한은 92년 대사관을 철수해 현재 주우간다 대사관에서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KT가 가장 적극적이다. 2007년부터 광케이블망 및 수도 와이브로 구축(6428만 달러), 국가 백본망 구축(4105만 달러) 사업을 폈다. 지난해에는 르완다 정보보안센터 설립계약(2150만 달러)을 맺어 2016년까지 사업을 벌인다. 지난 6월엔 KT가 1억4000만 달러를 투자해 4G LTE(롱텀 에볼루션)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KT는 르완다에서의 실적을 바탕으로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도 진출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해외 곳곳에서 땀 흘리는 우리 자원봉사자들의 발길도 잦은 편이다. 현재 99명이 전기·자동차·요리·미술·체육·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르완다를 돕고 있다. 태권도 공인 4단인 김종학(22)씨는 키갈리 시내 운동장·성당을 돌며 현지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친다. 지난달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르완다 대표선수 6명을 이끌고 출전했다. 아프리카 국가 중 6위를 기록했으니 꽤 선전한 편이다. 대구에서 화학교사·학원강사로 일하던 이문희(45·여)씨는 여자중·고교에서 과학을 가르친다. “내 인생에 2년 정도 변화를 주고 싶어 남편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키갈리 직업훈련학교에서 전기기술을 가르치는 김성구(33)씨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 근무하다 사표를 내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예전부터 해외봉사를 하고 싶었는데 나이가 더 들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한국에서 건축 설계·시공 일을 하던 편정화(33·여)씨는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는데, 이곳의 건축기술 수준이 우리의 1950년대 정도라 돕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은 르완다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2010년부터 키가라마, 무심바, 기호궤, 가랴루라로 등 4개 마을에서 새마을 리더봉사단원(연인원 58명)이 일하고 있다. 물이 부족하고 위생관념도 약한 곳이라 인근 초등학교를 돌며 교사들의 협조를 얻어 양치질·손씻기 교육도 한다. 무심바 마을에서 유치원·문해(文解·문자해독) 교육을 맡고 있는 서초혜(24·여)씨는 “주민들의 학력이 낮아 산수·문자 교육 호응도가 높다”며 “현지 지식인을 고용해 수업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르완다에서 비싼 곡물로 대접받는 벼농사 보급이다. 무심바 마을의 경우 당초 2011~15년의 5개년 계획을 세워 저지대에 논을 조성하려 했는데, 예상보다 작업이 일찌감치 끝나 지난 1월 첫 수확을 했다.

르완다의 한국 교민은 200여 명. 우리가 ‘대학살의 나라’로만 아는 르완다는 의외로 치안 사정이 좋다. 강력한 통치체제 아래 낮에는 경찰, 밤에는 군인이 거리를 지킨다. 국토가 해발 1500m 이상의 고지대여서 연평균 기온이 섭씨 20도 안팎이다. ‘아프리카의 스위스’로 불리는 이유다. 기자는 서늘한 르완다에서 취재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찜통더위를 만나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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