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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광장 "군부 타도" 물결 … 장갑차 앞세운 군과 충돌

중앙일보 2013.08.17 01:21 종합 6면 지면보기
‘분노의 금요일’로 명명된 16일 카이로 전역에서 모여든 친무르시 시위대가 시내 람세스 광장 일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군경과의 무력 충돌로 약 50명이 숨졌다고 이집트 군 관계자들이 밝혔다. [카이로 로이터=뉴스1]


무슬림형제단이 이집트 군부의 민간인 대량 살상에 항의해 대대적 시위를 예고한 16일 ‘분노의 금요일’, 정오 기도를 마친 수만 명의 친 무함마드 무르시 시위대는 카이로 전역에서 도심 람세스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군부 통치 타도”를 외쳤다. "너희에겐 무기가 있지만, 우리에겐 알라가 있다”는 구호도 터져나왔다. 무르시와 군부의 무력 진압으로 숨진 희생자의 사진도 등장했다. 무슬림형제단은 20곳 이상의 시위 행렬이 광장으로 집결했다고 추산했다.

이집트 '피의 금요일' 대혼돈
정오 기도 마친 뒤 수만 명 집결
경찰 발포에 화염병으로 맞서
전국 곳곳서 또 유혈사태



 이집트 군과 경찰은 시위가 시작되기 직전 국영TV를 통해 “어떤 불법적인 폭력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장갑차부대를 앞세운 이집트 군은 타흐리르 광장 입구를 막고 삼엄한 경계를 폈다. 이에 따라 카이로 곳곳에서 군·경찰과 시위대 간 무력충돌이 벌어졌다.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고 총격을 가해 수십 명의 시위대가 숨졌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기자는 광장 주변 파테 사원으로 옮겨진 시신이 20구에 이른다고 전했다. 일부 시위대는 주변 경찰서에 화염병을 던지기도 했다. 카이로 북부 지역의 검문소에선 경찰과 시비가 붙은 시위대의 총격으로 의무경찰 1명이 사망했다고 국영 통신사 MENA가 보도했다.



카이로 시내에 배치돼 시위대의 통행을 봉쇄하고 있는 이집트군 장갑차. [카이로 AP=뉴시스]
 충돌은 이집트 전역으로 확산됐다. AFP통신은 이집트 북부 도시 이슬라미야에서도 친무르시 시위대와 경비병력 간 충돌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4명의 시위대가 사망했다고 현지 의료진이 전했다. 카이로 남부의 파이윰 시에서는 5명이 숨지고 70여 명이 부상했다. 지중해에 인접한 소도시 다미에타에서도 시위대 최소 8명이 사망했다.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와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한 탄타 등지에서도 시위대가 정부 기관 청사로 행진하자 경비병력이 최루탄과 산탄을 쏘며 이를 막아섰다.



 형제단 대변인인 기하드 알하드다드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군부의 학살로 형제단이 시위 참가자에게 평화적 저항을 하라고 설득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금요 기도를 마치고 사흘 전 군부의 시위대 살상에 대한 분노를 거리에서 표출하자고 촉구했다. 형제단도 별도의 성명을 내고 “군부의 범죄는 그들을 파멸시키겠다는 우리의 각오를 더욱 강하게 할 것”이라고 전의를 다졌다. 형제단과 대척점에 있는 반무르시 자유주의연합 세력 ‘구국전선(NSF)’은 거리 시위를 “형제단에 의해 저질러진 명백한 테러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이집트 군부의 대량 살상이 벌어진 다음날인 15일엔 카이로 나스르시티 이만 사원으로 실종된 가족과 친구들을 찾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임시 시신 안치소로 변한 사원 바닥에는 하얀 천에 싸인 시신 수백 구가 누워 있었다. 뉴욕타임스 는 “가족을 찾다 지친 어린 소년은 시신들 사이에서 잠들기도 했다”고 전했다.



 시신 대부분은 진압 작전 중 불에 타 신원 확인이 힘들다는 것이 외신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그나마 주머니에서 신분증이나 소지품이 나온 시신들만 겨우 식별이 가능한 정도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시신들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유지혜·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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