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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정말 한국이 국사를 안 배운다고

중앙일보 2013.08.17 00:58 종합 26면 지면보기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광복절을 이틀 앞두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중국·일본 기자와의 저녁자리. 중국과 일본 기자는 초면이었다. 한국엔 광복절, 중국엔 전승일, 일본엔 패전일, 그래서 각각의 생각이 궁금했다. 중국과 일본 기자가 한판 붙으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도 했다. 인사가 끝나고 술이 몇 잔 돌았다. 놀랍게도 신중한 일본 기자가 먼저 말문을 텄다. “지난달 하얼빈에 다녀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 표지석을 세워달라고 중국 정부에 요청했는데 진행 상황이 궁금해서….” “결과는.”(한국) “현지 관계자들은 규정상 어렵다고 하더라.”(일본) 내심 안심하는 표정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했던가.



 “혹시 안중근 사상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가.”(한국) “일본 학생들에게 역사는 필수다. 한데 근대사는 항상 결론이 안 난다. 배우다 그만두기 일쑤다.” “왜.”(한국) 일본 기자는 그냥 웃었다. “중국도 역사 배우지 않나.”(한국) “국사뿐 아니라 세계사도 필수다. 한국은.”(중국) “2005년 이후 대입학력고사 과목에서 제외됐다. 조만간 역사가 대입 필수과목이 될 것 같긴 한데…”.(한국) 순간 중·일 기자의 눈이 커졌다. “정말.”(중국·일본) 모두 “거짓말하지 말라”는 표정이다. 학생들의 대입 과목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였다고 했더니 질문이 더 쏟아진다. “일본에 역사 문제를 가장 강하게 거론하면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안 가르친다고.”(일본)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역사 교육이 잘 되고 있는 줄 알았다.”(중국)



 얼굴을 들 수 없어 서둘러 화제를 ‘8·15’로 돌렸다. “중국은 정부가 기념식을 안 하는 것 같던데.”(한국) “일본이 미주리함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한 9월 2일을 기념한다. 그것도 정부가 아닌 참전용사 중심으로 조용하게.”(중국) 미국 덕에 전승국이 됐다는 점,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실용적 전략이 고려된 거다.



 일본 기자가 다시 기자를 자극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독도에 갈 것 같나.” “전임 대통령이 갔는데 또 갈지는 모르겠다. 왜 그리 민감한가.”(한국) “지금 일본 전체가 주시하고 있어서….”(일본) 남의 영토를 왜 주시하냐고 화를 내려다 말았다. 대신 “아베 총리는 왜 그런가”라고 물었다. “우익이라지만 성공한 게 하나도 없다. 개헌이나 신사참배가 맘대로 되는가.”(일본) “실익이 없는데 왜 그러나.”(한국) “경제 좀 살려보려고 그런 거다.”(일본) 분명한 포커 페이스다.



 갑자기 중국 기자가 일본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는 중국이 확실하게 통제하는 것 같다.” “수교 협상 당시 양국 지도자들이 미래세대에 맡기자고 하지 않았나.” 꼬리 내리기다. (일본) 저녁 자리를 끝내며 맘이 편치 않았다. 한국이 정말 역사를 안 배우느냐는 그 말 때문에.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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