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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치모델 논쟁 <1> '중국의 소로스' 에릭 리

중앙일보 2013.08.17 00:57 종합 14면 지면보기
중국식 정치 모델을 옹호하는 에릭 리 중국 청웨이 캐피털 대표가 지난 6월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테드(Ted)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강연하는 모습. 그는 “서양이 자유민주주의를 보편적으로 적용하려는 것은 오만”이라며 “지구상에는 다양한 정치 모델이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


영국 런던의 더 코넛 호텔 바의 창가에 한 동양인이 혼자 앉아 있다. 그의 앞에 놓인 와인잔에는 지문과 입술 자국이 선명하다. 성공적인 강연을 마치고 축배를 들고 있는 것일까. 어두운 창가에 어렴풋이 비친 그의 얼굴을 찾아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지금 중국 보고 민주주의 하라는 건 아이폰 버리고 블랙베리 쓰라는 격"



 에릭 리(Eric Li·중국명 李世默·45) 중국 청웨이(成爲) 캐피털 대표 이야기다. 전 세계의 스타급 지식인이 몰려든다는 테드(Ted) 글로벌 콘퍼런스(6월 13일)에서 그는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1년에 한 차례 닷새간 열리는 지구촌 최대의 지식 나눔 행사다. 올해에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렸다.



 에릭 리는 논쟁적이다. 지난해 뉴욕타임스에 ‘왜 중국 정치모델이 더 우월한가’를 기고한 후 수많은 반박이 인터넷에 쏟아졌다. 올봄엔 저명한 국제정치 잡지인 ‘포린 어페어스’에 ‘중국 공산당의 생명’을 기고하며 다시 중국 모델을 옹호했다. 그러자 곧바로 개혁적 성향의 중국계 지식인 황야성(黃亞生) MIT대 교수가 ‘민주화하든지 죽든지’를 같은 잡지에 기고하며 반박했다. 그의 이번 테드 강연에도 가장 많은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런 거침 없음은 그의 본업인 벤처캐피털리스트의 이력에서 나오는지도 모른다. 대학 교수인 부모를 둔 에릭은 거의 혼자 힘으로 45세에 갑부 반열에 올랐다.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미 버클리대로 유학을 간 그는 무소속 대선 후보였던 로스 페로 밑에서 일을 한 바 있다. 이어 스탠퍼드대에서 MBA 과정을 밟은 후 중국으로 귀국해 벤처캐피털 업계에 뛰어들었다.



 그가 세운 청웨이 캐피털은 유망한 벤처기업을 선별해 중견기업으로 키워냈다. 청웨이는 20여 개 기업의 최대주주이거나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동영상 웹사이트 유쿠, 석유 기업 앤튼 오일, 온라인 패션 쇼핑몰 샹핀 등이 청웨이가 일궈낸 대표적 기업들이다.



 아무튼 중국은 자신의 정치 모델을 서양에 대변해줄 세련된 지식인을 찾았다. 공산당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이는 벤처캐피털리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젊고 깔끔한 외모에 영어 강연과 토론 실력도 상당한 이가 자신들을 옹호해주고 있는 것이다. 6월 15일 만나 인터뷰한 두 시간 동안 그는 그의 글에서처럼 직설적이었다.



 



에릭 리 대표(오른쪽)를 이승윤 객원기자가 지난 6월 영국 런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중국의 문화혁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렸을 때 문화혁명을 겪은 후 미국에 유학을 갔으면 문화적 충격이 컸을 것 같은데요.



 “문화혁명이 가르친 공산주의는 실패한 종교나 다름이 없습니다. 너무나 원론적이고 독단적이었죠. 공산주의 이론이 문화·역사·국가를 초월해 모든 곳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믿었죠. 인간 사회의 역사가 하나의 방향으로 진보한다고 믿었죠. 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사회주의 사회를 거쳐 공산주의 사회라는 역사의 종착점에 이른다는 것이죠. 유토피아에 이르기 전의 인간 사회는 계속 선과 악 사이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는 이론이죠. 미국에서는 노숙자가 수없이 많고 빈부격차가 심하다고 그랬었죠. 그래서 자본주의는 악마 같은 것이라고요. 그에 반해 중국에는 노숙자가 없다, 이래서 공산주의가 아름답다고 세뇌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이나 다른 서양 국가에서 그런 식의 비판을 중국에 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중국의 환경오염은 너무 심하다, 어떤 중국 인권 운동가가 논란이 되는 말을 해서 감옥에 들어갔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국가는 참담한 것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입니다.”



 - 지금 서양의 중국에 대한 시각을 중국 문화혁명 시기의 공산주의 논리와 비슷하게 보는 것입니까.



 “현재 서구 주류 지식인들이 숭배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문화혁명 시기의 공산주의 이론처럼 야심 찬 주장을 합니다. 공산주의와 똑같이 보편적 성격을 보입니다. 인간 사회를 선악 이분법으로 보는 것도 비슷해요. 역사가 하나의 종착점으로 일관되게 진보한다는 전제도 그래요. 기독교 사회든 이슬람 사회든 유교 사회든 모든 사회가 구시대적 공동체주의를 버리고, 개인이 중심이 된 현대 사회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죠. 자유민주주의를 전 세계에 퍼뜨리는 자들은 선한 세력이고 가끔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선한 목적을 위해 전쟁도 서슴지 않죠. 선거를 안 치르는 국가들은 악한 세력으로 규정되고 이런 체제들은 사라져야 마땅하다고 합니다.”



 - 천안문 사태 때 미국에 있었을 텐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그들은 저와 동시대를 함께 보낸 젊은이들로서 당시에는 그들의 행동에 공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정치에 무지한 시절이었고 천안문 사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 그러면 언제 어떤 계기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됐죠.



 “스탠퍼드대에서 MBA를 마치고 중국에 돌아왔을 때입니다. 저는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강화(南巡講話) 세대입니다. 덩샤오핑은 남부 지역을 시찰하면서 ‘중단 없는 개혁·개방’을 선포했고, 그 개혁·개방의 중심에 상하이를 놓았죠. 1990년대 중반에 저의 고향인 상하이는 아직 경제개발 초기단계였습니다. 푸둥(浦東)에는 높은 건물이 두 개 정도밖에 없었죠. 나머지는 논이었고 포장된 도로조차 없었습니다. 지하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일대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죠. 중국은 30년 만에 가장 가난한 농경사회에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변했습니다. 빈곤 퇴치의 80%는 중국 공산당의 업적입니다. 이 시기에 지구상에 있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빈곤 퇴치를 위해 한 업적을 다 합쳐도 투표권도 안 주는 일당 독재 국가가 해낸 일의 새 발의 피도 안 됩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서양인들에 따르면 일당 독재는 무조건 안 좋은 것이고, 문화와 역사에 상관없이 자유민주주의를 실시해야 합니다. 그들의 사상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 30년의 역사는 불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런 증거를 외면하고 모든 개발도상국에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위해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강요하는 서구의 담론을 종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당신이 생각하는 중국식 정치 모델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서양의 주류 정치 이론에 따르면 중국식 정치는 선거를 안 치르기 때문에 융통성이 전혀 없고, 연고주의에 갇혀 있고, 정치적 정당성이 없죠. 이런 전제는 모두 틀린 것입니다. 중국 정치 모델의 세 가지 키워드는 융통성,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정치적 정당성입니다. 메리토크라시는 출신이나 가문이 아닌 능력이나 실적, 즉 메리트(merit)에 따라서 지위나 보수가 결정되는 사회체제를 말합니다.”



 -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없는 중국의 일당 독재체제가 어떻게 융통성이 있고 국민의 요구와 정치적·경제적 상황에 따라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죠?



 “저의 주장은 이론적인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실증적 증거를 말하는 것뿐이에요. 어떤 정치 시스템이 융통성이 있고, 메리토크라시의 성격을 띠고, 정치적 정당성이 있는지는 종교적 이론이 아니라 역사에 의해 증명돼야 합니다. 중국 현대사를 봅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를 통치하는 64년 동안 중국 공산당이 보여준 정책의 스펙트럼은 어느 나라보다 다양하고 넓습니다. 경제 정책을 예로 듭시다. 중국 공산당은 50년대 초기부터 아주 급진적인 농촌 집단화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런 기조는 50년대 후반의 대약진 운동과 60년대 초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의 문화대혁명을 통해 지속되고 강화되었죠. 하지만 동시에 60년대 초반부터 농지의 준사유화가 시작되고, 70년대 후반부터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시작됩니다. 급기야 90년대에는 장쩌민(江澤民)이 민간 기업인들에게도 공산당 가입을 허용합니다. 마오쩌둥(毛澤東) 시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중국 공산당은 이렇게 꽤 급진적인 개혁을 꾸준히 선거 없이 해나갑니다.”



 - 정치개혁이 경제개혁보다 더디다는 말도 있는데요.



 “정치개혁도 꾸준히 해나갔죠. 예를 들어 마오쩌둥은 외세를 물리치고 중국의 내전을 종식시킨 현대 중국의 아버지입니다. 하지만 그의 장기적 통치는 문화대혁명과 같은 재앙을 가져왔죠. 그래서 결국 당은 임기에 제한을 두고 70세를 정년으로 정했습니다. 중국의 정치개혁이 경제개혁에 비해 더디다는 것은 몰상식한 태도입니다. 중국은 끊임없이 정치개혁을 단행해왔습니다. 10년 전과 20년 전과 30년 전을 비교해 보세요. 말단의 작은 지방정부부터 권력의 최정상인 중앙정부까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이 변했습니다. 중국 사회의 진화가 이 정도의 속도와 규모로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정치개혁을 했기 때문입니다.”



 - 중국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선 당신에게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집권 여당과 제1 야당의 주요 정치인 중 좋은 집안 출신이 얼마나 됩니까. 제 생각에는 과반수 이상이 돈 있고 힘 있는 집에서 나왔다고 확신합니다. 이런 경향은 많은 민주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 시스템은 집안 배경과 돈이 아니라 능력과 성과에 따라 지위를 배분하는 메리토크라시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 핵심 권력기구는 중앙위원회 정치국입니다. 중앙위원회 정치국원 25명 중 5명만 소위 태자당 출신입니다. 다른 20명은 중산층이나 가난한 집안 배경을 가졌습니다. 300명 안팎의 중앙위원회를 보시면 특권층 출신 비율은 더 낮습니다. 고위 관료 중 거의 대부분이 바닥에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죠. 인사를 담당하는 중국공산당 중앙조직부는 성과를 바탕으로 최고의 능력을 가진 인재만이 진급할 수 있게 합니다.”



 - 현재 중국 최고 권력자인 시진핑(習近平)의 아버지는 중국의 8대 원로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진핑은 태자당 출신입니다. 태자당 출신이 최고 권력자가 된 것은 처음입니다. 좋은 집안 출신인 그조차도 커리어를 쌓는 데 30년 정도가 걸렸습니다. 가난한 마을 간부로 시작해 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를 거쳐 중앙위원회 정치국원이 됐습니다.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오를 때 그는 이미 1500만 명의 상하이 시민을 섬긴 경험이 있고, 웬만한 국가 경제보다 규모가 큰 지역내총생산(GRDP)을 가진 경제를 관리해봤습니다. 그 자리에 오기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시진핑의 정치 역정이야말로 중국 정치의 메리토크라시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미안하지만 대통령이 되기 전 오바마의 경력을 갖고는 중국에서 지방 도시도 못 이끕니다. 부시의 경력 갖고 텍사스 주지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도 중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의 경우 선거도 없이 어떻게 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나요. 언론의 자유와 선거 없이 국민의 소리를 듣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데요.



 “서양인들은 국민 모두가 투표권을 행사해 선거를 하는 것만이 정권에 정당성을 준다고 종교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역량이 정권의 정당성을 주는 것이 아닙니까. 49년 중국 공산당이 통치를 시작했을 때 중국은 내전, 외세의 침략과 약탈로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루어낸 업적을 보십시오. 중국 공산당은 지구상의 어떤 조직보다 절대 빈곤을 퇴치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국민이 중산층에 진입하는 숫자는 점점 늘고 있습니다. 퓨 연구소(Pew Research Center)는 서양에서 신뢰받는 여론조사 기관입니다. 이곳에서 중국 국민의 여론을 꾸준히 측정했습니다. 조사 결과는 일관되게 높은 중국 국민의 만족도를 보여줍니다. 2011년에 답변자의 87% 이상이 국정 운영에 대해 만족스럽다고 답했고, 지난 10년간 꾸준히 80%를 넘겼습니다. 국민의 66%가 지난 5년간 삶의 질이 향상됐다고 했으며 74%가 미래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 선거를 치르는 미국이나 유럽보다 중국 공산당 정권이 더 정치적 정당성이 있다고 보는 겁니까.



 “미국과 비교해보죠.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세 가지 제도는 국회·대통령제·법원입니다. 국회의 지지율은 현재 11%대입니다. 대통령 지지율은 30%를 왔다갔다 합니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 5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미국 국민 대부분이 현재보다 미래에 자신들의 삶이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가 비참할 정도의 실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미국부터 유럽까지 얼마나 큰 위기를 겪고 있는지 이해할 것입니다. 소수의 나라를 제외하고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개도국의 대부분이 빈곤과 내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뽑아놓고 후회하는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뽑아놓고 나면 불과 몇 개월 뒤 지지율은 50% 밑으로 하락합니다.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정당성을 참견하기 전에 먼저 자신들의 국가 경영에 심혈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 중국도 한국과 대만처럼 권위주의 정권 아래 경제성장을 이룬 이후 민주화가 될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중국이 필연적으로 민주주의가 될 것이라는 시각은 버려야 합니다. 한국과 대만 같은 경우는 미국의 원조를 많이 받았고, 미국의 영향이 컸던 나라입니다. 독특한 환경에 놓여 있었던 것이죠.”



 저명한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 미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이 거대한 싱가포르가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중국이 충분히 경제성장을 한 후에도 싱가포르같이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릭은 한 토론에서 중국 공산당의 신뢰도와 미국 입법부·사법부·행정부에 대한 신뢰도를 비교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중국 보고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전환하라는 얘기는 애플 아이폰을 버리고 블랙베리를 사라는 얘기와 똑같습니다.”



 - 최근 테드 강연에서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말했는데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천편일률적으로 전 세계에 적용시키겠다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서양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감히 민주주의 자체를 비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서양의 발전에 기여했고, 현대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서양이 자신의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을 아프리카·중동·아시아에 보편적으로 적용하려 드는 오만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이 자만이 서양이 앓고 있는 병의 근원입니다. 그것보다 자신들의 국정 운영에 힘을 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중국의 정치 모델은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국의 정치시스템은 후자처럼 감히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라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국 모델은 수출될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게 제가 말하려는 요점입니다. 중국 모델이 대체재가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다양한 정치 모델이 성공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뿐입니다. 저는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자유민주주의를 택할 것이라고 했는데 세상이 이렇게 다 똑같으면 무엇보다 재미가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 더 이상 어떤 식의 정치 시스템을 강요하지 맙시다. 이제 보편성이 아니라 다양성을 말합시다. 정치 모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순간 21세기는 더 흥미로워질 것입니다.”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의 피와 땀으로 얻어낸 민주주의를 이런 식으로 비판한다는 것이 마냥 기분 좋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사실 민주주의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걸고 쟁취하려 했던 열망의 합집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에릭이 말한 것처럼 이라크 전쟁과 같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실행된, 서양의 개도국에 대한 간섭도 간과할 수 없다.



 20여 년 전 ‘포린 어페어스’에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문화는 운명이다’라는 기고가 실린 바 있다. 리콴유 전 총리는 중국과 베트남·대만·한국 등의 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할 때 서구적 의미의 민주주의 개념은 동아시아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리콴유 전 총리의 주장을 반박하며 ‘민주주의가 운명이다’라고 같은 잡지에 기고한 바 있다.



 아랍의 봄과 중국의 부상이 맞물리며 비슷한 논쟁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에릭이 리콴유 전 총리가 그랬던 것처럼 같은 잡지에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둘러싼 논쟁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마지막 홍콩 총독이었던 크리스 패튼 옥스퍼드대 총장도 주목되는 인물이다. 중국 공산당과 각을 세우며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한 바 있다. 에릭에 이은 다음 인터뷰에서 크리스 패튼 총장을 통해 에릭과는 상반된 얘기를 들어볼 계획이다.



 에릭 리가 한국을 방문한다. 9월 4일 오후 2시30분 서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종말, 충돌, 부상- 중국 패권의 지정학적 의미’라는 주제로 공개 강연을 할 예정이다.



런던=이승윤 대학생 객원기자



◆이승윤씨는 지난해 동아시아계로는 처음으로 영국 옥스퍼드대 학생자치기구인 ‘옥스퍼드 유니언’회장에 선출됐다(본지 3월 16일자 22, 23면). 중앙일보 해외 대학생 객원기자로서 옥스퍼드 유니언에 초청된 저명인사를 인터뷰해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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