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처럼 누군가와 동행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럴 때 묘하게도 동행하는 이들 사이의 어쩔 수 없는 반목과 갈등을 풀어주고 서로를 다시 이어주고 묶어줘 끝내는 감싸고 얼싸안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서로의 아픔과 상처다. 어쩌면 진정으로 동행한다는 것은 그 아픔과 상처를 나눈다는 것이리라. 일상을 떠나면 대개 심리적으로 무장해제된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물론 거기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도 적잖다. 심지어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마음속 깊은 상처마저 자신도 모르게 털어놓는다. 그것도 때론 술 한잔 걸치지 않은 맨정신으로 말이다. 애써 그것을 감추지 않고 털어놓게 만드는 힘이 거기에 숨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알베르 카뮈는 여행을 가리켜 ‘두려움의 매혹’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름 자기 인생을 살아내는 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아픔과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들은 이 잔혹한 더위에도 녹지 않을 만큼 심중 깊숙이 얼음처럼 박혀 있다. 그래서 그것을 녹이려면 남다른 체온이 필요하다. 때로 그것은 자기 혼자만의 체온으로는 녹일 수 없기에 다른 누군가의 온기가 절실한 것이리라.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쓰쿠루도 그랬다. 그는 순례를 통해 새삼 ‘상처가 곧 소통의 바탕’임을 깨닫는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렇다. 우리를 연결시키는 것은 서로의 상처와 아픔이다. 상처 없는 인간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품어낼 수 없다. 아픔 없는 사람이 누군가와 진정으로 친구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삶은 기쁨만으로 충일한 것일 수 없다. 우리의 생은 스스로에게 상처 입히기를 즐기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아프다. 하지만 이열치열(以熱治熱)하고 이독제독(以毒制毒)하듯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또 다른 이의 상처요, 아픔을 극복하는 것 역시 또 다른 누군가의 아픔이다. 단지 “그도 알고 보면 나 못지않게 힘들었어”라는 피상적인 위안만이 아니다. 진짜 아파 봤기 때문에 진정으로 보듬을 수 있는 것이다. 상대를 보듬고 품어내는 진정한 포옹은 바로 그 상처와 아픔을 끌어안는 것이다.
#“자신이 ‘그 사람’이 아니며 ‘그 사람’이 될 수 없는 한 아무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 아무리 가깝고 사랑하는 관계라 하더라도 단지 이해한다고 믿고 있는 데 불과할 뿐이다.” 나의 고백록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의 한 구절이다. 그렇다. 인간은 누군가를 온전히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에게 다가서기 위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은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감추지 않는 것이리라. 그것이 서로를 소통시킬 바탕이 되어줄 터이니! 그 아픔과 상처를 조금씩 나누는 가운데 세상은 조금은 더 살 만한, 아니 조금은 더 숨쉴 수 있는 그런 곳이 되지 않겠는가. 이 잔혹한 무더위 속에서조차!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