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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복지=세금, 정치권부터 솔직해지자

중앙일보 2013.08.17 00:50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진국
논설주간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독보적인 1등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 연말 보고서를 보면 OECD 전체 평균 자살률이 10만 명당 12.8명인데 한국은 33.5명이다. 2등인 헝가리의 23.3명보다 10명이나 많다. 그중에서도 80세 이상은 10만 명당 123명, 90세 이상은 129명이 넘는다.



 모진 풍파를 겪어, 세상을 알 만하고, 욕심도 희미해졌을 무렵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왜 그리 많을까. 이 보고서는 ‘고령인구 및 단독가구의 증가, 경제사회적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먹고살기 어렵고, 병을 치료하는 데 힘이 부쳐 삶을 포기했다는 말이 아닌가. 더 나아질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곧 베이비부머들이 노인층으로 몰려든다. 고령화는 초고속인데 사회적 준비는 빈약하다.



 복지 문제가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로 다가왔다. 노인문제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 여야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복지 공약을 내놨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수인력을 창의적인 일자리보다 안정적인 직장으로 내몰게 되기 때문이다. 고용 유연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인 복지를 개선하지 않고는 성장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면 소득세 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끝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을 끌었다면 소모적 논란이 이어졌을 게 뻔하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뒤로 수많은 과제를 남겼다. 135조원에 이르는 공약가계부를 맞추려면 이건 시작이다. 출발부터 이 정도인데 나머지 과제는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러지 않아도 상반기 세금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조원이나 덜 걷혔다. 정말 증세 없이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까.



 파문은 가라앉았지만 이 기회에 복지 문제를 제대로 따졌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복지를 피해갈 수 없다는 건 대부분 인정한다. 그런데도 진지한 논의보다 정파적 이해에만 매달려 왜곡시키고 있다. 더 많은 복지(5년간 193조원)와 증세를 주장해온 민주당이 소득세 세액감면 전환을 ‘세금폭탄’이라고 몰아간 것이 그 예다.



 복지정책은 정치권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선거를 의식해 마구 쏟아내다 보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한번 시작한 복지정책은 중단할 수 없다. 고치기도 어렵다. 어떤 철학과 틀로 복지 구조를 짜고, 무엇부터 어떤 순서와 속도로 해나갈 건지 장기적인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표가 보인다고 선거 때마다 돌출적으로 내뱉으면 정작 시급한 복지를 늦출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경제 능력을 감안하지 않은 공약은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



 복지는 공짜가 아니다. 정치인의 전형적인 거짓말이 뭐든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부담은 ‘전혀 안 주겠다’고 한다. ‘불요불급한 낭비’를 줄여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게 정치인의 ‘모범 답안’이다. 어느 정부고 세출 조정을 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더구나 복지는 사회간접자본(SOC)처럼 어느 한 정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번 시작하면 그 다음, 또 그 다음 정부로 계속 이어진다. 정작 지금 필요한 것은 ‘불요불급’한 복지공약을 정리하는 것이다.



 99대1로 편 가르기 하는 것도 위험하다. 표는 될지 모르지만 복지의 틀을 망쳐버리게 된다. 국가권력이 로빈 후드로 변하면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결국 자본을 해외로 내쫓게 된다. 지금도 2500여만 명의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소득세를 내는 사람이 1150여만 명뿐이다. 소득 상위 20%가 내는 세금이 85%다. OECD 평균과 비교하면 하위 80%도 세금을 덜 내고 있다.



 꼭 필요한 복지라면 세금 문제에도 솔직해야 한다. 어쩌면 보수정권인 박근혜정부가 타협을 끌어낼 적임일 수 있다. 현 정부부터 복지와 세금 문제에 솔직해져야 한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성역부터 허물어야 한다. 공약에 매달려 만만한 소득세만 편법으로 손을 대다 반발을 샀다. 세제에 손을 댄다면 소득세뿐 아니라 소비세를 포함해 세제 전반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경기가 가라앉아 있어 증세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세율을 올리기보다 성장을 통해 세금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성장론자도 있다. 그렇다고 가뜩이나 무거운 고령화의 짐에 빚까지 올려서 다음 세대에 넘길 건지는 고민해봐야 한다. 어느 쪽이든 복지는 세금이라는 사실에 정부부터 정직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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