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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4할 타자의 실종 … 야구를 보면 과학이 보인다

중앙일보 2013.08.17 00:40 종합 1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강일구]


백인천 프로젝트

정재승 외 3인

백인천 프로젝트 팀 지음

사이언스북스, 376쪽, 1만8000원




부잣집에 우산이 많을까, 가난한 집에 우산이 많을까. 혹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하다면 당신은 사회과학자가 될 자질이 있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 우선 연구의 제목을 정해보자. ‘소득과 우산 소유 사이의 상관관계’ 정도면 적당할까. 이제, 가설을 세워보자. 돈이 많은 집에 우산이 많을 것이다. 아니다, 식구 수보다 우산을 많이 사는 바보들이 많을까. 그래도 돈이 많으면 비올 때 선뜻 우산을 사지 않겠는가. 부잣집에 우산이 많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기로 한다. 이제, 이것을 조사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할까.



 아르바이트 학생 100명을 푼다. 집집마다 방문해 가구소득과 가지고 있는 우산의 개수를 묻는다. 학생 한 명이 하루에 100집을 방문했고 30일간 조사하니 설문의 결과는 30만 건. 이 결과를 통계를 통해 분석해보니 소득이 높은 집일수록 우산이 많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제 이 커다란 데이터와 계산을 잘 정리해서 논문을 써서 발표한다. 소득이 높을수록 우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반전은 없었다. 예측했던 것이 그대로 맞았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예측을 실제 조사를 통해서 확인했다는 것이 이 연구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



 날씨 변덕이 심하고 우산 가격이 싼 지금도 맞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대학시절, 사회과학 방법론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사회과학이 하는 일을 위와 같이 설명했다. 통계적 연구에 대한 비꼼이 포함되어 있지만 당연해 보이는 것도 검증하는 사회과학적 방법론과 자세에 대한 이야기도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그 선생님은 사회과학을 ‘우산학(umbrellaology)’이라고 불렀다.



 국내 프로야구가 출범했던 1982년에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뛰었던 백인천이 기록한 4할1푼2리 이후에 4할 타자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이유를 30년간의 통계자료를 분석해서 찾으려고 했다는 ‘백인천 프로젝트’도 골격과 결과를 놓고 보면 우산학에 속한다.



 이 프로젝트에는 앞선 연구가 있다. 1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프로야구에서 1941년 이후 70여 년간 4할 타자가 나오지 않은 이유를 두고 여러 의견이 있었다. ‘그때가 좋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옛날만큼 뛰어난, 혹은 노력하는 타자들이 줄었다고 한다. ‘환경이 열악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상업적 이유에 따라 바쁜, 때로는 쓸데없는 일정을 소화해야 하고 투수나, 수비수의 능력이 향상됐다고 했다. 구원투수 제도나 언론의 방해를 꼽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유명한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전혀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100여 년의 자료를 분석해보니 타자들에게 불리한 여러 제도 변화나 다른 분야의 실력 향상에도 불구하고 평균 타율은 어느 시대나 비슷했다. 변화한 것은 평균 타율을 중심으로 널리 분포하고 있던 선수들의 타율이 평균을 중심으로 좁은 범위로 몰렸다는 것.



 타자들은 어느 시대이고 놀고 있지 않았다. 타자들은 여러 불리한 상황을 끊임없이 뚫고 나갔지만 특출한 타자들에게 적응하고 봉쇄하는 기술도 끊임없이 등장했다. 선수들 전체 기량은 계속적으로 향상됐지만 표준에서 떨어진 특출함은 제거되었다. 잘하는 사람이든, 못하는 사람이든.



 ‘백인천 프로젝트’는 굴드의 가설을 30년간 쌓인 한국의 자료를 분석해서 검증하려고 했다. 그 결과는 굴드의 가설이 여기서도 옳다는 것이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뻔한 가설을 통계적으로 검증한 것이 되겠지만 역설적으로 이 프로젝트를 정리한 책에 담긴 우리나라 강타자들과의 인터뷰는 백인천 프로젝트의 결과가 새로운 것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4할 타자가 어려운 이유로 양준혁은 투수들의 수준 향상을 꼽았고 김현수는 많은 경기수를 들었다. 정근우·홍성흔·장성호 등 다른 강타자들의 의견도 비슷했다. 이들이 꼽은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굴드나 백인천 프로젝트가 기각한 것들이다. 따라서 백인천 프로젝트는 상식과는 다르다. 뻔하지 않다.



 백인천 프로젝트의 또 다른 특이한 점은 전혀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SNS를 통해서 발의하고 모여서 하나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 했다는 것이다. 굴드 혼자서도 했던 것이니 혼자서 한국의 자료로 재검증을 했다면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와해되지 않고 학술적인 작업을 하고 논문과 보고서를 완성해 낸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뜻이 맞는 전문가들이 짧은 시간 안에 해 냈을 일이지만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한 것만 해도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다는 의미에서 크게 축하할 일이다. 이제부터 관건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풀어야 더 좋은 다른 문제들을 찾는 일이다.



주일우 과학평론가



●주일우  과학평론가. 문학과지성사 대표. 생화학·과학사·환경학을 공부하고 문학, 과학, 시각예술, 공연 예술 사이의 소통에 힘을 쏟고 있다. 다원예술 아카이브, 매개공간의 운영에도 관여하고 있으며 ‘인문예술잡지 F’를 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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