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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이방자? 마사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중앙일보 2013.08.17 00:37 종합 19면 지면보기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

강용자 지음, 김정희 엮음

지식공작소, 389쪽

1만3500원




백마를 탄 왕자는 뭇 소녀의 로망이다. 아마 마사코(方子)도 그랬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일본제국의 황족 신분이 아닌가. 그러나 1916년 8월3일, 신문에서 자신의 약혼 사실을 접한 마사코는 분노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만 줄줄 흘렸다. 상대는 조선의 왕세자 영왕(英王) 이은(李垠)이다. 한일합방 2년 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손에 끌려 군복차림으로 일본에 온 망국의 인질이다. 백마는커녕 차꼬에 채인 신세다.



 마사코(李方子) 여사는 이 순간을 “햇살은 사라지고, 천둥 번개가 내 인생에 내리쳤다”고 회고했다. 그랬다. 그녀 자신도 ‘선일(鮮日)융화’란 미명아래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결혼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나 이뤄졌다. 시아버지 고종(高宗)황제도, 시어머니 순헌황귀비도 이미 세상을 떠난 이후다. 그러나 마사코의 질곡 같은 인생역정은 이제 막 첫 페이지를 넘겼을 뿐이다.



 『나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이 마사코입니다』는 비운의 왕세자비 마사코 여사의 자전적 회고록이다. 경향신문에 1984년 ‘세월이여, 왕조여’란 제목으로 실렸던 글을 언론인 김정희씨가 다시 엮었다. 마사코 여사의 회고는 그가 마지막 여생을 지낸 낙선재(樂善齋)의 작은 풀꽃으로부터 풀어간다. 대한민국과 일본의 두 조국을 가진, 그러나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 받지 못했던 경계인(境界人)으로서 한(恨) 서린 삶의 기록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일제 36년은 우리에게 치욕이자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이다. 그 어두운 세월 이면에서 펼쳐지는 왕세자 부부의 꼭두각시 삶 역시 한편의 대하 드라마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가 최서희의 지주(地主)적 시각으로 동시대를 엮었다면, 마사코 여사는 몰락한 왕족(王族)의 시선으로 같은 시대를 훑어본다. 광복은 서희에게 새로운 내일을 던진다. 하지만 광복이자 동시에 항복인 마사코 여사에게는 왕족에서 평민으로 추락하고 국적마저 애매해진 인생변곡점일 뿐이다. 세월은 변해도 토지는 남지만, 몰락한 왕조는 이제 형해(形骸)조차 더듬기 힘들다.



 해방공간에서 이승만 대통령과의 갈등, 박정희 대통령의 온정에선 묘한 감정선도 엿보인다. 왕가의 후예 이 대통령에게서는 ‘두 개의 태양’이, 일본 육사출신 박 대통령에게서는 ‘끈끈한 유대감’이 묻어난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편집은 책을 단숨에 읽게 만들지만, 희귀한 자료사진과 풍부한 주석은 근현대사의 사료(史料)적 가치도 훌륭하다. 마침 국사 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점이다. ‘잃어버린 역사’에 대한 흔치 않은 관점이란 측면에서도 일독할 만하다.



박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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