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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영화만 고집? … 고통받는 인간 내면 그려"

중앙일보 2013.08.15 00:41 종합 18면 지면보기
김용화 감독은 고릴라가 홈런을 펑펑 때리는 영화 ‘미스터 고’를 통해 “인간의 한계와 편협함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중앙포토]


영화 ‘미스터 고’를 연출한 김용화(42) 감독은 “난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지난 겨울 내가 타격폼을 잡는 영상을 추신수(미국 프로야구 신시내티)에게 보여줬더니 ‘어! 감독님, 끝내줍니다’라고 하더라고.”

영화 '미스터 고' 김용화 감독
태권도 선수 출신 운동 마니아
흥행보다 관객 만족도가 중요



 스키점프를 다룬 영화 ‘국가대표’로 충무로에서 우뚝 선 김 감독. 이번엔 야구를 소재로 한, 그것도 고릴라가 홈런을 펑펑 때리는 영화 ‘미스터 고’를 내놨지만 흥행은 참패 수준이다. 개봉 3주째 130 만에 머물고 있다. 그래도 김 감독은 씩씩했다. “고릴라는 판타지이지만 야구는 진짜다. 스코어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었느냐, 내 영화를 본 관객이 얼만큼 만족하느냐다.” 영화의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에선 높은 평가를 받은 ‘미스터 고’는 중국과 태국에선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올라있다. 지난 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온 그를 만났다.



 -최동원·선동열을 극화한 영화(퍼펙트 게임)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어떻게 200억원을 투입해 고릴라가 주인공인 야구영화를 만들려 생각했나.



 “허영만 선생님의 원작 만화 ‘제7구단’은 황당하지만 인간에 대한 신랄한 해학과 풍자가 있다. 인간이 만들어 즐기는 야구에 괴력의 고릴라가 등장해 인간을 압도한다. 또 상대팀은 고릴라를 이기기 위해 다른 고릴라를 영입한다. 영화를 통해 고릴라를 얘기한 게 아니라 인간의 한계와 편협함을 말한 것이다.”



 -스포츠 영화는 리얼리티를 살리기 어렵다. 역동적인 걸 원한다면 액션 영화를 만드는 게 낫지 않나.



 “춘천고에 진학하기 전까지 난 태권도 선수였다. 소년체전에서 은메달도 땄다. 난 스포츠맨이다. 액션신을 잘 만들 자신이 있지만 스포츠 영화를 계속 만들고 있다. 스포츠를 통해 다른 데서 느낄 수 없는 흥분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스포츠는 소재이자 배경이고, 결국 얘기하고 싶은 건 고통받는 인간의 내면이다.”



 - 두산의 열성 팬이라고 들었다.



 “초등학교 땐 삼미 슈퍼스타스 어린이 회원이었다. 나중엔 서울 팀을 좋아하게 됐는데 특히 ‘쿨한’ 팀컬러를 가진 두산에 끌렸다. 박철순·윤동균 선수가 내 영웅이었다.”



 -한국시리즈가 아닌 준플레이오프가 영화의 무대다.



 “고릴라 링링 덕분에 하위권에 있던 두산이 4위에 올랐다. 나중에 두산이 링링 없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다. 한국시리즈는 7차전까지 이어져 긴장감이 떨어진다. 링링이 활약하고, 위기를 맞고, 돌아오는 과정을 담기엔 준플레이오프 5경기가 알맞다고 생각했다.”



 클라이맥스 무대가 한국시리즈가 아닌 건 두산 팬의 자존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팬으로서 두산 우승에 기여하는 고릴라의 비중이 그 정도(준플레이오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추신수와 류현진도 카메오 출연했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돼 친해졌다. 지난 겨울 촬영을 부탁했더니 두 선수 모두 흔쾌하게 허락했다. ‘축제 같은 영화’라며 좋아했다. 두 선수를 보면 야구를 정말 재미있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당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나. 추신수와 류현진은 그런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 각본으로 짜여진 스포츠 영화가 진짜 스포츠를 이길 방법은.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이 야구 중계를 보러 오는 건 아니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내게 큰 울림을 줬다. 주인공이 야구선수로서 ‘루저’일지 모르지만 영화는 그의 작은 실패를 깊이 있게 다뤘다. 그의 실패는 무능이 아니었다. 나도 야구를 통해 인생의 긴 여정을 담고 싶었다.”



 - 스포츠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은 빡빡한 일상에서 해방되고 싶어 한다. 힘든 세상을 살다가 3시간 동안 웃고 소리칠 수 있는 건 야구장에서만 가능하다. 1000만 관객 영화가 나왔듯 프로야구 1년 관중이 1000만 명을 넘을 날이 올 것이다.”



 -하루 쉬는 날이 있다면 평점 높은 영화를 보겠는가. 두산-LG 라이벌전을 보겠는가.



 “야구를 보러 가겠다. 야구를 보고 싶은 마음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당장 가서 보는 수밖에 없다. 영화는 지금 안보고 50년 뒤에 봐도 감동이 그대로일 거다.”



 김 감독은 ‘미스터 고’에서 준플레이오프 5차전이 끝나고 고릴라들이 난동을 피우는 장면을 꼽았다. “인간이 필요해서 데려온 고릴라들이 인간의 승부를 망쳤다. 그쯤에서 고릴라의 판타지를 끝냈는데, 세련된 선택이었다고 자평한다. 스포츠도, 인생도 최고조에 오른 다음 엉망이 된다. 그때 조심해야 한다. 반대로 나쁠 때라도 실망할 필요 없다. 때문에 영화의 흥행 스코어가 저조해도 난 걱정하지 않는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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