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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텐진(天津)의 추억

중앙일보 2013.08.13 10:10
천자진도(天子津渡)라는 의미를 가진 텐진은 610년 전 명(明)의 영락제(永樂帝)가 정변을 통해 황제가 된 후 처음으로 건너 간 나루라는 의미로 영락제가 직접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텐진은 베이징 보다 한반도에 더욱 가까워서인지 한국인이 많이 모여 산다. 수교이후 중국 땅을 텐진에서 처음 밟고 이삿짐이며 물품을 텐진의 항구에 가서 찾은 우리에게는 특별한 추억의 도시이다.

우리가 중국과 수교를 하고서도 대한항공등 국적기가 베이징의 수도공항 취항이 허가 되지 않았다. 당시 베이징을 갈 경우 텐진 공항에서 내려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베이징 텐진 고속도로를 에어포트 로드(공항로)처럼 사용한 추억도 있다.

텐진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 중국의 고속철도시대를 연 베이징텐진을 30분에 주파하는 고속철이 운행 된지도 지난 8월1일로 만 5년이 된다. 이제 베이징과 텐진은 같은 도시권이다. 더구나 베이징의 신공항이 베이징과 텐진의 중간쯤에 건설 된다고 하니 공항을 중심으로 베이징과 텐진을 아우르는 거대한 도시가 이미 예고되고 있다.

텐진은 교육도시이기도하다. 저우언라이(周恩來)총리의 모교인 난카이(南開)대학이 1919년 개교되었지만 텐진대학의 역사가 더욱 오래된다.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이 강연을 한 칭화(淸華)대학이 1911년에, 청조(淸朝)의 경사(京師)대학당으로 시작한 베이징 대학은 1898년에 개교되었고 텐진대학은 이보다 3년 앞서 1895년에 시작되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교훈으로 하는 텐진대학의 마크를 보면 “베이양(北洋)”이라는 글자가 학교의 로고로 되어 있다. 1895년 개교된 베이양대학을 계승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텐진대학은 한국의 유학생이 많지만 한국의 독립 운동가 김규식박사가 1927년부터 1929년간 당시 베이양대학에서 영어교수로 근무하였기 때문에 우리와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김규식박사는 조선조 말 새문안 교회의 언더우드 목사의 지원으로 미국에 유학하여 영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많은 한국의 독립 운동가는 김규식박사에게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

김규식박사는 베이양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면서 텐진에서 모처럼 가족과 함께 단란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그 후 상하이 임시정부에 입각되고 해방 후 김구선생과 함께 귀국 한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가 6.25 당시 북한군에 납치되어 북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지금부터 10년 전에 발간된 논픽션 “상하이 올드 데이스”를 읽어 보면 김규식박사가 텐진에 있을 때 그의 두 번째 부인인 김순애의 조카 김덕린을 데리고 있었다고 한다. 김덕린은 김규식박사의 처음 결혼에서 얻은 아들 김진동과 동갑나기이지만 두 사람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난카이 중학에 다니던 김덕린은 고모 집의 환경이 맞지 않아서인지 공부보다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몰래 영화잡지를 구해 보는 등 고모 내외의 속을 썩였다고 한다.

김덕린은 노신(魯迅)의 영향을 받아 이름을 신(迅)으로 바꾸었다가 후에는 불꽃같은 인생을 꿈꾸며 염(焰)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고 고모 집을 무단가출 영화의 메카 상하이로 내려갔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김염은 상하이에서 천신만고 끝에 영화배우로 성공하여 1930년대 중국 영화계의 황제(影帝)칭호를 받는 등 이름 그대로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고 한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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