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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겪었다고 면역 안 생겨 … 7~8년마다 반복

온라인 중앙일보 2013.08.11 09:36



맨 얼굴의 경제 ② 금융 위기는 홍역 아닌 감기

최범수, 신한아이타스 사장.
지금도 외환위기 전후의 장면은 흑백의 느린 화면으로 떠오른다. 1997년 7월 2일 태국 바트화가 폭락하면서 동아시아 전체가 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때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유럽이 ‘무풍의 오아시스’라는 한가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1년 뒤 98년 8월 17일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지급정지)을 선언하고, 동유럽 투자 비중이 높은 도이체방크부터 주가가 폭락하면서 경제의 이상 징후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어 브라질이 무너지고 9월 23일엔 세계 금융 본산인 뉴욕의 LTCM(Long-term Capital Management)이 14개 금융기관으로부터 36억 달러의 구제자금을 받으면서 세계 경제 종말의 위기, ‘아마겟돈 시나리오’가 시작됐다.



발권력까지 동원해 금융 혈맥 뚫어

미국에선 빌 클린턴 대통령까지 나서서 서방 선진국의 금리 인하를 주창하고, 서둘러 금리를 내렸다. 돈을 최대한 풀어서라도 위기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직격탄을 맞은 한국도 98년 9월 64조원의 공적자금 중 절반 이상을 일거에 투입해 반전을 꾀한다. 이전에 회생 가능성이 희박한 기업과 금융회사를 1차 정리했기 때문에 자금이 엉뚱하게 새거나 허비되지 않으리라 판단하고, 막힌 금융 혈맥을 뚫기 위해 ‘심장 박동’을 배가한 것이다. 대내외적으로 금융정책 기조가 맞아떨어지면서 10월 중순이 되자 국내 회사채 금리가 드디어 한 자리 숫자로 떨어진다.



그로부터 꼭 10년 뒤인 2008년 9월 13일 토요일.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 티머시 가이트너의 소집에 불려나간 크레디트스위스의 미국 대표 카엘로는 강한 ‘데자뷰’(기시감)를 느꼈다. 10년 전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 문제를 논의했던 미국과 유럽의 주요 은행들이 이제는 사람들만 바뀐 채 리먼브러더스 문제를 놓고 모인 것이다. 10년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리먼브러더스는 다음날 파산한다. 리먼 파산 4주 후인 10월 12일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빅 나인’이라고 불리는 대형 은행의 CEO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이튿날 대책회의에 참석하라고 통보한다. 그리고 다음날 부실 자산 구제계획자금 1250억 달러, 무려 130조원을 9개 은행에 우선주 형태로 투입했다.



잇따라 중소형 은행에도 대규모 자본DMF 투입했다. 중앙은행의 발권력까지 동원했다.



정확히 얼마가 필요한지, 용도가 무엇인지는 따질 겨를조차 없었다. 세계 금융에 ‘아마겟돈’이 발발했으므로 미국 금융의 혈맥이 막히지 않도록 돈을 푸는 게 급선무였던 것이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더욱 적극적이었다. 그는 하버드·MIT·스탠퍼드·프린스턴 대학에서 대공황을 연구하고 가르친 학자 출신이다. 금융 위기의 가공할 파괴력과 초기 진화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9월 14일 리먼 파산 직후부터 그해 말까지 100일 동안 그 이전 100년간 찍어낸 통화량 만큼의 달러를 시중에 풀었다. <그래프 참조> 이때 필자는 영화 ‘타워링’을 떠올렸다. 초고층 빌딩에 화재가 발생해 속수무책이었다. 소방대장 스티브 매퀸은 다이너마이트를 들고 옥상에 올라가 자신을 기둥에 소방호스로 묶은 다음 물 탱크를 폭발시켜 단번에 불을 끈다. 이처럼 과감하고 대폭적인 통화 공급만이 금융 위기의 불을 끌 수 있다.



미국은 평균 7~8년 만에 한번씩 금융위기를 겪었던 탓에 위기가 발생하면 늘 하던 상식에 따라 대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반면 유럽연합(EU)은 위기가 와도 국가 간에 합의가 쉬 이루어지지 않는데다,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트라우마가 있는 독일의 분데스방크가 극력 반대해 양적 완화 정책을 하다 말다 했다. 이런 탓에 지금 미국은 소비자 신뢰지수나 주가지수가 이전 수준을 회복한 반면 유럽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혀 있다.



단호한 초기 진화가 급선무

한국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92년 5월 27일 아침 한남투자신탁 목포지점에 인출 사태가 발생했다. 그날 오전부터 광주 본점에 사람들이 몰려 들었고 오후에는 당시 삼풍아파트 건너편에 있던 서울지점에까지 줄이 늘어섰다. 시작은 89년 12월 12일 금융당국이 증시 부양을 위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한국·대한·국민 3개 투신으로 하여금 주식을 사게 한 것이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이를 ‘12·12사태’라 부른다. 이듬해 만우절 날 주가지수가 1004포인트를 기록한 이후 주가가 계속 떨어지면서 투신사의 평가손실이 눈덩이처럼 쌓였다. 금융 시스템의 위기 가능성이 제기되자 한은 특융(한국은행이 금융기관들을 지원하기 위해 제공하는 특별융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거론되었다. 경제 전문가들이 잇따라 대책을 촉구했지만 조순 한은 총재는 “최후의 방편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다”라며 예의 흰 눈썹만 꿈틀거릴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남투신 인출사태로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다음날 아침 일찍 TV 기자회견을 열고 3조원의 한은 특융을 즉각 공여할 것임을 밝혔다. 기실 한남투신은 89년 증시부양 대책에 참여하지 않은 데다, 주식형 수익증권의 비중이 높아 수익성이 어느 정도 양호한 편이었다. 하지만 일단 위기에 불이 붙으면 이성적인 설명과 상식적인 대처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즉각적으로 초유의 조치를 동원해서라도 단호한 행동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위기도 반복된다. 역사가 똑같이 반복되지 않은 것처럼 위기도 진화한다. 홍역은 한번 ‘면역’을 얻으면 평생 유지되지만 감기는 겨울에 걸렸다가 여름에 다시 걸리기도 한다. 바이러스 종류가 많고, 끊임없이 변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대에는 중국의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가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인을 사망시키는 데 일주일도 걸리지 않는다. 금융위기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DNA에 포퓰리즘과 서브프라임(Sub-prime), 신용부도스와프(CDS) 같은 꼬리가 붙은, 새로운 변종에 의한 것이다.



대학 시절 들은 ‘경제 성장론’이란 수업에서 기억나는 대목 중 하나는 경제가 성장하면 소득분배가 개선되지만, 어느 수준을 지나면 다시 악화된다는 경험법칙이다. 위기가 발생하면 여유 자금이 있는 계층은 이를 피하거나 오히려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저소득층은 별 방법 없이 극빈층으로 전락하고 다수의 중산층도 무너져버린다. 이를 긴 시계열에 놓고 보면 경제가 고도로 발전할수록 소득 분배는 점점 악화되는 것으로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의 중산층이 피폐화됐고, 현재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유럽의 청년 실업률이 50% 수준으로 치솟은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위기의 첫 징후는 은행 적자

위기의 첫 증후는 다수 은행이 적자로 돌아서는 것이다. 가계나 기업의 부실은 물론 국제 금융의 혼란도 다 은행의 부실로 귀착된다. 금융의 수익성이야말로 위기의 바로미터다. 위기를 막기 위해 은행이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말은 국민 정서에 반할지 몰라도 진정 국민을 위한 길이다.



지금 한국 경제와 한국 금융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그간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 줬던 중국도 심상치 않고 일본발 환율 전쟁도 우려된다. 홍수가 나면 저지대가 먼저 침수되듯 국제 금융이 흔들리면 취약점을 드러낸 나라부터 희생양이 된다. 늘 해오던 대로 금도와 상식만 따지다 보면 시간을 놓친다. 떨어지는 칼을 잡을 용기와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2008년 9월 벤 버냉키 의장이 말했다.



“참호에 머리를 박은 병사 중에 무신론자가 없는 것처럼 금융 위기에도 이데올로기가 없는 법이다.”



최범수 예일대 경제학 박사. 전 KDI 연구위원.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자문관으로 금융 구조조정을 기획했다. 국민은행 부행장, 신한금융지주 전략부사장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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