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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의 글로벌 포커스] 美 양적완화 축소, 박수칠 일이다

중앙선데이 2013.08.11 00:34 335호 20면 지면보기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tapering)’ 하면 으레 따라붙는 말이 ‘우려’ 내지 ‘악재’다. 지난주 글로벌 금융시장은 양적완화 축소 이슈 때문에 또 한번 출렁거렸다. 미국의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이 그 시기가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은 탓이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지난 6월 양적완화 축소 계획을 처음 제시했을 때도 시장은 요동쳤다. 버냉키는 매월 850억 달러씩 채권을 사들여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를 “올 하반기 중 축소하기 시작해 내년 중반 종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버냉키는 전제를 달았다. 고용 등 경기지표가 지금 추세대로 계속 좋아져야 그렇게 하겠다는 설명이었다. 그 뒤 글로벌 증시는 미국의 경기지표가 좋게 나오면 오히려 떨어지는 진풍경을 자주 연출했다. 양적완화 축소가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언젠가는 건너야 할 운명의 강
냉정하게 짚어보자. 과연 마냥 걱정할 일일지. 최근 글로벌 경제 상황을 보면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서 연출되는 누 떼의 대이동 장면이 떠오른다. 수만 마리의 누 떼가 강 앞에 밀집해 머뭇거린다. 건너편이 뻔히 보이는 좁은 강이다. 걱정은 급류 속에 숨어 있는 굶주린 악어들이다. 누군가 잡아먹힐 수밖에 없다. 주로 허약한 녀석들일 게다. 그래도 누 떼는 도강을 감행한다. 메마른 초원에 계속 머물렀다가는 더 큰 희생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새 풀이 돋아나는 강 건너로 가야 종족을 더 크게 번식시킬 수 있다.

일러스트 강일구
누 떼는 리더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도강에 앞서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보강한다. 리더는 희생을 최소화할 위치와 시점을 잡아 무리를 이끈다. 때로는 리더의 오판 때문에 필요 이상의 희생을 초래한다. 대오가 흐트러져 허둥대다 익사하는 녀석들이 훨씬 많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장면은 양적완화 축소 이슈에 딱 들어맞는다. 글로벌 경제의 리더 미국은 ‘양적완화 축소’의 강을 건너기로 결심했다. 시장과 다른 나라들에 이런 계획을 알리며 각오를 다지라고 한다. 언제까지 제로금리로 달러를 찍어 경제를 떠받칠 순 없기 때문이다. 비정상적 조치인 양적완화의 단맛에 푹 빠지면 경제의 정상화는 갈수록 요원해질 수 있다.

충분히 강해진 미국 경제의 체력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양적완화가 미국뿐 아니라 신흥국 전반에 ‘스테로이드’ 같은 역할을 한다”고 했다. 적절한 시점에 약을 과감하게 끊어야지, 당장 힘들다고 계속 썼다가는 영원히 환자로 남을 것이란 얘기다.

금리 기능이 작동하고 이를 통해 시장에서 자금이 배분돼야 투자와 소비가 견고해지면서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제로금리에 더 많은 금융자산이 세팅될수록 금리 정상화의 충격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디플레이션의 위험은 커진다. 일본이 그랬다. 벌써 10년 넘게 양적완화를 끌어왔지만 경제는 허약할 대로 허약해졌다.

미국 경제의 체력은 양적완화 축소를 단행하기에 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좋아지고 있다. 주택경기가 살아나고 기업들이 투자를 재개하면서 일자리가 꾸준히 늘고 있다. 미래 경제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계의 소비심리도 살아나고 있다. 고질병이었던 쌍둥이 적자까지 개선되고 있다. 올 상반기 무역적자는 2421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감소했다. 셰일가스 생산에 따른 에너지 수입 감소와 제조업 수출 확대 덕분이다. 지난해 10월 이후 올 6월까지 재정적자는 5120억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43%나 줄었다. 시퀘스터(예산 자동삭감)가 뜻하지 않게 효자 노릇을 하는 데다 세금도 기대 이상으로 걷히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등 약한 고리 희생양 되나
미국으로선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어 보인다. 9월이 됐든 12월이 됐든 따지고 보면 별 차이도 없다. 걱정은 미국 뒤의 무리다. 미국을 따라 강을 건너기엔 체력이 너무 허약한 나라들이다. 모건스탠리는 그런 곳으로 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네시아·터키 등을 꼽았다. 재정·경상수지 적자가 심한 탓에 글로벌 금리가 오르면 자칫 외환위기가 터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고 인정사정 봐줄 미국이 아니다. 알아서 제 살 길을 찾아야 할 일이다. 몇몇 국가가 희생될 순 있어도 글로벌 경제 전체로는 더 나은 환경을 맞을 정상화의 수순이다. OECD와 국제통화기금(IMF)·유럽연합(EU) 등이 박수를 치는 이유다.

한국의 운명은 어떨까. 종합적인 체력에 비추어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준비 없이 너무 허둥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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