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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리즘·새마을운동과 통하는 자기계발서 원조

중앙선데이 2013.08.11 01:40 335호 28면 지면보기
초상화·풍경화 화가인 조지 리드(1841~1913)가 그린 새뮤얼 스마일스의 초상화. 1870년대 작품으로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이 소장하고 있다.
자조(自助·self-help)는 마거릿 대처(1925~2013) 전 영국 총리가 되살리려고 애쓴 빅토리아 여왕 시대 영국의 가치 유산이다. 해가 지지 않는, 지구 땅덩어리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대영제국은 자조의 정신이 넘쳐 흐르는 나라였다. 자조는 작은 국가, 자유 시장 등과 더불어 대처주의(Thatcherism)의 한 축을 이뤘다.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⑬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

영어 ‘self-help’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1831년 사상가·역사가 토머스 칼라일(1795~1881)로 추정되지만 이 단어로 민(民)의 마음과 상상력을 사로잡은 인물은 사회운동가·저술가인 새뮤얼 스마일스(1812~1904)다. 『자조론』(1859)을 통해서다. 한때 『자조론』은 영국인들이 성경만큼이나 애지중지하는 책이었다. 출간 첫해 2만 부, 스마일스 생전에 25만 부가량이 팔렸다. 문맹률이 높은 시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부수다.

오스만제국의 이집트 총독도 사로잡아
『자조론』은 국제적인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당시 한 영국인이 오스만제국이 이집트에 파견한 총독(Khedive)의 관저를 방문했는데 벽에 뭔가 적혀 있었다. 코란에 나오는 말인 것 같기도 한데 긴가민가해 “어디 나오는 말이냐”고 물었더니 총독은 문구가 “『자조론』에 나온다”며 “영국 사람이 스마일스도 모르느냐”는 핀잔을 줬다.

『자조론』의 한글판(왼쪽· 21세기북스)과 영문판(옥스퍼드대 출판부 월드클래식판).
한국과 일본에 『자조론』이 번역된 것은 1906년이다. 도요타자동차의 전신인 도요타자동직기제작소를 1926년 창립한 도요다 사키치(1867~1930)는 『자조론』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자조의 정신은 세계가 우러러보던 ‘도요타 웨이(Toyota Way)’에도 흡수돼 있다. 도요다사키치기념관에 가면 『자조론』이 전시돼 있다. 새마을운동의 정신인 ‘근면·자조·협동’에 나오는 자조도 스마일스의 『자조론』과 알게 모르게 맥이 닿아 있다.

『자조론』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과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같은 해인 1859년 발간됐다. 오늘날 사람들은 다윈이나 밀은 알아도 스마일스는 잘 모른다. 어찌된 일인가. 여러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중 한 가지는 이것이다. 『자조론』으로 시작된 ‘세포분열’로 『자조론』의 후예들이 거대한 출판산업을 이뤘지만 정작 『자조론』과 스마일스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는 ‘셀프헬프 북(self-help book)’을 번역한 말이다. ‘self-help book’은 ‘자조도서(自助圖書)’로도 번역할 만하다. ‘자기계발서’라는 번역도 괜찮은 번역이다. 자조는 “자기의 발전을 위해 스스로 애씀”을 뜻하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자기계발서를 읽었음에도 스스로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느낀다면, 자기계발서의 원조인 『자조론』을 읽어보는 것도 돌파구다. “유럽 철학 전통은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주석으로 이뤄졌다는 게 유럽 철학 전통에 대한 가장 안전하고 일반적인 규정이다”라는 영국 철학자 앨프리드 화이트헤드(1861~1947)의 말을 패러디한다면 “자기계발서는 스마일스의 『자조론』을 확장한 그 무엇이다”라고 정의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조론』은 정치 개혁보다 개인의 개혁이 더 시급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아니, 아무리 노력해도 정치 개혁은 잘 안 되며, 개인의 개혁도 어렵지만 정치개혁보다는 쉽다는 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스마일스의 판단이다. 젊었을 때 스마일스는 급진 신문(리즈 타임스·Leeds Times)의 편집인 등의 역할을 하며 의무교육이나 투표권 확대, 노동자 권리 증진을 위해 애썼다. 그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귀족들을 미워했다. 그러나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의 위선에 넌덜머리가 났고, 그들이 폭력을 변화의 도구로 삼겠다고 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스마일스가 대영제국이 위대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니 국가가 잘나서가 아니라 국민이 잘나서였다. 정부가 국민을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 개개인이 자조의 힘을 구현할 수 있었다. 스마일스는 개인에게서 변화의 가능성을 봤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조의 정신은 개인의 모든 진정한 성장의 뿌리다. 많은 사람의 삶에서 자조의 정신이 발휘되는 게 국가의 활력과 힘의 진짜 원천이다.”

『자조론』은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을 역사 속 사례로 입증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자조론』에는 100여 명의 역경을 이겨낸 위인 이야기가 나온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넘어지는 것도 기쁨으로 삼은 거목들이다. 예컨대 그랜빌 샤프(1735~1813) 같은 인물이다. 샤프는 정부 토지측량부에서 근무하는 사무원이었으나 틈틈이 그리스어·히브리어를 공부해 성서 주석에 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영국의 노예제 폐지 운동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추모 인파 빅토리아 여왕에 버금가
『자조론』이 말하는 성공의 비결은 집요함·부지런함·참음 같은 것들이다. 스마일스에겐 천재도 사실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바흐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열심히 일했다. 나만큼 열심이면 누구나 같은 성공을 이룰 것이다.”

『자조론』에는 주옥 같은 말도, 생각거리도 많다. 이런 말들이다. “많은 일을 하는 최고의 지름길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다.” “성격이 힘이다. 성격은 지식보다 강한 힘이다.”

92세를 일기로 스마일스가 사망했을 때 영국 사회의 추모 분위기나 장례 행렬이 몇 년 전 빅토리아(1819~1901) 여왕이 돌아갔을 때에 버금갔다는 게 당시 사람들의 전언이다. 엄청난 명사였지만 『자조론』에 대해서는 스마일스 생전에 여러 각도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그중 한 가지는 ‘일만 하면 인생의 즐거움은 언제 즐기느냐’였다. 일리가 있는 비판이다. 스마일스 사후 발간된 『자서전』(1904)을 보면 스마일스는 비록 92년 장수는 했으나 무병은 못했다. 이미 50대에 발작(stroke)을 겪었다. 일하느라 식사도 거르는 일이 많았다. 소화 기능이 약화되다 보니 체력이 저하되고 밤잠도 잘 못 잤다. 스마일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멈출 수 없는 일 중독자였다.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람들도 비판에 나섰다. 스마일스는 1866년 개정판 서문에서 “제목만 보고 이기심을 부추기는 책이라고 속단하는 사람이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노동운동가들도 1914년을 기점으로 스마일스에 대한 관점이 적대적으로 바뀌었다.

『자조론』을 읽고 인사이트(insight)를 얻었다면 『자조론』과 더불어 스마일스의 4대 복음으로 불리는 『인격론(Character)』(1871), 『검약론(Thrift)』(1875), 『의무론(Duty)』(1880)도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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