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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세상탐사] 전세 제도의 퇴장

중앙선데이 2013.08.11 02:00 335호 31면 지면보기
한여름 폭염 속에 난데없이 전세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전세 매물이 자취를 감춘 가운데 전셋집을 구하려는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기왕에 전세를 살고 있는 이들도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성화에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마련하느라 전전긍긍이다. 전세금이 한두 달 새 수천만원씩 오르는 일이 다반사요, 전셋값이 집값을 넘어서는 기현상마저 벌어지고 있다. 전세수요가 많은 중소형 주택의 전셋값이 중대형의 전세금을 앞지르는 역전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미친 전세’라는 말이 실감난다.

 도대체 주택 전세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사실 전셋값의 결정 원리는 공급이 줄고 수요가 늘면 물건값이 오르는 일반적인 상품시장의 가격원리와 다를 게 없다. 전세를 내놓는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니 전셋값을 올리는 거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주간 전세금 동향에 따르면 전국의 주택전세금은 지난주까지 51주 연속으로 올랐다. 전세 물량의 수급불균형이 1년째 계속된 것이다. 작금의 전세대란은 그동안 누적된 수급불균형이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접근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문제는 전세 수급의 불균형이 장기간 지속되는 원인이 뭐냐는 것이다. 원인을 알아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러자면 전세라는 임대차제도의 성립 조건부터 살펴봐야 한다. 전세시장의 가격은 기본적으로 수급 상황에 따라 결정되지만 수요·공급은 주택 매매 조건, 주택자금 대출여건과 같은 배후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일반적인 상품의 수급과 사뭇 다른 포인트다.

 전세 제도는 주택 물량 부족과 집값 상승, 대출시장 경색 등의 조건이 고루 충족됐을 때만 성립되는 독특한 임대차 방식이다. 우리나라 인구가 계속 늘어나던 시기에 새로운 주택수요가 생기고, 집값이 꾸준히 오를 것이란 기대가 일반화됐을 때 자리잡았다. 더욱이 자금시장이 빡빡해 주택자금을 손쉽게 빌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 돈에 전세금을 합쳐 집을 사두면 이득이 됐다. 전세 공급자는 자기자본과 타인자본(전세금)을 동원해 자본이득(주택가격 상승)을 얻을 수 있어서다. 월세가 부담스러운 세입자에게도 원금을 돌려받는 전세는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방식이었다. 전세는 이처럼 양측의 이해가 딱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한 임대차 제도였던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전세 제도를 뒷받침했던 전제조건들이 모두 무너졌다. 우선 주택 공급이 늘고 인구 증가는 둔화됐다. 만성적인 공급 부족이 해소된 거다. 2012년 현재 우리나라의 주택보급률은 공식적으로 102.7%에 이르렀다. 주택의 절대물량은 요즘 남아도는 상태다. 그 결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선 몇 년째 주택가격이 심각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집을 사두면 돈이 된다는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됐다. 오히려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란 걱정이 앞선다. 주택대출조건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월해지고 대출금리는 바닥 수준으로 낮아졌다. 그럼에도 전세 공급자 입장에선 굳이 전세를 끼고 집을 사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집을 잘못 샀다간 손해를 볼 지경이어서다. 반면에 세입자 입장에선 집을 사기보다는 전세가 백 번 유리하다. 그래선지 잠재적인 주택 구입 대기자들은 구입을 미룬 채 전세를 선호한다. 주택매매시장의 침체가 전세수요의 확대를 초래한 것이다. 이렇게 공급과 수요의 격차가 확대되는 바람에 지금 같은 전세대란이 초래된 셈이다.

  전세 수급불균형의 타협점은 이른바 반(半)전세다. 전세금 인상분을 월세로 돌려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어정쩡한 과도기 방식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이미 집값이 많이 떨어진 지방을 중심으로 월세 전환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수도권에서도 이런 현상이 확산되는 추세다. 주택 보유를 통한 자본이득을 기대하기 어려워지자 임대주택 공급자로선 주택투자에 따른 보상을 임대수익으로 보전할 수밖에 없어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전세 제도가 조만간 주택 임대차시장에서 퇴장당할 운명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요즘 확대하고 있는 전세자금 대출 같은 정책은 전세수요를 늘려 오히려 전세대란을 부추길 뿐이다. 그보다는 전세시장의 퇴조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전세의 월세 전환 속도를 늦추고, 월세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또 다주택 보유자를 투기꾼으로 몰기보다는 오히려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자로 키워줘 임대시장의 안정을 꾀하는 게 더 긴요하다. 그것이 월세 증가 시대에 걸맞은 정책 대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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