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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만에 … 간송미술관 명품들 반가운 외출

중앙일보 2013.08.09 03:00 종합 2면 지면보기
내년 3월부터 3년에 걸쳐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릴 기획전에 나올 간송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혜원(蕙園) 신윤복의 ‘미인도’(왼쪽 사진)와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 한글의 창조성을 오늘에 잇고, 조선시대 여인의 미감을 현대 패션과 접목한다는 의미다. [사진 간송미술관]


8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오른쪽)과 백종원 서울디자인재단 대표가 공동전시 협약을 체결했다. [강정현 기자]
한국 미술의 보물 곳간 간송미술관이 개관 이래 최초로 외부에서 기획전을 연다. 1938년 서울 성북동 97의 1번지에 우리나라 1호 사설 박물관으로 문을 연 지 76년 만이다.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소장품을 밖으로 내보낸 건 국보인 ‘훈민정음 해례’의 국립중앙박물관 일시 대여 등 몇 건에 불과하다. 간송 수장품의 바깥 나들이는 새로운 100년을 내다보는 간송미술관 대변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서 기획전
내년 3월 훈민정음 해례 첫 전시
3년간 ‘미인도’ 등 2000점 나들이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8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찾아 백종원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와 공동전시 협약을 체결했다. 내년 3월 개관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2014년 봄부터 2017년 봄까지 3년 동안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장기 기획전을 연다는 내용이 뼈대다. 한국인의 독창적인 창조정신의 원형을 갈무리해 온 간송미술관과 새로운 미래 디자인 가치를 창출할 서울디자인재단의 뜻이 통한 셈이다.



혜원(蕙園) 신윤복의 ‘미인도’
 구체적인 전시 내용은 서울시 재단법인 설립 허가가 난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책임 구성하기로 했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장소 제공 및 예산, 기술, 인적 후원을 맡는다. 우선 3월 개관 첫 전시는 한글을 주제로 한다는 데 양측이 합의했다. 간송의 대표 소장품인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를 중심으로 한글의 민주정신과 실천적인 창조성을 돌아보는 기획전이다. 이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한 구성요소인 패션에 주목해 신윤복의 ‘미인도’ 등과 연계한 패션 테마전 등을 꾸릴 예정이다. 이날 협약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공개 소장품 수는 2000여 점. 한 번 전시에 3~6개월, 평균 160여 점이 나오는 셈이다. 디자인박물관이 1452㎡(약 440평) 크기이므로 전시공간으로는 넉넉하다. 공간 분위기도 간송 소장품의 품격과 맞는다.



 8일 오후 현장을 둘러본 전영우 간송미술관 관장은 “실무자들이 애 많이 썼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더구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세계적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가 설계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건축물이라 간송 소장품의 첫 외부 공개 장소로 적절하다는 평이다.



 백종원 대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립 초기부터 간송미술관 분관 유치를 희망했던 만큼 큰 힘을 얻게 됐다”고 자평했다. 한문철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장은 “좋은 사업이라고 평가해 서울시도 협의를 마쳤다”고 말했다.



 간송은 또 한편으로 내년 7~9월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대형 기획전을 열기로 기본 사항을 합의했다. 노후한 서예박물관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뒤 여는 재개관 기념전 형식이 될 예정이다. 조성문 예술의전당 전시사업부장은 “한국 문화의 정수를 의연하게 지켜온 설립자 간송 전형필 선생과 간송 일가를 지원하는 일이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일절 외부 전시를 하지 않았던 간송미술관의 대변신은 미술관 내부의 세대 교체와 시대적 요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해마다 봄·가을 두 차례 2주에 걸쳐 여는 무료 정기 기획전만으로는 전시 유물의 보존과 유지가 힘겨웠던 까닭이다. 국가 박물관보다 오히려 더 큰 평가를 받아온 유물의 미래와 한정 공개에 대한 일반 여론의 비판이 계속 이어져온 것도 변혁의 바람을 일으킨 요인이 됐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이달 22일 첫 이사회를 열어 이런 다각도의 변신 방향을 보고해 간송 일가와 이사들의 동의를 구하는 수순을 밟는다. 실무를 맡고 있는 간송 집안의 큰손자 전인건(43)씨는 “민족의 문화적 자긍심을 지키려 평생을 바치신 간송의 유지를 오늘에 잇고 새로운 미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간송미술관=일제강점기 간송(澗松) 전형필(1906~62) 선생이 사재를 털어 수집한 문화재를 수장·연구·전시하기 위해 1938년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박물관. 삼국시대부터 조선말·근대에 이르기까지 서화·전적·도자·공예 등 조형미술 전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소장품을 자랑한다. 국보 제68호 ‘청자상감 운학문 매병’, 제135호 ‘혜원 전신첩’ 등 국보 12점과 보물 10점 외에 조선 진경시대를 연 겸재(謙齋) 정선의 서화, 추사(秋史) 김정희의 글씨 등을 보존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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