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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실한 입법이 '고무줄 규제' 멍석 깔았다

중앙일보 2013.08.09 00:02 종합 30면 지면보기
국회가 지난 상반기에 통과시킨 4개 경제민주화 관련법이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정식으로 의결됐다. 그러나 기업 활동을 규제하고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이들 법률이 규제 대상과 범위를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어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법률 문구가 ‘상당히’나 ‘현저히’ ‘부당한’처럼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수식어로 포장돼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정거래법 23조 불공정거래행위 금지조항은 ‘부당한’이란 형용사가 각 호마다 등장하지만 어떤 행위가 부당한지는 적시하지 않고 있다. 또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해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면서 어느 정도가 현저히 유리하다는 것인지 설명이 없다. 같은 법의 ‘부당한 사익 편취 금지조항’도 부당 내부거래 규제 대상을 ‘총수 일가가 일정 수준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계열사’로 정의하고 있다. 규제 대상을 가리는 지분율은 법만 봐서는 알 수 없다. 하도급법 16조는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하거나 사업자의 사업 내용 또는 활동을 제한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부당한지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화학물질관리법과 자본시장법에도 곳곳에 ‘현저한’과 ‘부당한’이란 모호한 수식어가 난무한다. 규제하겠다는 의욕만 앞섰을 뿐 정작 누구의 어떤 행위를 규제할지는 제대로 정의하지 않은 대표적인 부실 입법이다.



 이처럼 법의 문구가 모호하다 보니 구체적인 기준은 하위 법령인 시행령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기업에 부담을 주는 규제의 실질적인 판단 권한이 국회가 아니라 행정부의 공무원 손에 맡겨진 것이다. 기업들은 이제 시행령을 만드는 행정부처 공무원들의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다. 국회의 부실 입법이 공무원의 재량에 의존하는 ‘고무줄 규제’에 멍석을 깔아 준 셈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일 수질환경보전법 위헌심판에서 ‘다량의’ 또는 ‘현저한’처럼 모호한 기준을 근거로 위반자를 처벌하는 법조항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국회는 여전히 ‘현저하게’ 위헌적인 법률을 ‘다량으로’ 양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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