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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이 다는 아니다 … 숨은 시인 찾을 것

중앙일보 2013.08.06 00:22 종합 23면 지면보기
황현산의 산문집 제목 『밤이 선생이다』는 프랑스 속담에서 따왔다. 그는 “하룻밤 자고 나면 좋은 생각이 나지 않나. 여유를 가지면 방도가 나타난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는 지금 ‘핫’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지금 한국의 문인이 가장 많이 읽고 있는 책은 그의 산문집이 아닐까 싶다”라고 할 정도로. 그의 비평을 받으려고 시집 출간을 늦추는 시인이 잇따를 만큼. 문학평론가 황현산(68) 고려대 명예교수 얘기다.

산문집 펴낸 황현산 교수



 지난달 30일 서울 홍익대 살롱드팩토리에선 그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난다)의 낭독회가 열렸다. 권혁웅·김언 · 이민하·이원·최정례 등 한국 시단을 이끄는 시인들이 가득 자리를 채웠다. 지난해 펴낸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문예중앙)도 비평집으로는 이례적으로 4쇄를 찍었다.



 - 평을 기다리는 시인이 몇 명인가.



 “7명으로 늘었다. 시평은 올해까지만 쓰려고 한다. 번역 작업에 좀 더 매진할 생각이다.”



 - 젊은 시인에게 왜 인기가 있나.



 “문단에 늦게 나와서 그럴 거다. (그는 45세 때 문학평론가 타이틀을 달았다.) 다른 비평가는 자기들 세대 시인을 읽다 지쳐 젊은 시인들을 안 읽는데, 내가 나올 때는 젊은 애들만 있었으니까. 젊은 시인의 어법을 낯설어 하는 데 나는 그들의 어법을 잘 이해하는 늙은 비평가다.”



시인들이 사랑하는 평론가



 황 교수는 자신의 몸은 ‘언어 갈등의 현장’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 비금도. 낙도 출신으로 익숙한 사투리와 중심부 언어와의 갈등을 겪었고, 불문학 전공한 번역가로 한국어와 프랑스어 사이에서 고투했고, 현대시 전공인 까닭에 프랑스어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말을 다루며 여러 의미의 번역(?)에 도가 통했다는 설명이다.



 언어의 치열한 전장에서 단련된 능수능란함은 이번 산문집에서 다른 방식으로 빛난다.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묶은 책에 실린 글 중에는 20~30년 전에 쓴 것도 있다. 하지만 낡았다는 느낌은 없다.



 - 내용·문체가 시간을 비껴간 듯하다.



 “다루는 팩트는 낡아도 글에 담은 성찰은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도 상투구가 많은 데, 나는 상투적인 어투가 있으면 문장을 지운다. 내 생각을 안 하면 상투적인 말이 나온다.”



 그의 글은 화려하지 않다. 점잖은 단문에 실려 나오는 힘은 무겁다. 맥락을 존중하고 사소한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따뜻하다.



 “우리 모두 자신의 맥락만, 내 사정만 알아달라고 아우성을 쳐요. 그런데 한 사람이 조용히 말하면 귀 기울여 듣잖아요. 그래서 정치인들이 내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어요.”



김이듬 시인도 내가 뽑아



 청탁이 쇄도하는 인기 비평가로 분주하련만, 그는 시인 김정환·김혜순, 출판사 삼인과 함께 시인 발굴 프로젝트에 나선다. “김이듬 시인 내가 뽑았어요. 잘못했으면 지금 등단도 못하고 문단만 탓하고 있을 거에요 (웃음). 애쓰지만 이해 받지 못하는 시인을 찾아낼 생각이에요. 등단 제도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고.”



 ‘젊은 감각’으로 무장한 이 노련한 평론가가 낚아챌 시인이 누구일지 벌써 궁금해진다. 느슨한 듯 치밀한 그의 그물에 걸려들, 새로운 얼굴이.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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