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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재 목타는 일본 … 연공서열 싫어 떠나는 외국인

중앙일보 2013.08.05 00:44 종합 20면 지면보기
“완전히 속았어요. 교묘한 왕따로 우울증까지 생겼고요.”


"일본식 사고로는 세계서 안 먹혀"
기업 26%가 외국인 유학생 채용
승진 지체, 상명하복 문화 못 견뎌
대부분 5년 내 모국 가거나 이직

 “‘5~10년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30살이 됐을 때 난 쓸모없는 사람이 돼 버릴 걸요.”



 일본 기업에 들어간 외국인 신입사원들이 최근 다무라 고타로 전 참의원 의원에게 털어놓은 하소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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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혈주의를 고수해온 일본 기업들은 최근 ‘글로벌 인재’ 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일본인의 기질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국제 감각까지 갖춘 외국인 유학생은 요즘 인기 상한가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일본 기업에 입사한 뒤 느끼는 허탈감은 극에 달한다. 연공서열, 상명하복 기업문화를 견디지 못하고 모국으로 돌아가거나 외자계 기업으로 이직하는 이들이 속출한다.



 취업정보사인 디스코가 일본의 주요 기업 1134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외국인 유학생을 채용한 기업은 25.9%로 지난해에 비해 24% 늘었다. 일본 최대 유통업체 이온은 지난해에 비해 50% 늘어난 1500명의 외국인을 채용할 계획이다. 역대 최대 규모다. 일본 본사의 정규직 중 외국인 비율을 현 10%에서 2020년 50%까지 늘리기로 했다. 특히 동남아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고 이들 지역 유학생을 집중 채용하고 있다. 취업 지원회사인 데이터비전은 “일본의 글로벌기업은 중국 진출의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차이나+1’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미얀마 유학생 같은 경우는 몸값이 금값”이라고 말했다.



 일본 기업이 외국인 인재 확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먼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절대적인 인력 부족이다. 일본 노동인구는 1999년 6793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일본 노동정책연구기구에 따르면 2030년에는 5900만 명으로 준다. 여기에 일본식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일조했다. 지나치게 품질에 집착하는 일본식 사고만 갖고는 다양한 가치를 요구하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는 노하우가 축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과가 썩 좋지만은 않다. 중국어·일본어·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20대 중국인 왕징(王靜)은 지난해 일본의 글로벌유통업체 간부후보생으로 채용됐다. 그는 “1년 정도 점포 근무를 하면 희망하는 해외사업담당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최저 3년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돌아섰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6월 회사를 그만뒀다.



 외국인 유학생을 기업에 소개하는 ‘포스밸리 콘쉐르쥐’의 시바자키 요헤이(柴崎洋平) 사장은 “해외에선 20대 때부터 관리직을 경험시키는 게 상식”이라며 “이른바 스펙을 쌓기 힘든 것을 깨달은 순간 일본 기업을 바로 그만두는 게 외국인 사원의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선배들의 이 같은 불만과 실망은 후배 유학생에게도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와세다(早稻田)대 국제교양학부 3학년 아랴팔 사라(24·이란)는 “올가을부터 취업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나 일본 기업은 생각도 안 한다”며 “선배들로부터 일본 기업의 ‘악평’을 워낙 많이 들어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려 한다”고 말했다.



 일 노동정책연구기구가 최근 펴낸 ‘일본 기업의 유학생 취직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73.1%의 유학생이 “일본 기업에서 외국인이 두각을 나타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답했다. 실제 외국 유학생이 부장 직급까지 간 경우는 불과 5.6%, 과장급이 13.3%였고 64.9%는 일반 사원이었다. 대기업 인사 실무자들은 “외국인 사원은 대부분 5년 내 그만두고 모국으로 돌아가거나 외국 기업으로 이직한다”고 털어놓는다.



 외국인 사원들의 이탈은 또다시 일본 기업들의 인력 공급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채용정보업체인 ‘맨파워 그룹’에 따르면 인재 부족을 느끼는 일본 기업의 비율은 2010년 이후 계속 상승, 올해는 85%에 달했다. 불과 7년 전만 해도 58%였다. 또한 이 수치는 조사 대상 45개 주요 국가 중 최고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외국인 사원을 주요 전력으로 삼기 위해선 인사 및 임금제도를 변경하고 사원의 의식 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는 경영 체질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도 최신호에서 “일본이 갈라파고스 상태(자기 기준을 고집하다 고립됨)로 독자적 길을 갈 것인지 사람이 자유롭게 오고가는 활력 있는 국가가 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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