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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날려라, 박력 가득한 낭만이여

중앙일보 2013.08.05 00:36 종합 22면 지면보기
박정대 시인의 시는 세계 곳곳을 누빈다. 방랑자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시인이 빚어낸 시는 감성이 충만한 낭만주의의 결정체에 비유된다. [중앙포토]


시인 박정대(48)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말 한마디를 굳이 찾는다면 낭만주의다. 이국적이면서도 서구적 감수성이 드러나는 그의 문체는 한국시의 낭만주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13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③
시 - 박정대
‘너무나 아름답고 … ’ 외 16편



 미당문학상 예심위원인 문학평론가 허혜정씨는 “박정대는 자유롭고 분방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유려한 문체를 구사하며 문장의 유희를 즐기는 시인이다. 특히 언어를 조율하는 힘이 장중하고 박력 있다”고 했다.



 그의 시에서는 보헤미안의 느낌이 가득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출렁이며 새로 시작되는 삶/바람이 불지 않아도 여전히 펄럭이는 중력과 무관한 삶/나를 따라다니던 그림자를 이젠 조용히 여기에 두고 떠나요/내가 좋아하는 고독의 돌멩이 하나만 가방에 넣고/다른 삶으로 가요, 그래요’(‘다른 삶을 살고 싶어요’ 중)처럼.



 그는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 집시의 자유로움을 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무국적자다. 시의 언어나 상상력에서 국가나 민족의 경계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 때문이다.



  그의 비극적 감수성은 체 게바라처럼 현실에서 상처 입은 사람, 마지막을 꿈꾸는 사람에게 향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시의 입을 빌려 자신의 시적 경향에 대해 “‘불멸의 좌파 같은 시를 썼다’고, 나중에라도 그런 말을 들었으면 좋겠네요”라 말한다. 여전히 혁명을 꿈꾸고(‘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혁명’) 아직도 뜨거운 가슴을 안고 사는 열혈 청년이다. 그러니 시 ‘목소리의 결정’에서 이렇게 토로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겨진다.



 ‘저항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으며 자신의 감정의 표현을 자제한다면 그는 이미 최초의, 본질적인 인간성마저 상실한 것이다’ 라고.



 낯선 이국의 공간뿐만 아니라 그의 시에는 소설이나 영화 속 가상의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허혜정씨는 “박정대의 시 속 음악과 영화 코드는 자기 의식을 표출하기 위한 가면”이라고 말했다.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난 상상의 공간으로 영화와 음악 코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미국 영화잡지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벨라 타르 감독의 영화 ‘토리노의 말’(2011)을 “너무나 아름답고 장엄한 벨라 타르의 마지막 인사”라고 평했다. 그리고 이 말은 이 시로 태어났다.



 ‘이런 저녁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장엄한 마지막 인사를 하기가 두렵다, 그저 타쉬 델레, 타쉬 델레//그대는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운 곳에 있지만 이렇게 창문 가득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에는 그저 그대 생각에 두렵고도 황홀하게, 타쉬 델레, 타쉬 델레/커피를 한 잔 마시고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며 초저녁 별들을 향해 안녕, 인사를 하면/타쉬 델레, 타쉬 델레, 28명의 천사가 지나간다/여기는 하슬라, 실직, 도원’(‘너무나 아름답고 장엄한 마지막 인사’)



하현옥 기자



◆박정대=1965년 강원 정선 출생. 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삶이라는 직업』 『모든 가능성의 거리』. 김달진문학상·소월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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