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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일본의 자폐증, 아시아 평화의 걸림돌이다

중앙일보 2013.08.05 00:02 종합 30면 지면보기
일제 시절 위안부의 강제동원과 일본군·관헌의 개입을 인정한 고노 담화가 나온 지 어제로 20년이 됐다.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한 이 담화는 고노 개인의 것이 아니다. 일본 군국주의의 부끄러운 역사인 위안부에 대한 현대 일본 정부의 인식을 담은 것이다. 뒤늦게나마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일부 인정하고 반성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고노 담화는 또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1995년의 무라야마(村山) 담화의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시곗바늘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일본 정부의 최근 행보가 고노 담화 수준에서 오히려 후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발족 이후의 급속한 우경화로 더욱 두드러진다. 아베 정부는 겉으로는 경제활성화를 최우선시한다면서도 과거사 부정과 개헌 여건 조성 등 우경화 정책을 착착 진행 중이다.



 일본의 우익이 부끄러운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자학으로 폄하한 지는 이미 오래됐다. 그러다 최근 미국 글렌데일에 건립된 ‘평화의 소녀상’을 계기로 아예 고노 담화의 재검토를 주장하고 나섰다. 일본 정부 스스로 책임을 인정한 위안부 문제를 이제 와서 뒤집자는 건가. 도대체 그들의 역사의식은 얼마나 일그러졌길래 그런 발상이 가능한가. 위안부 문제는 정치나 외교 공세로 이용될 수 없다. 이미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가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보고 있다.



 아베 정부가 추진하는 개헌도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을 당했던 이웃나라들을 적잖이 긴장시킨다. 집단적 자위권을 명기하고, 군을 보유하며, 개헌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등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개헌 수법을 독일의 나치에서 배우겠다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발언은 그 자체가 큰 충격이다. 본인은 오해라고 변명했지만 순간적 실수로 속내를 드러낸 셈이 아니겠나.



 물론 아베의 입에서 직접 고노 담화나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는 말이 나온 적은 없다. 하지만 그가 개헌이나 과거사를 두고 해 온 언행에선 두 담화와의 연속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공식적으론 인정하면서도 해석상으론 부정하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입장을 교묘히 유지하고 있다. 혼네(本音·속마음)와 다테마에(建前·겉모습)라는 일본인의 인식 구조가 여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한·일 관계가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에 중요하다는 사실은 두 나라 모두 인정한다. 양국 관계의 경색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 역시 명백하다. 그런데도 일본은 과거사 문제로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악화된 한·일 관계를 풀 기회를 스스로 막고 있는 것 아닌가. 일본이 자폐증에서 먼저 벗어나지 않는 이상 이웃나라가 다가가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서양이나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증진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중국과의 관계 경색에 개의치 않고 말이다. 일본이 어떤 외교전략을 취하든 그들의 선택이다. 다만 이웃에 외면당하는 나라는 세계의 일등국은커녕 지역의 리더도 될 수 없다.



 우익 성향의 일본인들은 흔히 묻는다. 도대체 일본이 얼마나 더 사과해야 하느냐고. 하지만 이는 역사에 대한 무지뿐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성정(性情)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질문이다. 한번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그 정신과 마음가짐을 일관성 있게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사과한 다음에도 그와 어긋나는 언동을 일삼고 있으니 진정성을 의심받는 것이다.



 역사로부터는 누구도 도망칠 수도, 숨을 수도 없다. 직시할 것은 직시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해야 한다. 그래야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고노 담화로부터 20년, 일본은 자신의 역사를 직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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