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모네와 예술가의 장수

중앙일보 2013.08.01 00:53 종합 28면 지면보기
클로드 모네, 수련, 1899, 캔버스에 유채, 89×93.5㎝,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밝은 햇살, 색색의 꽃들, 초록색 창문이 활짝 열린 2층집, 그리고 거길 방문한 사람들의 웃음소리-. 지난달 찾아간 파리 근교 지베르니의 ‘모네의 정원’은 생의 즐거움으로 반짝였다. 꽃 보고 인상 쓸 사람 있을까. 한 세기 반 전 화가 모네(1840~1926)가 여섯 명의 정원사를 두고 가꿨던 꽃밭은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주고 있었다. 평일에도 버스는 끊임없이 관광객을 쏟아내고, 주변 가게에서는 ‘수련 아이스크림’ ‘수련 비누’를 만들어 팔았다. 오는 이들도, 마을 사람들도 좋아서 입이 벌어지는 모네의 정원이다. 하긴 모네가 아니었다면 먼 나라의 나 같은 사람은 이 시골 마을의 이름조차 몰랐을 거다.

 모네는 마흔세 살 되던 1883년 지베르니로 이사했다. 첫 번째 아내가 남긴 두 아들, 두 번째 아내가 데려온 여섯 자녀와 함께 이곳에 정착했다. 1892년엔 집 근처 소택지를 매입해 연못이 있는 일본식 정원을 만들었다. 작은 개울이 흐르는 연못을 만들고 냇가에 버드나무·붓꽃·대나무를 심었다. 연못에는 수련을 가득 띄웠다. 색색의 꽃들은 그대로 자연의 팔레트가 됐고, 모네는 이곳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화폭에 담았다. 지베르니의 집과 정원은 1980년대에 클로드 모네 미술관으로 정비돼 일반에 공개됐다.

 1874년 ‘인상, 해돋이’를 전시해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화가 그룹에 ‘인상파’라는 이름을 얻게 한 모네는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파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했다. 초창기엔 새로운 시도에 대한 비난과 조롱을 피할 수 없었지만 결국은 ‘인상파의 시작이자 끝’으로서 영광을 누렸다. 86세로 장수한 덕분이기도 했다. “젊은 반항아들 중 몇몇, 특히 모네나 르누아르와 같은 사람들은 운 좋게도 승리의 결실을 즐기며 전 유럽에서 유명세를 타고 존경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래 살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공공 컬렉션에 포함되고 부자들이 탐내는 소유물이 돼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에 대놓고 적었다.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채 고독과 싸우다 요절한 반 고흐의 경우만 생각해도 모네의 장수는 축복 그 자체였다.

 모네가 남긴 2000여 점의 그림 중 ‘수련’ 연작만 250여 점이다. 같은 소재가 반복되면 무엇을 그렸느냐보다 어떻게 그렸느냐가 중요해진다. 자연에 대한 우주적 시각을 보여준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그림은 그리하여 마지막 인상파 그림인 동시에 추상미술의 모태가 됐다. 생전에 이미 박수 받은 화가가 만년에 그린 이 그림은 이렇게 미술사적 의미까지 획득했고, 지금도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