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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미중년에게 보내는 환호, 실은 '셀프 응원'

중앙일보 2013.07.19 03:00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세월에 따라 눈물샘이 반응하는 지점도 변한다. 한때 영화 속 연인들의 안타까운 이별 때문에 자주 울었다면, 이젠 무조건 엄마아빠누나동생 가족들 이야기다. 또 하나 요즘 눈물샘을 자극하는 스토리가 ‘나이에 대한 편견을 딛고 어떤 성취를 이뤄낸 사람들’이다. 맞다. 뒤늦게 발견한 ‘핫젝갓알지’의 활약상을 보면서 주책 맞게 여러 번 코를 훌쩍였다.



 ‘핫젝갓알지’는 1990년대를 주름잡았던 1세대 아이돌 멤버들이 뭉쳐 결성한 그룹이다. ‘H.O.T’(문희준·토니안) ‘젝스키스’(은지원) ‘god’(데니안) ‘NRG’(천명훈) 등 멤버들이 소속돼 있던 그룹의 이름을 조합해 ‘핫젝갓알지’가 되었다. 봄부터 시작한 QTV의 ‘20세기 미소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탄생한 이 팀은 최근 지상파TV로 활동무대를 넓히며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주 시즌1을 마감한 ‘20세기 미소년’은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시즌2 제작이 결정됐다.



QTV ‘20세기 미소년’. [사진 QTV]
 멤버들은 모두 36세 동갑내기. 이제는 ‘미중년’에 더 가까운 지난 세기 미소년들의 활약상은 말 그대로 웃프다(웃기면서 슬프다). 한때 신비주의·카리스마로 무장했던 오빠들은 이제 건망증을 이야기하고 새치와 검버섯을 걱정하는 나이가 됐다. 이들이 활동 당시의 에피소드와 뒷이야기를 펼쳐놓는 초반부까지 큰 울림이 없었다. ‘응답하라 1997’의 뒤를 잇는 ‘추억 마케팅’의 하나로구나 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무대가 그리웠다’는 이들은 노래를 녹음하고, 뮤직비디오를 찍고, 경연 프로그램인 ‘불후의 명곡-박남정편’에까지 출연해 아직 녹슬지 않은 ‘오빠들의 포스’를 보여줬다. 예전이면 며칠 내에 마스터했을 춤동작을 연습 또 연습하고, 활동 당시 랩만 했던 어떤 멤버는 처음으로 노래에 도전했다. ‘불후의 명곡’의 ‘비에 스친 날들’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문희준은 글썽이며 말했다. “‘지나간 사람들’이라는 말이 정말 싫었다. 쟤네들이 진짜 물건이었고 지금도 물건이구나…,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인형돌’ ‘요정돌’이라 쓴 피켓을 들고 다시 이들의 뒤를 쫓기 시작한 팬들 역시 쑥스러운 표정이다. 춤 한 곡 추고 나면 “아이고~” 하며 뻗어버리는,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연습실) 거울 앞에 선’ 오빠들을 바라보는 기분이란. 한때 우리의 우상이자 모든 것이었던 그들은 이제 서로 등을 두드려줘야 하는 동지가 됐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이 애잔한 환호는, 나이를 핑계로 주저앉고 싶은 나에게 보내는 ‘셀프 응원’이기도 하다는 걸.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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