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웃 상처 헤집으면 화해는 불가능

중앙일보 2013.07.19 00:56 종합 8면 지면보기
거꾸로 가는 아베의 일본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일본군 731부대 유적지에는 일본군이 중국인과 조선인을 상대로 잔혹한 생체 실험 한 모습이 전시돼 있다(왼쪽). 아베 총리가 지난 5월 미야기현 항공자위대 기지를 시찰하면서 숫자 ‘731’이 표기된 훈련기 조종석에 앉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하얼빈=장세정 기자], [지지통신]


지난 12일 중앙일보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공동 취재팀은 미군의 원폭 투하 10주년인 1955년 8월에 세워진 일본 히로시마(廣島) 평화기념자료관을 찾았다. 자료관을 살펴보니 아시아에 고통을 안겨준 ‘가해자’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로 슬쩍 둔갑해 있었다.

[이제는 아시아 시대] 중앙일보- 서울대 아시아연 기획 ③ 공존의 길 막는 장벽들



전범들 영웅으로 받드는 야스쿠니



 자료관엔 원폭의 참상과 세계 평화를 강조한 전시물들이 진열돼 있었다. 그러나 자료관 어디를 둘러봐도 전쟁에 대한 일본의 책임이나 반성을 담은 내용을 찾기 어려웠다. 예컨대 미군이 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45년 봄 전황이 극도로 불리하자 일본이 소련을 통해 협상을 시작했다. 미국은 전후 소련의 영향력을 제한하고 20억 달러(약 2조2000억원)나 되는 막대한 핵개발 비용을 국내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핵무기 존재와 사용 의도를 일본에는 힌트도 주지 않고 경고조차 없이 핵무기를 사용했다”고 기술했다. 마치 아무 잘못도 없는 일본이 미군의 원폭 실험 대상이 됐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다. 당시 숨진 수만 명의 한국인 숫자는 아예 명시하지도 않았다.



 히로시마 자료관은 과거를 통절히 반성하고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추구하기 위한 ‘양심적 평화공원’이 아니었다.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획책하는 듯한 ‘그들만의 평화공원’이었다. 극우파 도지사가 집권하고 있는 도쿄의 야스쿠니(靖國)신사는 한 술 더 떴다. 유슈칸(遊就館)전시관에선 마침 ‘대동아전쟁 70주년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 역시 침략에 대한 반성은 실종된 채 침략 전쟁은 작전 으로 표현됐고, 침략자들은 영웅으로 그려져 있었다.



 특히 ‘(청일전쟁 이후 체결된) 시모노세키(下關)조약으로 조선이 독립국가가 됐는데 이는 일본이 오랫동안 열망했다’거나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는 것을 보면서 압박받던 아시아 민족들이 독립을 꿈꾸기 시작했다’고 기술했다. 침략자인 일본이 마치 조선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에 독립의 꿈을 심어준 메시아처럼 포장돼 있었다.



 지난해 12월 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와 히로시마에서 진행 중인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는커녕 극우 노선을 부채질해 아시아 이웃나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지난 5월 미야기(宮城)현 항공자위대 기지를 시찰하면서 숫자 ‘731’이 표기된 훈련기 조종석에 앉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이벤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731부대 유적지엔 일본 만행 생생



 731부대는 생체 실험으로 악명 높았던 일본 관동군 부대였다. 중국 하얼빈(哈爾濱)시 남쪽 근교에 위치한 731부대 유적지를 지난 8일 찾았다. 731부대의 만행을 고발한 전시실에는 일본 군인들이 살아 있는 중국인과 조선인을 실험 대상인 마루타(일본어로 통나무란 뜻)로 삼아 박테리아를 주입하고, 진공 상태에서 어떻게 내부 장기들이 터지는지 관찰하는 실험 장면들이 생생하게 복원돼 있었다. 생체 실험을 당하며 죽어간 3만 명의 피해자 중에서 상당수가 중국인·조선인 등 지식인이었다.



 현지 관계자는 “731부대 옆에는 세균무기를 실어 나른 7대의 전용기를 위한 비행장이 있었다”며 “아베가 731이 새겨진 비행기를 탔다는 사실은 일본이 731부대에서 저지른 반인륜적 행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



안중근 표지석도 안 세우는 중국



 경제력을 무기로 중화민족주의를 외치는 중국도 역사 왜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9일 찾아간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고구려 유적지에서 중국의 편협한 중화주의와 폐쇄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5월 1일 재개관한 지안 박물관은 고구려 유물과 생활상을 소개하면서 중국 중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주장을 부각했다. 은연중 중국과 고구려를 하나로 엮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관람객의 상당수가 한국인과 조선족인데도 다른 유적지와는 달리 한글로 된 안내책자나 조선족 가이드를 배치하지 않은 것도 이례적이었다.



 고구려가 유리왕 22년 부터 장수왕 15년 까지 424년간 도읍한 국내성(현재의 지안 시내)은 대부분 난개발에 훼손돼 있었다. 실제로 현지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아파트 개발을 하면서 돌로 쌓은 성의 대부분을 헐었다”고 전했다. 2004년 고구려 유적이 유엔 산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까지도 난개발은 계속됐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아시아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초대 조선통감을 저격한 하얼빈역에는 후세에 역사적 교훈을 줄 표지석조차 세워지지 못하고 있다. 한 중국 교민은 “내막을 따져보면 소수민족 통합에 집착하는 중국의 소극적 태도, 일본 눈치보기가 결합된 결과”라고 꼬집었다. 이웃나라를 침략해 자국의 이익을 탐한 일본 제국주의의 대동아공영권을 비판하는 중국이 아시아 평화와 공존을 외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재조명할 기회를 스스로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7일간 중국과 일본의 9개 도시를 뛰어다니면서 두 나라가 아시아 시대를 맞기에는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작으나마 희망의 불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와 만행을 고발한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자료관(WAM)’을 운영하는 도쿄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좋은 증거다.



도쿄 양심적 지식인이 희망의 불씨



 야마시타 후미코(山下芙美子) 자료관 운영위원은 “일본이 과거사를 인정하려면 일본사회와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많은 일본인에게 역사의 진실을 알리는 작은 노력은 의미 있다”고 말했다. 구마모토(熊本)현 아라오(荒尾)시에는 중화권의 국부로 추앙받는 쑨원(孫文)의 일본인 친구 미야자키 도텐(宮崎滔天)의 집에 쑨원 전시관이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두 사람의 동상에는 ‘세계는 하나’라고 새겨놓고 있었다.



◆공동취재단( 하얼빈·지안·히로시마·나가사키·도쿄)=안청시 서울대 명예교수(단장),최종호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장세정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