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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조차 "성접대 부풀려진 듯" … 관음증만 키웠다

중앙일보 2013.07.19 00:51 종합 12면 지면보기
경찰이 18일 건설업자 윤중천(52)씨의 ‘성접대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 기간 총 123일. 그러나 떠들썩했던 성접대 의혹 사건은 건설 브로커 사건으로 쪼그라들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경우 접대의 대가성은 밝히지 못한 채 특수강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수사 결과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 사건을 취재한 기자가 1인칭 형식으로 서술하는 ‘스토리텔링 리포트’다.


[스토리텔링 리포트] 용두사미 수사 종결 … 기자가 본 123일

◆프롤로그 : 풍문이 실제 수사로=전화가 걸려온 것은 점심시간이었다. “정 기자, 조용한 곳에서 전화 받을 수 있어요?” 공안 당국 관계자 A였다. 민감한 정보가 있다는 뜻이었다. 2013년 3월 14일. 서울은 늦추위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손을 호호 불어 가며 수화기 건너편 A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김학의 법무부 차관과 관련한 소문 들어봤죠?”



 “들어보긴 했는데 하도 황당한 얘기라….”



 “그게 실체가 아주 없는 건 아닌가 봐. 경찰청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현직 법무부 차관, 섹스 동영상, 건설업자의 불법 성접대…. A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들을 조합하자 서늘한 예감이 몰려왔다. “초대형 사건이 터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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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접대 동영상을 찾아라=그로부터 나흘 뒤, 이세민 경찰청 수사기획관이 기자실을 찾았다.



 “언론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습니다.”



 기자실이 술렁였다. 곳곳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성접대 의혹도 수사하실 건가요?” “대가성이 있습니까?”



 “자, 지금은 초기 단계니까. 성접대 부분도 수사할 만하면….”



 이 기획관은 즉답을 피했다. 경찰 수뇌부는 곤혹스러운 처지였다. 성접대 사건과 관련해 수뇌부는 청와대에 “내사 사실이 없다”고 보고했던 터였다. 하지만 일선 수사 라인이 내사 사실을 별도로 청와대에 보고하면서 발칵 뒤집혔다. 며칠 전 김기용 경찰청장이 전격 경질된 배경도 엇갈린 보고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었다.



 경찰청은 21명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수사팀은 김학의 차관이 등장한다는 ‘성접대 동영상’ 확보에 전력을 기울였다. 3월 20일. 경찰은 1분3초 분량의 동영상을 손에 넣었다. 내가 가까운 취재원으로부터 전해 들은 동영상 내용은 이랬다. “한 중년 남성이 노래방에서 ‘연’이라는 노래를 부르다 돌발적으로 검은 원피스 차림의 여성과 성관계를 한다.”



 경찰에 불려온 30대 여성은 “동영상에 나오는 인물은 김 차관이 맞다. 나도 직접 성관계를 했다”고 진술했다. 인터넷상에는 이미 성접대 연루 인사로 김 차관의 실명과 사진이 떠돌고 있었다. 김 차관은 다음 날 곧바로 사표를 제출했다. 그가 수척한 얼굴로 법무부를 빠져나간 뒤 공식 해명이 전달됐다. “모든 게 사실이 아닙니다. 반드시 진실을 밝혀 명예를 회복할 것입니다.”



 ◆삐걱거리는 수사=성접대 동영상을 손에 쥐면서 경찰 수사는 착착 진행되는 것 같았다. 동영상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 결과가 3월 22일 경찰에 전달됐다. ‘동영상 속의 인물이 김 전 차관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난감해진 경찰은 “결과가 안 나왔다”며 공개하지 않다가 사흘 뒤에야 회신받은 사실을 인정했다. 주요 참고인들도 진술을 뒤집었다. 경찰 조사에서 “동영상 속 인물은 김 전 차관이 맞다”고 했던 30대 여성은 언론 인터뷰에서 “모르는 일”이라며 말을 바꿨다.



 닷새 뒤 경찰은 김 전 차관에 대해 출국금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소명이 불충분하다”며 기각했다. 3월 말 경찰은 윤씨의 강원도 원주 별장을 압수수색하면서 반전을 꾀했지만 수사는 자꾸만 삐걱거리고 있었다.



 5월 들어 수사 지휘 라인이 대폭 교체됐다. 허영범 신임 수사기획관과 김청수 신임 특수수사과장이 지휘를 새로 맡았다. 3일 첫 성과가 나왔다. 성접대 동영상의 원본 파일 2개를 추가로 확보한 것이다. 경찰 수사는 다시 속도가 붙었다.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측은 “동영상 속 인물의 성문(聲紋)이 김 전 차관과 흡사하다”는 분석 결과를 보내왔다. 성접대 여성 5~6명도 이 동영상을 본 뒤 일치된 진술을 했다.



 “2006년 8~9월께 원주 별장 E동 노래방에서 찍은 것이고 동영상 속 남성은 김 전 차관이 맞습니다.”



 경찰이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었다. 성접대의 대가성을 밝히지 못하면 김 전 차관 사법 처리가 어려웠다. 5월 9일. 경찰은 윤씨를 처음으로 소환했다. 그러나 윤씨는 성접대 사실은 물론 김 전 차관에 대해 “모른다”고 진술했다. 김 전 차관은 같은 달 19일 맹장수술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했다. 김 전 차관도 경찰의 소환 통보에 불응하며 버텼다.



 ◆특수강간 논란=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태로 6월로 접어들었다. 18일 경찰은 김 전 차관에 대한 체포영장을 신청하며 반전을 시도했다. 혐의는 특수강간이었다. 성접대 등에 따른 뇌물죄에 집중하던 경찰이 느닷없이 강간이란 죄목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특수강간 혐의에 대해 “소명이 부족하다”며 영장을 재신청하라고 지휘했다. 경찰은 결국 영장 재신청을 포기했다. 대신 같은 달 29일 김 전 차관이 입원 중인 병원을 방문해 조사했다. 김 전 차관은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경찰 수사는 막바지로 향해 갔다. 7월의 둘째 날. 경찰은 윤씨에 대해 특수강간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특수강간이 문제가 됐다. 특수강간이란 2명 이상이 합동으로 여성을 강간한 경우에 해당되는 죄다. 경찰은 피해 여성의 진술을 토대로 김 전 차관과 윤씨가 동시에 강간에 가담한 걸로 몰아갔다. 2007년 4월께 P씨, 2008년 3월께 C씨 등을 상대로 원주 별장 등에서 모두 2차례에 걸쳐 강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가 여성들 진술뿐이고 2명이 동시에 강간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윤씨의 구속영장을 다시 돌려보냈다. 결국 경찰은 특수강간 혐의를 빼고 윤씨의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다. 7월 10일. 윤씨는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구속 수감됐다. 경찰은 수시로 윤씨를 불러 성접대의 대가성과 강간 혐의에 대해 추궁했다. 그러나 윤씨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저는 김학의라는 분을 모릅니다. 성접대나 강간을 한 사실이 없습니다.”



 ◆떠들썩했던 수사, 쪼그라든 결과=123일에 걸친 수사가 종지부를 찍었다. 18일 경찰은 여섯 쪽짜리 보도자료를 냈다. 경찰이 입건한 사람은 법인을 포함해 모두 18명이었다. 그중 구속자는 윤씨와 윤씨에게 320억원을 불법 대출해 준 혐의를 받고 있는 전 S저축은행 전무 김모(58)씨 등 2명뿐이었다. 윤씨에게는 특수강간·상습강요·마약류관리법위반 등 10개의 혐의가 적용됐다. 김학의 전 차관을 비롯한 나머지는 모두 불구속 입건했다. 서종욱 전 대우건설 사장 등 대부분 윤씨의 건설 로비 연루자다. 당초 성접대에 연루된 의혹을 받은 병원장 박모씨도 입찰방해 등의 혐의로만 송치됐다.



 경찰은 김 전 차관을 특수강간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보도자료 어디에도 ‘대가성’이란 말은 없었다. 애초에 고위 공직자의 성접대 의혹에서 출발한 사건이 건설 브로커 사건으로 귀결된 꼴이었다. 원래의 혐의를 못 밝힌 건 이번 수사의 최대 오점이다. 수사 책임자에게 물었다.



 “대가성은 규명된 게 없습니까?”



 “수사에 착수할 때 (김 전 차관이 연루된) 성접대가 2006~2008년 사이에 있었다는 걸 인지했습니다. 공소시효 5년이 지나 버려 뇌물죄로 처벌하긴 힘들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특수강간 혐의는 법정에서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개월간 이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브리핑한 내용은 200자 원고지로 773장(15만4492자)에 이른다. 그 무수한 말 가운데 사실로 입증된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법보다 감정이 앞서 ‘창피 주기식 수사’를 했다는 비판에 대해 경찰은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김 전 차관의 부적절한 행동을 재단하는 도덕적 기준과 위법성을 가리는 법적 잣대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성접대 수사가 삐걱거릴 때 한 고위 경찰 간부가 내게 그랬다. “김 전 차관과 관련한 의혹이 부풀려져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온 국민을 집단관음증 상태로 몰아넣았던 성접대 사건 이 마무리되던 날, 시커먼 먹구름이 종일 경찰청 주변에 머물렀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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