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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음식잡설] 불신의 식탁 … 점점 복잡해지는 식당 메뉴판

중앙일보 2013.07.19 00:30 Week& 5면 지면보기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요리사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이, 해물 스파게티에 낙지를 쓰면 원산지를 밝혀야 한다네.”



새로 규정이 생겼단다. 아시다시피 해물 스파게티에는 다양한 해물이 들어간다. 낙지도 한 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다른 중요한 재료에는 원산지를 쓰란 말이 없으니 메뉴판에 달랑 이렇게 적게 된다.



“해물 스파게티-낙지 중국산”



마치 들어간 해물이 몽땅 중국산인 것처럼 보인다. 고기에 주민등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국산이 뭐 나쁘냐는 건 여기서는 논외로 치자. 대중의 선입견이 그렇다는 거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먹는 해물이 이 나라 언저리에서 나오는 것도 많지 않다. 갈치는 세네갈산(産)까지 등장했으며, 새우가 국산인 경우는 ‘사실상’ 발견하기 어렵다. 대개는 태국 같은 동남아시아산이고, 특이하게도 요르단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산도 있다. 북방인 러시아산 해물도 흔하다. 업자들은 세계 어디서든 해물을 구해다가 식탁에 올려놓는다. 글로벌화라는 건, 이미 우리가 식탁에서 경험하는 일이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이 쌀을 빼면 5%도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생선의 원산지 명기는 우럭(조피볼락)·넙치·고등어 같은 생선도 마찬가지다. 당국의 의지는 워낙 엄격해서 원산지를 틀리게 적으면, 벌칙이 어마어마하다. 두어 번 틀렸다가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정도다. 오죽했으면 그러겠나 싶다가도, 막상 식당을 하는 입장에선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정직하게 재료를 사서, 솔직하게 파는 일에도 관(官)이 개입한다. 못 믿으니 그렇겠지, 자충수려니, 하지만 마음은 답답하다.



언젠가 읽은 일본인 작가의 책은 한국 횟집의 활어를 흥미롭게 다뤘다. 활어의 맛이 훌륭하다거나 하는 얘기라면 좋았겠지만, 수족관에서 점찍은 활어 대신 죽은 생선을 썰어 내는 횟집의 사기에 대한 분노였다. 생선을 죽여서 피를 뺀 후 서너 시간 이상 숙성한 것이 대개 더 맛있다는 사실은 상당수 식도락가가 안다. 부산의 한 교수님은 거기에 착안해 숙성한 회를 먹자는 운동도 펼쳤다. 그러나 시중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활어가 쫄깃쫄깃해서 맛있다는 물리적 감각의 이점도 있지만, ‘못 믿겠다’는 정서가 다분히 바닥에 깔려 있다. 냉장 숙성하는 시간을 잘 지킬지, 심지어 내가 원한 생선이 맞는지, 더 심하게는 내가 주문한 생선과 같은 ‘종’인지-한때 점성어가 도미로 둔갑하던 때가 있었으니-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양심껏 영업해 온 업주들은 심히 속상할 일이지만, 자업자득이라는 반성이 더 크다.



구워 먹는 육고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원산지와 부위는 물론이고 100g 값을 다 밝혀야 한다. 그래서 고깃집에 가면 희한한 표시를 여러 개 보게 된다. 국산, 호주산, 뉴질랜드에 멕시코, 미국과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독일과 캐나다…. 고기 올림픽이라고 누가 농담을 했지만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원산지만 쓰면 될 일도 아니다. 부위와 무게당 값도 적어야 한다. ‘돼지고기 삼겹살 오스트리아산 100g당 4587원’. 이런 메뉴판을 보면 마치 공상과학영화의 세상에 사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 그저 불신의 시대라는 게 현실이다.



박찬일 음식 칼럼니스트 (chanilpar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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