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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다 무서운 화, 그 습관의 고리 끊으려면 …

중앙일보 2013.07.19 00:28 종합 21면 지면보기
서울 방배동 주택가에서 제따와나 선원을 운영하는 일묵 스님. “화를 자주 내는 것도 습관이기 때문에 불교수행을 통해 고치면 화를 내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분노 조절이 힘든 시대다. 치밀어 오는 화를 참지 못한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의 마음은 어떤가. 가족이나 직장 동료 등 가장 친밀해야 마땅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긋나 고통받고 있지는 않은가.

영성 2.0 ⑮ 제따와나 선원 일묵 스님



1996년 서울대 박사과정 중 출가



 서울 방배동 제따와나 선원의 일묵(48) 스님은 “화를 자주 내는 건 심리적인 패턴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다. 뒤집으면, 그 패턴을 바꾸면 얼마든지 화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방법은 2500년 전 부처님이 설파한 가르침을 통해서다.



 15일 스님을 만났다. 그는 1996년 출가 당시 유명세를 치렀다. 서울대 수학과 박사과정 중 출가했다고 해서다. 그간 스님은 미얀마의 파욱 명상센터 등지에서 초기불교 수행법을 익혔다. 스님이 속한 조계종단은 화두 참선을 강조하기 때문에 권장하지 않는 일이다. 2009년 제따와나 선원을 차렸다.



 - 선원이 아담하다.



 “수행 공간이 비좁다 보니 한 달짜리 수행 프로그램을 40명까지만 받는다. 1만원이나 5만원 정도 매달 후원금을 보내주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선원이 굴러간다.”



 - 화를 조절하는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팔정도(八正道) 수행’ 프로그램에서 ‘자애명상’을 가르친다. 화는 자신을 화나게 만든 상대방이 고통받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이걸 상대방이 행복하길 원하는 마음으로 바꾸는 게 자애명상의 핵심이다. 처음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마음 속에서 빈다. 그 다음 좋지도 싫지도 않은 사람, 마지막에 미워하는 사람으로 범위를 넓혀 그들의 행복을 빈다. 이러다 보면 나와 남의 경계, 좋고 싫음의 경계가 없어진다.”



 - 그런 심리적 행위만으로 화가 가라앉나.



 “이건 내가 개발한 건데, 때론 절도 시킨다. 미워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 후 절을 시킨다. 이 때 그 사람의 웃는 모습을 떠올려야 한다. 성낸 모습을 기억해봐라. 화가 되살아 나지 않겠나. 요령은 기도할 때와 같다. 처음엔 자기를 위해, 그 다음 좋아하는 사람, 중립적인 사람을 거쳐 마지막으로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 절을 한다. 마음 속의 한 사람당 30분에서 1시간 정도 충분한 시간을 들인다. 효과는 있다. 마음이 편해진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화는 상대의 고통을 바라는 마음



 - 미워하는 마음이 되살아 날 수 있지 않나.



 “우리 마음이라는 게 한 번에 탁 바뀌는 게 아니다. 마음에 새로운 길을 한 번 내놓으면 두 번, 세 번 가기는 쉽다.”



 스님은 불교도 시대정신에 따라 수행법이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불교의 진리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감성이 바뀌어서다. 그런 면에서 “조계종의 간화선 수행 교육도 좀 더 체계적이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특히 현대 뇌과학의 논리를 자애 명상의 근거로 내세웠다. “화를 자주 내는 건 일종의 자동회로 같은 습관”이라고 했다. 불교의 수행은 이 회로를 바꿔 새 습관을 들이는 일이다.



 - 자애명상엔 어떤 불교의 가르침이 깔려 있나.



 “팔정도다. 부처님이 깨닫고 난 후 첫 설법에서 말씀하신 내용이 팔정도다. 우리 삶에 가득찬 고통을 어떻게 소멸시킬 것인가, 구체적인 방법론이 녹아 있는 여덟 가지 요소로 돼 있다. 실은 불교의 가르침 중 이게 뼈대다. 나머지는 살이다. 한데 우리 현실은 팔정도를 등한시한다.”



부처님 설법 속의 팔정도가 해결책



 - 팔정도 수행이 명상이나 힐링과 다른 점은.



 “사람들이 암은 무서워하면서 화는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팔정도 수행은 화의 정체를 명확하게 이해시킨 후 멀리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물론 선원에서의 수행이 자애명상으로만 이뤄진 건 아니다. 스님은 “자애명상을 바탕에 깔고 위파사나 수행과 사마타 수행을 병행한다”고 소개했다. 위파사나는 마음의 흐름을 관찰, 화가 나려는 기미를 미리 알아채는 수행법이다. 사마타는 호흡 수행을 통해 생각을 멈추는 훈련이다. 이런 방법들을 통해 고통의 원인과 그 소멸법을 올바르게 익힐 수 있다는 게 스님의 주장이다.



 스님은 “팔정도 수행을 하다 보면 ‘지혜의 빛’이라는 신비로운 현상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결과에 너무 치우쳐 불교 본연의 모습을 자칫 잃게 되는 우를 범하면 곤란하다”고 했다.



 스님은 최근 팔정도 수행 요령을 구체적으로 적은 단행본 『이해하고 내려놓기』(궁리)도 냈다. “출판사 대표와의 인연 때문에 내게 됐다”고 겸연쩍어 했다. 웃는 모습이 편안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팔정도(八正道)=불교 수행의 8가지 길.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념(正念)·정정진(正精進)·정정(正定)을 말한다. 부처의 핵심적 인생관, 즉 고집멸도(苦集滅道)는 사성제(四聖諦)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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