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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만 킬? … 운전자도 아찔

중앙일보 2013.07.16 00:43 종합 12면 지면보기


로드킬(Roadkill).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에 동물들이 치여 죽는 것을 말한다. 전국적인 통계는 없지만 국내에서도 한 해 수천 마리의 야생동물이 희생되고 있다. 로드킬은 동물이 죽음으로써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생태계가 훼손될 뿐 아니라 차량 운전자와 승객의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 장거리 운전이 늘어나는 여름휴가철을 앞두고 로드킬의 실태와 문제점을 살펴본다.

[이슈추적] 매년 100㎞씩 느는 고속도로 … 로드킬 연 7%씩 급증
중부고속 금산 인근 연 39건 최다
산·강 겹친 동물 낙원이 무덤으로



2005년 완전 개통한 대전~통영중부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충남 금산군 금산읍 주변엔 야생동물의 무덤과 같은 곳이 있다. 이 도로의 금산나들목~인삼랜드휴게소 5㎞ 구간이다. 지난해에만 이곳에서 고라니(사슴과 동물) 등 39마리의 동물이 차량에 희생됐다. 열흘에 한 마리가 넘는 꼴이다. 5㎞ 단위로 따졌을 때 전국 고속도로 중 로드킬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다.



 이 고속도로변에는 야산과 농경지가 펼쳐진 데다 하천(조정천)까지 흐르고 있어 고라니들이 먹이를 찾아 내려오는 일이 잦다. 반경 10㎞ 안에는 서대산·대성산·천태산 등 해발 600~900m의 산들이 늘어서 있고, 25㎞ 거리에는 덕유산국립공원이 있다.



 한국도로공사 무주관리사무소 서종도 차장은 “이곳은 덕유산국립공원과 멀지 않은 산악지역인 데다 주변에 수렵장이 없어 고라니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며 “현수막·전광표지 등으로 운전자에게 야생동물을 주의해야 한다고 알리지만 로드킬이 쉽게 줄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로공사는 지난달 말 동물들이 고속도로 아래 통로나 다리 밑으로 다니도록 금산나들목 주변 3㎞ 구간에 울타리를 설치했다. 도로공사의 집계에 따르면 로드킬로 희생된 동물은 2010년 2069마리에서 2011년 2307마리, 지난해 2360마리로 계속 늘고 있다. 2년 사이 14.1%가 늘어난 것이다. 큰 동물 위주로 집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고라니의 희생이 두드러진다. 2010년에는 고속도로에서 희생된 고라니가 1739마리였지만 2011년 1914마리, 지난해는 1996마리로 증가했다. 고라니는 동작이 빠른 편이지만 야간에 불빛에 노출되면 2~3초 동안 멈추는 습성이 있어 차량에 희생된다.





 ◆국도에서도 로드킬 많아=지난달 13일 충북 제천시 남면 38번 국도. 제천과 강원도 영월을 잇는 자동차 전용도로인 이곳에서 원주지방환경청 김용학 야생동물실태조사팀장은 도로변에 있는 고라니 사체를 발견했다. 시속 80㎞로 달리는 차량에 부딪힌 고라니는 몸무게 12㎏에 2년생쯤 돼 보였다. 김 팀장은 “로드킬 사체를 내버려 두면 까마귀나 너구리가 뜯어먹는 과정에서 2차 로드킬이 발생할 수 있어 사체를 수거했다”고 말했다. 충주국토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지난해 관할 대상 국도에서 일어난 로드킬 1006건 중 고라니 피해가 250마리에 이르렀다. 2011년에는 고라니 피해가 7건뿐이었다.



 10여㎏ 이상 나가는 고라니 같은 동물이 사고를 당하면서 로드킬이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새벽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 사곡교차로에서 아반떼 승용차가 가로수를 들이받아 전소됐다. 중상을 입은 운전자 이모(31)씨는 경찰 조사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고라니를 피하려다 가로수를 들이받았다”고 진술했다.



2011년 5월 강원도 영월군 남면 창원리 인근 38번 국도 자동차 전용도로 구간에서 승용차 운전자 강모(당시 37세)씨가 도로 우측 방호벽을 들이받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고 지점 주변에선 고라니 사체가 발견됐다. 차량이 고라니를 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2008년 10월 충남 홍성군 광천읍 소암리 앞 도로에선 산악회원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갑자기 나타난 야생동물을 피하려다 전복돼 승객 1명이 숨지고 2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생태계에도 영향=개구리 등 양서류의 경우 로드킬이 치명적이다. 서식지와 번식지를 오가는 과정에서 수십~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생명을 잃기도 한다. 또 도로변 배수구에 빠진 경우 다시 올라오지 못해 그 속에서 죽는 경우도 있어 특정 지역에서 숫자가 많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국립공원연구원 김의경 박사는 “여름 철새의 경우 새끼들이 둥지를 떠날 때 도로에 떨어져 로드킬에 희생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멸종위기종에 속하는 조류도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도로공사 측에서는 고속도로 길이가 매년 100여㎞씩 늘어나는 것도 로드킬의 증가와 관련 있다고 설명한다. 고속도로 1㎞당 로드킬 발생건수는 2010년 0.62건, 지난해 0.66건으로 크게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로공사는 로드킬을 줄이기 위해 야생동물의 서식지나 이동경로 단절이 예상되는 곳에 생태통로를 설치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전국 고속도로 62곳에 생태통로를 설치했고, 2015년까지 19곳을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다. 또 도로변 울타리도 지난해까지 1290㎞를 설치했고, 2015년까지 75억원을 들여 90㎞를 추가로 만들 계획이다. 환경부 산하기관인 국립생물자원관의 한상훈 동물자원과장은 “로드킬 발생 위치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표시하는 등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생태통로를 설치해야 한다”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미흡한 부분을 개선해야 야생동물 로드킬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운전자의 주의도 필요=도로공사 녹색환경처 탁종훈 차장은 “야생동물 사고가 잦은 구간에서는 도로전광표지(52곳)를 통해 운전자들에게 이를 알려주고 있고, 135개 구간에서는 관련 업체와 협력해 운전자들에게 내비게이션으로 사전 안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운전자가 로드킬 안내 내용을 제외할 경우는 아무 소용이 없다.



손해보험협회 이문덕 대리는 “로드킬이 일어나면 운전자가 피해 배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며 “야생동물이 출현하는 구간에선 규정 속도를 지키고, 안전거리를 확보해야만 로드킬을 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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