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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시장 '바겐 헌터'로 나선 글로벌 큰손들

중앙일보 2013.07.16 00:43 경제 4면 지면보기
‘엑소더스(대탈출) 대세를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헐값으로 곤두박질한 알짜배기 자산을 거둬들일 것인가’.


출구전략 발표 후 통화·주식 헐값
"핫머니 빠지면서 장기 투자 기회"
브라질·멕시코·중동 알짜 자산 입질
월가선 "아직은 리스크 각오해야"

 국제금융가의 큰손들이 고민에 빠졌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3차 양적 완화정책(QE3)의 출구전략 시간표를 발표한 뒤 신흥시장에선 핫머니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6월 한 달 동안 손을 털고 나간 자금만 370억 달러(42조 원)에 달했다고 시장조사회사 EPFR글로벌이 전했다. 7월 들어서도 신흥시장 탈출 러시는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값이 한껏 뛰었던 신흥시장의 알짜 자산 가격이 곤두박질한 건 물론이다. 그러자 신흥시장에 다시 눈을 돌리는 투자자도 나타났다. 장기투자를 주로 하는 국부펀드가 대표적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5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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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억3000만 달러의 자산을 굴리고 있는 영국 베어링자산운용은 버냉키의 ‘깜짝’ 발언 직후 멕시코 페소화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페소가 지난달 20일 11개월 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하자 싸다고 판단해서다. 멕시코의 정치 개혁이 성공적일 것이란 분석도 때마침 나왔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이란 얘기다. 버냉키 발언 후 대부분 신흥국 통화가 미 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면치 못한 반면 페소화 가치는 4%가 올랐다. 베어링의 새너시스 페트로니콜로스 신흥시장 책임자는 “지난 몇 달 동안 멕시코 경제에 구조적인 변화는 없었다”며 “버냉키 발언 때문에 멕시코 투자를 줄일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브라질 국채도 투자자의 입맛을 다시게 하고 있다. 지난 5월 초 9.61%였던 10년 만기 브라질 국채 수익률은 12일 10.97%까지 올랐다. 채권은 수익률과 가격이 반대로 움직인다. 수익률이 올랐다는 건 그만큼 채권 값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2.6% 안팎인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과 비교하면 놓치기 아까운 자산이다. 다만 브라질 헤알화가 계속 약세를 보여 환차손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다.



 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의 원유·가스 생산기업 주식도 투자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원자재 가격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원유가격은 떨어지지 않은 데다 중동 국가의 통화는 대부분 미 달러화에 연동돼 있어 환 위험도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채권투자 펀드 핌코(PIMCO)의 마이클 고메즈 신흥시장 포트폴리오 관리팀장은 “단기투자에 매달리는 핫머니가 빠져나가면서 장기적으론 신흥시장 투자에 기회가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54억 달러 투자자금에 자문을 하고 있는 한스버거 글로벌의 안드레스 칼레론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신흥시장을 떠난 자금이 단기간 내 되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헐값으로 떨어진 알짜 자산이 널렸다”며 “서두르지 않고 기다린다면 장기적으론 선진시장 투자보다 성과가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분간 시장의 대세는 신흥시장에서 선진시장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근 미국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이 잇따른 것도 신흥시장으로선 악재다.



미국 경기 회복이 빨라질수록 연준의 출구전략 착수 시기도 앞당겨진다. 이는 다시 핫머니의 신흥시장 엑소더스를 부채질하고 돈줄이 마른 신흥시장은 성장 둔화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진다. 국제금융가에선 이 같은 위험이 높은 국가로 중국·러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함께 한국을 꼽고 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중은 1998년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수준까지 치솟았다. 에너지 수출이 주된 외화벌이 창구인 러시아 역시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남아공은 정치 불안이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우려되고 한국은 지나친 중국 의존도가 투자 위험도를 키우고 있다.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SLJ 매크로 파트너스 스티븐 젠 파트너는 “신흥시장은 하반기에 한 번 더 핫머니 엑소더스를 겪을 것”이라며 “신흥시장 투자는 단기적으로 상당한 위험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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