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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별이 빛나는 밤에

중앙일보 2013.07.16 00:38 종합 32면 지면보기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매체경영
누구에게나 추억의 장소는 한두 곳 있다. 그 대상은 술집도 되고 밥집도 되고 또 어느 특정 지역도 된다. 나에게 누군가 나라 밖에서 가장 정든 곳을 묻는다면 오베르 쉬르 우와즈라는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을 꼽는다. 내가 이 마을에 연연하는 것은 반 고흐 때문이다. 지나치게 유명해진 탓에 오히려 냉소적인 감상자들이 있긴 하지만 많은 한국인이 그랬듯이 한 시절, 반 고흐의 그림들을 좋아했다. 사람의 기호나 취향이라는 게 늘 변하게 마련이고, 지금에야 난해한 그림들도 제법 이해하게 되었지만 십대 때는 반 고흐가 어쩌면 내 수준에 딱 맞는 그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 고흐 공책에다 반 고흐 책받침을 깔고 성문기본영어를 공부하고 해법수학을 풀었다.



 파리 외곽 퐁투와즈 역에서 오베르로 가는 아침, 느닷없이 떠오른 것은 ‘빈센트’라는 노래였다. 반주 없이 갑자기 목소리부터 튀어나오는 “starry starry night(별이 빛나는 밤에)”을 노래 제목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클래식 포크다. 그것은 마치 ‘돌담길 돌아서며’를 ‘물레방아 도는데’라는 노래의 제목쯤으로 기억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빈센트는 1960년대 유명 저항가수 돈 매클린이 반 고흐를 추억하며 부른 노래다. “별이 빛나는 밤에/ 당신 팔레트의 블루와 그레이로 칠하세요/ 내 마음속의 어둠을 알고 있는 눈으로/ 빛나는 여름날을 보세요”로 시작되는 노래는 오랜 세월 동안 세대를 아울러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지난 열흘간 파리에 머물렀다. 비어 있던 지인의 아파트에 기거하며 혼자 파리의 뒷골목을 탐닉하는 이른바 나 홀로 여행이었다. 샹젤리제를 어슬렁거리기에는 당연히 주머니가 가볍고, 루브르는 너무 복잡했다. 그래서 짧은 자투리 시간에는 몽소나 뤽상부르 등 시내 공원을 걸어 다니다 문득 하루 날을 정해 오베르를 다녀오기로 했다. 오베르는 빈센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을 향해 가는 나의 마음은 설렌다. 지난 90년대 신혼 초 아내와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으니 실로 이십여 년 만에 다시 찾는 셈이다. 파리에서 교외선 기차 SNCF를 타고 시간 반을 달리면 오베르가 나온다. 진녹색의 우와즈 강가에 위치한 마을에는 칠월의 태양이 찌릉찌릉하다.



 알려진 대로 반 고흐는 생의 마지막 석 달을 이곳에서 보냈다. 1890년 5월 21일 스스로 귓불을 면도칼로 잘라 창녀에게 선물하는 등 병적인 행각 끝에 생 레미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 퇴원한 반 고흐는 파리 근교 오베르를 찾는다. 그는 그해 여름 이곳에서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키게 된다. 그리고 7월 27일, 마을 뒤 밀밭에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까마귀가 극성을 부린다며 가져간 총으로 스스로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결국 파리에서 달려온 동생 테오의 가슴에 안겨 이틀 뒤 불과 서른일곱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너무나 가난해서 한평생 온기 있는 방에서 자보지도 못했던 화가, 살아생전에는 단 한 점의 그림도 제대로 팔지 못했으나 죽어서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값에 팔리는 화가의 고단한 일생은 이처럼 허무하게 끝난다.



 오베르 마을은 적막강산이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사이프러스 나무는 한여름 햇살이 눈부시고 까마귀가 날던 검푸른 밀밭은 꿈틀거리는 욕망에 뒤척이고 있다. 공동묘지 북쪽에 위치한 무덤에 가 본다. 1914년 이곳으로 이장한 동생 테오와 나란히 묻혀 있는 무덤 주위에는 장미꽃들이 만발해 있다. 그가 얼마나 괴로워했고 또 얼마나 자유로워지고 싶어 했는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그가 말하고자 한 것들을 비로소 우리 모두 알기 시작한다(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무덤 앞에 선 내게 마치 노래 ‘빈센트’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먼 하늘만 눈에 가득 차 온다. 무성한 밀밭은 이제 초록에 지쳐 차라리 검푸르다. 고흐가 몸부림쳤던 들녘은 고요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오베르 교회도 세월과 함께 남몰래 야위어 간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길을 찾았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매체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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