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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시대착오적 육사 예규 고쳐야 한다

중앙일보 2013.07.16 00:38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사관생도는 도덕적 한계(성관계 등)를 위반할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육군사관학교 생도예규 35조).



 ‘사관생도는 규정 위반으로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때 자발적으로 ‘양심보고’ 해야 한다’(예규 22조).



 4학년 생도 진모(23)씨가 육군사관학교 밖으로 외박을 나갔다가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퇴학 처분을 받은 건 이 규정에 걸려서였다. 하지만 진씨는 육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이겼다. 서울행정법원이 최근 퇴학 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성관계는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며 “양심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징계하면 헌법 19조에 따른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본지 7월 15일자 16면>



 일반 대학에서 생도 예규 35조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어떨까. 신경림 이화여대(간호학) 교수팀이 2011년 전국 남녀 대학생 6000명을 설문한 결과 남학생의 51%, 여학생의 19%가 “성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연구 결과대로라면 상당수 대학생은 퇴학 처분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 육사 출신의 한 30대 장교는 “일반 대학과 달리 엄격한 규율과 통제 아래 생활하는 육사란 점을 감안하더라도 예규에 시대착오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예규의 뿌리는 일명 ‘3금’(三禁, 금주·금연·금혼) 제도다. 찬반 논란 속에서도 1952년 이후 60여 년간 유지돼 온 규정이다. 육사는 이를 어길 경우 바로 퇴교 조치한다. 미국 웨스트포인트(육사)의 생도 명예 규정(Cadet Honor Code)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웨스트포인트에선 이미 폐기된 제도다. 선진국 사관학교에선 생도의 혼인이나 성관계·흡연을 허용하는 추세다.



특히 자신뿐 아니라 동료의 3금 위반 사실까지 보고하도록 규정한 예규 22조(양심보고) 때문에 많은 생도가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고 한다. 보고를 강요한다면 이미 ‘양심’ 보고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육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민 세금으로 공부하는 사관 생도라면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며 “정직하지 못한 생도가 졸업해 나라를 지키는 장교가 된다면 누가 군을 믿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5월 육사 교내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고 때문에 사관생도의 성(性)군기를 바로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 육사는 여생도 입학(1998년), 이성교제 허용(2005년) 등 사회가 용인하는 수준에서 합리적으로 규제를 풀어 왔다. 군인의 본분은 굳게 지켜야 한다. 하지만 시대착오적 예규를 수정하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육사 생도가 자랑하는 ‘명예와 리더십’은 고집이 아니라 합리적 소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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