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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구실 못한 학교폭력 대책자치위, 불만 키워

중앙일보 2013.07.16 00:37 종합 15면 지면보기
#사례 1. 전남 지역 H고교 2학년인 이모(17)군은 지난 3월부터 고3인 임모(18)군 등 3명에게서 괴롭힘을 당해왔다. 견디다 못한 이군은 지난달 27일 이 사실을 담임교사에게 털어놨다. 학교 측은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자치위)를 열고 임군 등 3명에게 출석정지 명령과 함께 전학 조치를 내렸다. 자치위 결정 직후 이군은 지난 4월 자신이 기숙사에 누워 있을 때 가해학생 안모군이 본 소변이 자신의 얼굴과 목덜미에 튀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학교 측은 지난 6일 전남도교육청에 자치위 결정을 보고할 때 ‘소변 피해’를 누락시켰다. 피해 학부모가 지난 13일 이를 알고 거세게 반발하면서 사태가 커졌다. H고교 관계자는 “자치위가 끝난 직후에야 내용을 파악했고, 이미 징계수위가 결정된 상태라 피해 내용을 추가할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 도교육청은 학교 측이 고의로 폭력사실을 은폐했는지 여부를 확인 중이다.


[이슈추적] 최근 피해 사건 역추적 해보니

신고해도 열지 않고, 열려도 은폐 의혹





 #사례 2. 대구의 한 중학교 3학년생인 이신혜(15·가명)양은 2학년 때인 지난해 9월부터 왕따에 시달렸다. 같은 반 학생 6~7명이 평소에 “냄새 난다” “병신”이라고 놀렸고, 아무도 없는 교실로 끌고가 “옷차림이 그게 뭐냐”며 위협을 가했다. 이양은 그해 11월 자동차 워셔액을 마시고 자살을 시도했다. 어머니 여모(44·여)씨는 딸이 학교폭력에 시달려왔음을 알고 학교에 신고했다. 학교는 자치위를 열었으나 이후에도 괴롭힘은 계속됐다. 이양에게 “또 자살해보라”며 욕설과 폭언을 퍼붓는 아이도 있었다. 이양은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에 두 달간 입원했다. 이후 전학을 갔지만 ‘약극성정동장애(조울증)’ 판정을 받았다. 지금도 학교에 못 가고 치료를 받고 있다. 여씨는 “학교가 초기에 강력하게 대처했더라면 내 딸이 이 지경은 안 됐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사례 3. 지난해 12월 고3 딸의 자살을 겪은 은모(50)씨는 “학교에서 가해자를 밝히고 책임을 지게 하려는 의지를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은씨의 딸은 유서에 “중3때 따돌림을 당했다. 고2 때도 남자애들이 나를 괴롭힐 계획을 다 세웠다. 아직도 그 애들을 보면 치가 떨린다”고 썼다. 은씨가 학교에 신고했지만 학교는 자치위조차 열지 않았다. 학교 측은 “유서에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정 처리? 학부모 아무도 수긍 안 해



 전국 초·중·고교에 설치된 자치위가 제 기능을 다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취재팀은 최근 발생한 학교폭력 사건들을 역추적하고 피해자 학부모 10여 명을 만나 경험담과 의견을 들었다. 그랬더니 학교폭력 사건 이후 학교의 처리 과정이 공정하다고 생각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조정실 회장은 “자치위의 안이한 결정도 문제지만 자치위 개최와 진행 과정에서 더 상처를 입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장대현(13·가명)군도 동급생에게서 따귀를 맞은 폭행 피해자다. 아버지 장모(41)씨는 “자치위가 열렸지만 나와 아이를 따로 불러 얘기를 듣더라”며 “경찰 조사 때나 재판 과정에서도 미성년자는 보호자를 대동하는데 학교가 그러는 게 이해가 안 갔다”고 말했다. 장씨는 “자치위 회의록을 열람한다고 했더니 교직원이 관련 규정도 몰라 허둥댔다”고 말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전국 초·중·고 및 특수학교에서 자치위가 총 3만3686번 열렸다. 이 중 자치위를 통해 확인된 피해학생 수는 총 2만6345명으로 전체 재학생(674만6516명)의 0.4%에 불과했다. 이를 두고 피해자 학부모들은 “학교를 믿고 기다리는 것보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더 신속하게 답이 나온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경찰에 신고된 학교폭력 사건은 지난해 1∼5월 1만4118건에서 올해 같은 기간 4만5567건으로 크게 늘었다.



“학교 믿는 것보다 경찰 신고가 낫다”



 자치위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자치위 구성비율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자치위는 학부모가 과반수이고 교감·교사·경찰·법조인·의사 등 5~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양미진 역량개발실장은 “학부모가 학교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학부모 수를 줄이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교육부 황홍규 학생복지안전관은 “자치위 구성에서 학부모 수를 줄이는 대신 교육이나 학교폭력 전문가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전문 상담사 부족=경기도 내 초등학교에서의 학교폭력은 2011년 87건에서 지난해 174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상담사는 턱없이 부족하다. 경기도의회 최창의 교육의원은 “도내 2226개 초·중·고교에 배치된 상담사는 모두 2203명인데 이 중 초등학교(1183개교) 상담 인력은 376명”이라며 “그마저 교사 자격증을 가진 전문상담 교사는 한 명도 없고 98%가 비정규직”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상담실이 있는 초등학교 10곳 중 3곳은 상담실을 놀리고 있다고 한다. 최 의원은 “상담전문성을 갖춘 학부모 자원봉사 조직을 활용하는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경호·이정봉 기자, 대구=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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