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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네가 낸 길 따라 후배들이 세계 정복 … 옥희야, 푹 쉬거라

중앙일보 2013.07.16 00:13 종합 28면 지면보기
1978년 선발된 여자 프로골퍼 1·2기. 왼쪽부터 안종현(1982년 작고), 한명현(2012년 작고), 강춘자, 구옥희(이상 1기), 배성순, 김성희(이상 2기). [사진 KLPGA]


한국 여자골프의 선구자 구옥희가 지난 10일 자신의 골프 열정을 천상의 그린으로 옮겼다. 향년 57세. 고인은 1978년 한국 최초의 여자 프로가 된 뒤 통산 44승(국내 20승·해외 24승)을 거뒀고,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11대 회장을 지내며 한국 여자 골프의 중흥을 이끌었다. KLPGA 강춘자(57) 수석부회장이 본지에 고인에 대한 헌사를 바쳤다. 강 부회장은 78년 고인과 함께 프로 테스트를 통과한 뒤 평생을 친구이자 라이벌로 지냈다.

고 구옥희 프로의 평생 친구이자 라이벌, 강춘자 KLPGA 부회장의 헌사





구옥희를 처음 만난 건 1976년 3월. 한국남자프로골프협회(KPGA)에서 여자 프로골퍼를 양성하기로 한 직후였다. 당시는 전국의 여자 아마추어 골퍼가 100명 정도였을 만큼 골프를 하는 여성이 극히 드물었다. 구옥희는 그렇게 모인 4명 가운데 하나였다. 짧은 커트 머리에 웃으면 반달 눈이 되는 귀여운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누구보다 지독했다. 123골프장(경기도 고양)의 주말 캐디로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스윙을 익혔고, 일본 골프 잡지를 읽으며 독학으로 골프를 터득했다. 우승 상금이 30만원밖에 되지 않았고, 남성용 대여 채로 연습하다가 여성용 채를 빌려 대회에 나가는 배고픈 시절이었다. 그는 남들과 똑같은 노력은 노력이 아니라고 여긴 사람이었다. 계획한 연습을 마친 뒤 하는 연습이 진짜 연습이고 노력이라고 했다.



 70~80년대 초는 여성의 사회 진출에 걸림돌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78년 프로로 데뷔해 국내 무대에서 15승을 거뒀지만 그의 시선은 세계를 향해 있었다. 83년 일본으로 진출한 뒤 87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다. 큰 무대로 나가 나를 알리고 한국 여자골프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 마늘 냄새가 난다는 눈총 속에서도 실력으로 모든 것을 넘어서려 했던 노력파였다.



 구옥희는 한국 투어 한 시즌 전승(1980년), 7개 대회 연속 우승(1979년 10월~1981년 6월), 한·미·일 3개국 투어 제패, KLPGA 최고령 우승(45세), KLPGA 명예의 전당 헌액 1호 등 ‘최초’ ‘최다’ 기록을 거침없이 작성한 선구자였다.



 그러나 당시는 골프가 대중화되지 않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88년 스탠더드 레지스터 터콰이즈클래식에서 일궈낸 한국인 첫 LPGA 투어 우승조차 10년 뒤 박세리의 등장으로 부각됐다. 하지만 그는 “서운함이 조금 있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나는 내 길을 갈 뿐”이라고 했다.



 생전의 그는 골프를 위해 도를 닦듯이 살았다. “어머니가 몸이 약할 때 나를 낳아 선천적으로 체력이 약했다”며 체력 보완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체력 훈련을 했고 요가와 단전호흡으로 컨디션을 조절했다. 육류나 튀김은 물론 인스턴트 음식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필드에서 구옥희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 화려했지만 개인적인 삶은 별로 그렇지 못했다. 선수 생활을 위해 결혼을 포기했고, 공만 보고 평생을 살아온 탓에 친구도 많지 않았다. 말주변이 없어 무뚝뚝한 인상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속정이 깊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보다 들어주었고 뚝배기 같은 소신을 가진 친구이자 동반자였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해야 하는 연습과 투어 생활까지도 즐긴다”고 했던 그의 열정은 후배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LPGA 통산 25승을 쌓은 박세리의 길을 터줬고, 메이저 3연승을 넘어 캘린더 그랜드슬램에 도전하는 박인비의 오늘을 있게 했다.



 옥희야,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푹 쉬거라. 네가 낸 길을 따라 이렇게 예쁜 후배들이 세계 정상을 정복했고, 또 달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강 부회장은 15일 일본으로 출국, 16일 오후 5시 비행기로 고인을 모시고 귀국한다. KLPGA는 고인의 장례를 협회장으로 치른다. 고인은 18일 화장 후 충남 서산의 선산에서 영원한 휴식에 들어간다.)



정리=이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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