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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다중외교 시대의 6차 방정식

중앙일보 2013.07.15 00:54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박근혜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한·중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새 정부의 외교 활동은 일단 무난하게 출발했다. 지난봄 박근혜정부의 출범을 전후해 북한이 전력투구한 긴장 고조 시도는 한때 한반도의 하늘을 전쟁의 먹구름으로 뒤덮는 듯했지만 워싱턴과 베이징에서 세 정상이 보여준 미소와 여유는 군사적 위협보다 외교적 노력이 국제 관계를 좌우할 것이라는 상황의 논리를 반영하고 있었다.



 이렇듯 새 정부의 외교 노력은 순탄하게 출발했지만 앞으로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다음 주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일본의 정치와 외교는 보다 안정된 페이스를 되찾게 될 것이며, 박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감정보다 이성이 좌우하는 한·일 관계의 발전 방향을 함께 모색하게 될 것이다. 쉽게 해소할 수 없는 한·일 간 역사 인식의 괴리를 어떻게든 좁혀 가야 한다는 역사적 과제에 직면한 양국 국민들이 방향 감각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는 현명한 정치 리더십의 역할이 관건이라 하겠다. 한편, 이번 가을 러시아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회의를 전후해 박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한·러 정상회담을 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와 국경을 나누며 19세기 말부터 우리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겨 온 러시아가 21세기 한반도 미래에 끼칠 수 있는 잠재적 영향력은 실로 방대하다. 그러한 영향력을 어떻게 한·러 양국의 지속적 발전뿐 아니라 한반도 문제 해결로 연결시키느냐 하는 큰 과제가 두 정상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소련이 주도한 동서냉전 초기에 출발한 대한민국의 외교는 대미 관계라는 양자외교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한·미·일 삼자 관계 등으로 외교의 폭을 넓혀 갔고, 드디어는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는 데까지 이르렀지만 한국 외교는 아직도 양자 또는 삼자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는 빠른 속도로 세력의 다극화와 그에 따른 다자외교의 시대로 변천하고 있어 이에 걸맞은 국민 의식의 변화와 외교 전략 및 조직의 개혁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지루하게 긴 세월 실패를 거듭해 온 6자회담이 한 번 더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다자외교 시대에 이러한 관계당사국 회담이 과연 획기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당사자인 우리는 물론,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과 대결의 주역인 남북한 X, Y의 2차 방정식이 미·중·일·러 네 함수를 더한 6차 방정식으로 변형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아베 총리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특사를 보내 납치 문제와 영토 문제 해결의 물꼬를 트려는 외교 이니셔티브를 발휘한 것,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베이징과 모스크바를 연달아 방문하고 있는 것 등이 외교의 6차 방정식이 보여주는 복잡한 함수 관계의 일면이라 하겠다.



 야구 경기나 인간관계에서 더블플레이, 더욱이 트리플플레이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설명할 필요도 없다. 강력한 주권 국가들 사이에서 다자외교의 6차 방정식을 성공적으로 풀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6자가 각자 유럽연합(EU)이나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을 포함한 국제기구, 그리고 200여 개의 국가와 맺은 외교망을 다자외교 분포도에 가산한다면 문제는 더욱 어지러워질 뿐이다.



 그러나 이 어려운 세계사와 국제 정치의 전환기에 우리의 생존과 발전을 담보하며, 통일로의 꿈을 한 발자국씩이라도 진전시키려면 다자외교 시대에 걸맞은 고효율의 조직과 전략의 기획이 필수적이다. 한국은 자주 비교되는 캐나다·호주·네덜란드 등에 비해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민이나 언론, 그리고 정부 조직에서 외교의 중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외교부나 외교 활동 지원에는 습관적으로 주저하는 듯한 경향이 굳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역대 대통령은 나름대로 외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외교 강화에 노력했으나 한국 외교의 획기적 도약, 즉 한국을 세계 유수의 외교 강국으로 상승시키는 데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노출했다. 특히 인력과 조직의 확대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도 외교의 전략적 구상을 담당하는 큰 인물과 고위 정책 조직을 확보하는 데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미래창조’를 국가 발전 노력의 맨 앞에 내건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을 다자외교 시대의 선두주자 중 하나로 평가될 수 있도록 획기적 결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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