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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하방이라도 해야 하나

중앙일보 2013.07.15 00:06 종합 28면 지면보기
정선구
경제부장
벤처업계엔 고수가 한 분 있다. 고영하(61) 고벤처포럼 회장이다. 그는 원래 의사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1974년 유신헌법 반대 학생운동이 인생을 뒤바꿔놨다. 연세대 의대 재학시절 경찰에 연행돼 1년 남짓 복역했고, 복학도 못한 채 사업에 뛰어들었다. 포장마차도 해봤고 오퍼상도 해봤다. 유인태·김부겸 의원과 함께 정치에도 입문해 92년과 96년 총선에선 고배도 마셨다. 그런 그가 벤처에 눈을 뜬 건 2000년대 들어서였다. “앞으론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며 하나TV를 창업했다. 곧이어 회사를 SK텔레콤에 판 뒤 또다시 새롭게 연 인생은 벤처 후학양성과 에인절투자. 처음엔 젊은이 일곱 명을 모아놓고 “한 달에 한 번 밥 사줄 테니 모이자”고 했다. 그게 지금은 300명 규모로 늘었다.



 얼마 전 그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직속 창조경제자문위원회 멤버로도 참여했는데, 바로 그 미래부가 요즘 위기다. ‘창조경제 사이버 박람회’ 사이트는 개설 하루 만에 사라졌다. 엉성하게 준비했다가 망신만 당했다(본지 7월 12일자 1면). 박근혜정부 들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창조경제가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사실 창조경제의 개념은 여전히 모호하지만 현 정부가 방향은 잘 잡았다. 이외엔 딱히 우리 경제를 회복시킬 대안이 없다. 그러나 방법이 틀렸다.



 첫째, 사람이 안 보인다. 막상 창조경제를 실행할 공무원들의 준비가 안 돼 있다. 벤처시장에 깊숙이 들어가 경험해본 인력이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이 분야에 대해 학습만 할 뿐이다. 경제는 꺼져가는데 언제까지 학습에만 매달릴 것인지. 해외에서 활발한 ‘긱스 온 어 플레인(geeks on a plane)’이나 ‘스타트 업 얼라이언스(start-up alliance)’를 아는 사람도 드물다. ‘비행기 위의 괴짜들’이란 뜻의 ‘긱스 온 어 플레인’은 한 국가(혹은 단체)가 전 세계 벤처와 벤처투자 고수들을 전용 비행기로 초청해 여는 행사다. 그저 파티를 여는 것인데도 끈끈한 네트워킹이 여기서 나온다. 이달 초 유망 벤처를 발굴·지원하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얼라이언스가 국내에 발족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창조경제 담당 공무원들은 열정이 있어야 한다. 학습에서 벗어나 몸을 움직여야 한다. 쓸데없이 여는 간담회는 금물이다. 벤처업계 사람을 툭하면 부르는 일도 삼가야 한다. 벤처시장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머릴 맞대야 한다. 말로 안 되면 정부에서 직접 하방(下放)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당원과 공무원들을 벽지 농촌과 공장에 내려보냈듯이 말이다. 혹여 공무원들이 ‘이 정부 5년만 지나면 흐지부지되겠지’라는 안이한 자세로 임한다면 정말 큰일이다.



 둘째, 창업과의 연계성이 빈약하다. 이는 창조경제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는 절대 요소다. 지난 5월 발표된 정부의 벤처·창업 대책은 핵심을 잘 짚었다. 창업은 선순환 체계 구성이 필수다. 벤처를 창업해서 성장시킨 뒤 비싸게 팔고, 그 돈으로 다시 벤처를 만들고…. 벤처 선진국 미국이 그런 경우다. 벤처 인수합병(M&A)이 굉장히 활발하다. 성공한 벤처 지분으로 다른 벤처를 차리는 젊은이들도 있다. 2004년 페이스북 공동창업자들이 그랬다. 크리스 휴즈와 더스틴 모스코비츠는 “핏속의 기업가정신이 내가 가만히 있는 것을 참지 못하게 한다”며 페이스북을 나와 재창업했다.



 우리 정부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벤처생태계 조성(창업→성장→회수→재투자)의 초기 단계인 창업으로 연결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 창업 지원을 위한 펀드 구성만 해도 그렇다. 창조경제 관련 부처들이 저마다 펀드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중구난방 펀드 구성을 체계적으로 잡을 지휘부가 안 보인다. 이러다 펀드만 만들다 세월 다 갈까 두렵다. 그러다 보니 미래부는 주무부처 역할을 못하고,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실도 경제수석실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물론 벤처 세제혜택 같은 요소는 미래부 소관은 아니지만 창업하게 만드는 일은 결국 미래부 몫이다. 싫다면 정부 부처에서 그나마 경험 많은 중소기업청에 주도권을 넘기든지.



정선구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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