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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차이는 ‘팔라’고 쓸 수 있는 문화 … 해외 본사의 정보력도 무기”

중앙선데이 2013.07.14 00:35 331호 20면 지면보기
외국계 증권사의 입김 얘기가 나오면 항상 언급되는 사례. 1998년 10월 29일 나온 노무라증권의 대우그룹 보고서다. ‘대우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대우그룹 침몰의 서곡’으로 불린다. 보고서의 경고는 심각했다. ‘대우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처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엔 워크아웃에 들어갈 수도 있다….’ 보고서가 나온 뒤 채권단들은 무섭게 자금을 회수했다. 자금난이 어찌나 심했던지 다음 달 노무라 증권 서울사무소가 이례적으로 “꼭 대우 주식을 팔라는 건 아니었다”며 해명 자료를 낼 정도였다. 당시 보고서를 직접 작성했던 애널리스트인 고원종(55·사진) 동부증권 사장을 인터뷰했다. 고 사장은 99년 노무라증권을 나와 국내외 금융사에서 경력을 쌓고 2010년부터 동부증권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고원종 동부증권 사장이 전하는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 왜 다른가’

-지난달 JP모건의 보고서로 삼성전자 시총이 하루에 14조원 넘게 증발했다. 외국계 증권사의 보고서가 유독 파급력이 큰 이유는 뭘까.
“글쎄.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쓸 때 ‘시장을 흔들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시장을 분석하고 자신의 직관을 더해 투자자들에게 알린다는 업무에 충실할 뿐이다. 다만 국내 증권사와는 다른 시각이 많아 더 주목을 받는 것 같긴 하다.”

-다른 시각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은 뭘까.
“태생적으로 매도 의견을 내길 꺼리는 국내 증권사의 문화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정보력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매도 의견은 매수 의견보다 쓰기가 더 조심스럽다. 뒷받침하기 위해선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은 외국계 증권사가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해외 본사를 통해 애플·화웨이 같은 경쟁 기업의 정보도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구조에도 차이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 국내 투자자들에게 ‘삼성전자를 팔라’고 하면 ‘그럼 뭘 살까’ 하는 답을 듣는다. 사실 삼성 외에 대안이 별로 없다. JP모건은 고객이 전 세계에 있다. ‘삼성 팔고 애플을 사라’고 쓸 수 있는 거다. 수익 구조도 다르다. 외국계 투자자들은 우수한 보고서를 낸 증권사에 ‘참고가 많이 됐다’며 주문을 몰아 준다. 국내에선 그런 문화가 없다.”

-조사 역량 자체는 차이가 없나.
“조사 인력은 더 적다. 노무라증권 근무 당시엔 애널리스트가 6, 7명에 불과했다. 물론 인력은 굉장히 양질이다. 재무제표만 보는 게 아니라 설비까지 꿰뚫고 있는 기술 연구원을 뽑아 보조를 시켰으니. 또 하나, 계속 강조하지만 시각이 중요하다. 매도 의견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조사하는 것과 매도 의견은 가급적 안 쓰겠다고 생각하고 조사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결과를 낳는다.”

-98년 당시 대우 보고서는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다들 대우가 어렵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그걸 대놓고 얘기하는 이들이 없는 상황에서 논의를 수면으로 끄집어낸 것뿐이다. 정부의 금융회사 회사채 보유 제한 조치가 대우에 결정적인 충격이 될 거라 보고 작성했다.”

-제목과 표현이 셌다.
“사실 매도 의견보다 훨씬 강한 내용이었다. ‘우리는 대우그룹에 대한 조사·연구 작업을 중단한다(discontinue our coverage)’고 썼으니. 변호사에게 검토받은 표현이었다.”

-동부증권에서도 리서치 역량을 키우려 노력하나.
“아까 말했듯이 국내 증권사는 창의적 보고서를 쓴다고 그만큼 수익이 오지 않는다. 사장에겐 리서치 역량뿐 아니라 회사 전체의 수익이 중요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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