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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세상탐사] 선거공약의 정치경제학

중앙선데이 2013.07.14 02:01 331호 31면 지면보기
지난 5일 정부 세종청사에서는 새 정부의 지방공약 이행계획이 발표됐다. 새 정부가 약속한 지방공약사업을 모두 이행하겠다는 것이었다. 지난 5월 발표한 (중앙정부) 공약(이행)가계부에 이어 박근혜정부 공약실천 약속의 완결판이다. 이날 발표만 보면 대선 과정에서 내놓은 공약을 하나도 빠짐없이 꼭 이행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인다. 심지어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은 “사업성이 떨어지는 사업도 지자체와 협의해 대안을 마련해서 꼭 추진하겠다”고까지 했다. 나중에 현오석 부총리도 지방공약의 완전 이행을 거듭 다짐했다.

 그런데 반응이 묘하다. 야당인 민주당이 “차기 정부에 부담을 넘기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난하고 나선 것은 그렇다 치자. 여당인 새누리당은 “정부 입장을 존중한다”면서도 “(정부가) 지방을 홀대하고 있다. 지방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고 날을 세웠다. 이런 식의 공약 이행계획으로는 내년 지방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타당성이 없다고 판명 난 사업까지 다시 검토해 추진하겠다는데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추진 의지가 미흡하다는 평가니 묘하기 짝이 없다.

 이유는 예비 타당성조사를 통해 사업성을 평가한 후 추진 시기를 조절하겠다는 단서 때문이다. 추진 시기를 조절하겠다는 말은 ‘딱 부러지게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임기 내에 사업을 시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상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방점은 예비 타당성조사에 찍힌다. 여기서 사업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은 공약사업은 현 정부 임기 내에는 물 건너 가는 셈이다. 그러니 ‘지방공약사업의 완전 이행’이라는 정부의 발표가 ‘공약의 전면 재검토를 통한 선별적 추진’으로 읽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때 약속한 지방공약 106개를 구체적인 재정사업별로 따지면 167개에 이른다. 이를 모두 이행하려면 무려 124조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여기서 이미 사업타당성 조사를 거쳐 사업이 진행 중인 71개 사업(약 40조원)을 빼면, 96개 사업이 타당성조사의 도마에 오르게 된다. 일단 사업비 규모가 500억원을 넘는 대형 토목사업은 예비 타당성조사와 설계를 하는 데만 최소 2∼3년이 걸린다. 사업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와도 현 정부의 임기 후반에나 착공이 가능하다. 정부의 지방공약 이행계획이 지방공약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로 해석되는 이유다.

 그래서 드는 의문이다. 정부는 왜 ‘지방공약의 타당성을 검토해서 선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하면 간단히 끝날 일을 이처럼 ‘묘한’ 지방공약 이행계획으로 내놓았을까.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대통령의 원칙주의와 공약의 무조건 완전이행은 불가능하다는 현실 사이에서 고심 끝에 내놓은 묘안일 거다. 표면적으로는 ‘공약의 완전이행’을 천명하면서 실제로는 ‘재검토 후 선별 이행’의 내용을 담자니 말이 복잡하게 꼬이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포장술은 지난 5월 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해 대대적으로 발표한 공약가계부에도 동원됐다. 5년간 135조원이 들어갈 대선공약을 전부 실천하겠다며 조목조목 재원조달 계획을 붙였지만, 사업 시행시기를 슬쩍 뒤로 미뤘거나 재원 마련 계획이 명확하지 않은 게 적지 않다. 대표적인 공약사업인 기초연금(국민행복기금) 전면 실시계획은 아직도 지급 대상과 지급 금액을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5세 이하 전면 무상보육도 지자체의 재원 고갈로 중앙정부의 추가 지원을 놓고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공약 완전이행을 강조하다 보니 억지로 재원 조달계획을 짜맞추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문제는 언제까지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공약이행을 계속할 것이냐다. ‘묘한’ 이행계획을 만드느라 고생하는 공무원들도 딱하고, 그걸 해석하느라 애쓰는 정치권도 딱해 보인다.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말은 백 번 맞다. 그러나 그 공약이 과연 다 지킬 수 있는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처음부터 지킬 수 있는 공약만 내놓으면 좋겠지만 신(神)이 아닌 이상 완벽한 공약을 만들 수는 없다.

 또 선거 이후에 재정여건이 달라져 사업 추진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공약 이행’의 원문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충분한 재검토 과정을 거쳐 선별적이고 순차적으로 추진하는 걸 (약속을 안 지켰다고)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겉으로는 공약을 완전 이행한다고 하면서 실제로 그렇게 못하는 게 국민을 더 헷갈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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