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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답십리 택시 대학의 기적

중앙선데이 2013.07.14 02:02 331호 31면 지면보기
13일 서울 답십리의 한 아파트 상가 3층 사무실에선 ‘행동경제학’ 강의가 열렸다. 강사는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인 조승규 교수, 수강생은 스무 명의 택시 기사다. 개인택시 기사인 정태성씨가 “세계 최고의 택시 기사를 길러내겠다”며 지난 5월 문을 연 비전택시대학 1기의 9주차 수업이다. <본지 6월 2일자 12면>

 조 교수는 이 강의를 자청했다. 지난달 초, “싱가포르에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며 기자에게 대학 연락처를 물어왔다. 마침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을 찾았고, 정씨를 찾아가 강의 내용을 상의했다. 그냥 강의만 한 게 아니다. 친구 교수와 기업인도 소개시켰다. “제가 싱가포르에 돌아가더라도 제 친구들이 택시 기사님들께 경험을 나눠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정씨의 무엇이 조 교수를 움직이게 했을까. “처음엔 열정에 감동해서 도움을 주고 싶었지요. 그런데 만나보니 제가 택시 기사님께 배울 게 훨씬 많았어요.” 그는 정씨를 가리켜 “핵심을 꿰뚫은 사람”이라고 했다. “일이란 뭔지, 어떨 때 행복한지를 아는 분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자기 이익보다 남을 위해 일할 때 신이 난다는 것, 친절은 단순한 서비스 기술이 아니라 깊고 넓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죠.”

 본지 기사를 읽고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도 있다. 용달차를 모는 여성 트럭기사 장윤서(56)씨다. 내년 여름께 택시 운전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던 중 기사를 접했다고 했다. “처음엔 일이 바빠서 격주로 수업을 듣겠다고 했어요. 들어보니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 매주 듣고 있어요.”

 그는 “공부보다 더 좋은 게 있다”고 말했다. “택시를 시작하려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택시 기사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잖아요. 대학에서 기사님들 만나면서 정말 좋은 직업이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근무 시간 자유롭죠, 정년 없죠, 많은 사람들 만날 수 있잖아요. 큰돈은 못 벌겠지만 택시를 몰면서 행복 전도사가 되고 싶어요.”

 국내 최초의 택시 대학, 처음엔 택시 영업에 바빠 점점 수강생이 줄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설립 초기 15명이던 수강생은 되레 20명으로 늘어났다. “법률 강의를 해주고 싶다”는 변호사, “특강을 해주고 싶다”는 교수들도 속속 나서고 있다.

 2009년 정씨를 처음 만나고 나서 기자는 한동안 직업에 대해 생각했다. 직업의 가치를 셈하는 시대. 근로 환경과 보수에다 직업의 안정성과 명예를 사칙 연산하고 나서야 좋은 직업과 나쁜 직업을 가르는 시대다.

 처음엔 “세계 최고의 택시 기사가 되겠다”는 정씨의 꿈이 생소하게 들렸다. 저런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참 아름답고 외로운 꿈을 꾸는구나 하고 말이다. 답십리의 10평 남짓한 ‘캠퍼스’에 모여드는 학생들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세상엔 아직도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구나, 이 사람들이 모이니 참 많은 게 바뀔 수 있구나 하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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