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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이 흑색종 잘 걸리는 건 자외선에 약하기 때문

온라인 중앙일보 2013.07.14 01:39
여름철 피서 시즌이다. 약간 그을린 피부가 매력적이라는데 해변에서 선탠을 한번 해볼까? 하지만 조심스럽다. 미국 유학시절 덩굴옻나무에 긁혀 부은 다리 때문에 피부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의사는 벌겋게 부어 오른 피부보다는 어깨에 있는 검은 점을 더 걱정했다.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⑧ 피부색은 왜 다른가

한국 병원에서는 별 이야기를 하지 않던 검은 점에 대해 미국 의사가 신경을 쓰는 이유는 바로 악성피부암인 흑색종(melanoma) 때문이었다. 의사의 흑색종 판단 기준은 피부 점이 다음 어디에 해당하는가이다. 그 점이 비대칭이고, 테두리가 불규칙하고, 여러 종류의 색이고, 크기가 6㎜ 이상이면 흑색종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내 어깨의 점은 6㎜였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1주일 내내 마음고생을 했지만 다행히 암은 아니었다. 그 뒤로 필자는 사우나에서 다른 사람의 몸에 난 점을 유심히 관찰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미국인들에게 피부암은 발생률 1위의 암으로 전체 암의 50%에 육박한다. 그중 악성인 흑색종은 피부암 전체의 2%도 안 되지만 피부암 사망자의 80%가 흑색종일 만큼 치명적이다. 특히 피부에서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경우는 5년 생존율이 15% 미만일 정도로 위험하다. 이에 반해 동양인의 피부암 전체 발생률은 백인의 20%밖에 되지 않으며 한국의 경우 피부암은 전체 암의 1.7%에 불과하다. 흑인의 피부암 발생률은 더 낮아서 백인의 4%다. 피부암 발생률을 기준으로 한 피부 건강 측면에서는 흑인이 백인보다 월등하게 우수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백인들이 피부암에 잘 걸리는 이유는 흰 피부가 의학적으로 외부환경, 특히 태양 빛에 약하기 때문이다.



1 외곽 피부 세포의 SOS 신호를 받은 멜라닌 생성세포(Melanocyte)는 생성된 멜라닌을 가득 채운 색소 주머니(Melanosome)를 급파한다. 2 자외선을 받은 세포가 핵(가운데 둥근 부분) 속의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멜라닌 색소 주머니(검은 반점)로 둘러싼다.




흑인 피부암 발생률은 백인의 4%

옛 속담에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볕에는 딸을 내보낸다’고 했다. 봄볕에서는 얼굴이 검어지고 기미, 주름살이 생기기 때문이다. 예전 시어머니가 오랜 경험으로 가지고 있던 지식은 놀랍게 과학적이어서 실제로 봄의 자외선은 가을의 두 배나 세다. 자외선이 피부의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누구나 잘 알아서 요즘 사람들은 피부 건강에 관심이 크다.



햇빛 속의 자외선은 A·B·C 형으로 구분되는데 자외선 C는 성층권에서 오존에 흡수되고 자외선 A·B만 지구에 도달한다. A는 유리창을 통과해 피부 깊숙이 침투한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늘 받고 있다고 해서 ‘생활 자외선’이라 불리는데 비교적 순한 놈이다. 반면 B는 유리를 통과하지 못하고 야외에서 활동을 할 때 많이 받는 까닭에 ‘야외 자외선’으로 불리는데 조금은 독한 놈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A·B 두 놈 모두 피부 세포에 손상을 준다.



자외선이 피부를 투과하면 유전자를 포함한 세포 내 물질이 변형·파괴된다. 유전자 변형은 돌연변이, 즉 암세포를 만든다. 피부화상을 입을 정도의 햇빛을 다섯 번만 쬐어도 피부암 발생률이 2배나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이러하니 자외선이 피크인 8월 대낮에, 맨몸으로 백사장에서 선탠을 한다면 대단히 위험할 수밖에 없다. 자외선은 또 활성산소라는 유해물질을 피부 내에 만든다. 이 물질은 아주 산화성이 강해 세포를 늙게 만들고 콜라겐을 파괴해 주름살을 만든다. 자외선의 이런 공격에 피부는 속수무책 당하고만 있을까?



물론 무방비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는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검은 색소, 즉 멜라닌 색소를 만들어서 자외선을 막는 일이다. 피부 표면에 있는 세포가 태양빛 속의 자외선을 받으면 SOS 구조 신호를 피부 아래의 멜라닌 생성 세포(Melanocyte)에 보낸다(사진 1). 구조 신호를 받은 세포는 색소 주머니(멜라노솜)에 멜라닌을 가득 채워 급파한다. 신속하게 ‘현장’에 도착한 멜라노솜은 자외선 공격을 받고 있는 세포의 핵을 둘러싼다(사진 2). 핵 속의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둥그렇게 둘러싸는 모습은 얼룩말이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둘러싼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멜라닌 색소는 또 자외선으로 인해 피부 내에 생성된 해로운 물질인 활성산소를 없애는 역할도 한다. 해로운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물질을 항산화제(antioxidant)라 부르는데 과일 속의 비타민C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멜라닌 색소는 자외선에 의해 생긴 두 가지 문제, 즉 유전자 손상과 활성산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피부의 구원자이고 강력한 방어물질인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멜라닌 색소를 많이 만드는 흑인이 지구라는 곳에서는, 즉 햇빛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 지구에서는 백인보다 생물학적으로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단지 검다고 역사적으로 멸시를 당했던 흑인들이 신체 조건에서는 한 수 위인 셈이다.



3 흑ㆍ백ㆍ황ㆍ갈색의 네 가지 피부색은 지구 여러 지역의 자외선의 세기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다. 자료: 위키피디아




피부 색소 차이는 유전적으로 미미

얼굴 색이 흰가 검은가를 결정하는 멜라닌 색소에 관여하는 유전자 종류는 지금까지 212개로 밝혀졌다. 상당히 복잡할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유전자 분석·비교 기술의 발달로 밝혀진 백인과 흑인의 차이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흑인이라고 색소를 만드는 세포 수가 더 많지도 않다. 차이는 멜라닌을 만드는 주머니, 즉 멜라노솜 색소 주머니가 큰가 작은가, 그 안의 색소가 갈색인가 흑색인가로 결정되는데 이에 큰 영향을 주는 유전자도 몇 개 안 된다.



이 몇 안 되는 유전자마저 흑·백 차이가 크지 않다. 2007년, 2010년 학술지 ‘분자 생물학과 진화, 플로스 유전학’(Molecular Biology and Evolution, Plos Genetics)’엔 멜라노솜(색소 주머니)을 만드는 여러 유전자 중 하나인 P 유전자 내 2500개 DNA 사슬(염기) 중 1개만 달라도 피부 밝기가 변한다는 논문이 실렸다. 결국 흑인과 백인의 피부 색소 차이는 유전적으로 아주 미미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진화 초기부터 흑인과 백인으로 나뉘어 있지는 않았고 인류의 조상이 거주 환경에 따라 진화했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 의견이다.



인류는 어떻게 흑인과 백인으로 진화한 것인가?



2013년 3월 과학잡지 ‘현대 생물학(Current biology)’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현생 인류의 조상, 즉 호모사피엔스는 16만 년 전 아프리카 중부지방에 살고 있던 많은 여성 중 한 명이었다. 이 여성이 속한 집단이 기원전 9만5000~6만2000년 전 아프리카를 떠났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모계로만 유전되는 특별한 유전자인 미토콘드리아 내의 유전자가 얼마나 빨리 변하는가를 기준으로 추적된 것이다. 결국 현재 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살다가 유럽, 아시아 등으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일러스트 박정주




다문화가정 힘들게 하는 피부색 편견

그런 의미에서 지구 인류의 조상, 즉 호모사피엔스는 흑인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프리카 중부지역은 자외선이 강해 그곳에 사는 인간은 자외선 방어 능력이 뛰어난, 멜라닌 색소가 많은 흑인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후 유럽으로 이주한 흑인 조상들은 햇빛이 약한 유럽에서 멜라닌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햇빛이 비타민D 합성에 필요해 유럽에서는 거꾸로 햇빛을 잘 받아들이는 흰 피부가 생존에 유리했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현재의 백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던 흑인 조상들이 이주해 그곳의 자연환경에 맞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흑인과 백인의 차이는 결국 인류 조상의 거주지 차이에 따른 결과인 셈이다.(사진 3)



‘흑안세요설부(黑顔細腰雪膚)’, 즉 검은 눈, 가는 허리, 눈 같은 피부. 예부터 전해오는 동양 미인의 조건이다. 흰 피부를 선호하는 경향은 최근 웰빙 붐, 미를 너무 중시하는 유행을 만들고 미백 화장품의 인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피부의 건강 측면에선 검은색이 좋지만 마음은 흰 얼굴로 쏠리는 ‘어려운 문제’를 풀 방법은 무엇일까? 하나는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거나 햇빛에 직접 노출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아니면 항산화제가 많이 든 야채, 과일을 많이 섭취해 피부 내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방법이 있다. 활성산소가 줄면 멜라닌 색소도 덜 필요하다. 그러면 피부가 검어지지 않으면서도 멜라닌의 항산화 기능을 갖게 된다. 기능성 화장품은 이런 항산화 물질들이 피부에 잘 침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희고 건강한 피부를 갖기란 과학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피부가 왜 태양빛에 검어지는지를 이해한다면 피부건강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의 ‘흰 피부 선호’는 때로는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현재 국내 거주 다문화가정은 급증해 인구도 135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정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율(36%)은 유럽(74%)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같은 다문화가정이라도 중국·일본 출신보다 동남아 출신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하다. 동남아 지역은 적도에 가까워서 피부색이 우리보다 검은 편이다.



이런 피부색의 편견이 다문화가정의 주부와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외국인에게 친절하다는 한국인이지만 백인의 흰 피부에만 친절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사람의 피부색이 다른 과학적 이유와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안다면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피부색은 피부색일 뿐이라고.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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