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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를 자원으로 … 청정 수소경제의 발판”

온라인 중앙일보 2013.07.14 01:22
이재영 교수가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기 모형 앞에 서 있다. 촉매를 이용해 질소비료의 원료인 암모니아 생산을 가능케 한 이 기술은 식량 혁명을 이끌었고, 프리츠 하버는 ‘공기로 빵을 만들었다’는 찬사와 함께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광주=오종찬 프리랜서



파워 차세대 <33> 차세대 촉매 파고드는 이재영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기초과학의 매력은 파급 효과가 크고 깊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연구도 결실을 맺으면 개별 기업, 개별 산업 차원을 넘어 인류 문명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죠.”



 광주과학기술원(GIST) 환경공학부 이재영(40) 교수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광주광역시 북구에 GIST 캠퍼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간편한 티셔츠 차림의 그는 가르치고 있는 석·박사 과정 연구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다. 교수라기보다 쾌활한 박사과정 학생쯤으로 보였다.



 이 교수는 촉매 분야에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손꼽히는 신진 학자다. 벌써 127편의 SCI(과학논문색인)급 논문을 발표했고, 61건의 특허를 취득했다. 그는 촉매 분야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에 의존해 온 인류 문명을 영원히 지속 가능한 물, 즉 ‘수소경제’로 바꿔 가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연구 분야가 촉매라는 게 그의 얘기다.



 현대 문명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탄소경제’라고 할 수 있다. 석유·석탄에 포함된 탄화수소를 통해 에너지와 각종 산업용 소재를 얻기 때문이다. 원자력은 잠재적인 위험성과 폐기물 처리 부담이 난제로 남아 있다. 풍력·수력·태양광은 아직 에너지 수요를 채우기에 한참 부족하다. 하지만 ‘물’은 다르다. 자원 고갈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물을 분해해 수소와 산소를 만들고, 이게 다시 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열과 전기 등 에너지가 나온다. 이론적으로는 폐기물 없이 영구적인 재활용(리사이클링)이 가능한 궁극의 에너지원이다. 학자들이 ‘미래 문명은 물로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유다.



산소에서 전자를 얻어내는 산소환원반응(ORR·Oxygen Reduction Reaction)은 연료전지의 핵심 원리다. 촉매는 이 과정을 더 쉽고 빠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효율입니다. 산소와 수소를 만들고, 여기서 다시 전기를 만들 때 경제성이 떨어지면 의미가 없죠. 효율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한 게 바로 촉매입니다.”



 촉매는 화학과 화학공학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다. 촉매에 대한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언제나 문명사적 전환을 불러왔다. 그래서 촉매 연구는 노벨상의 보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촉매 관련 연구에 주어진 노벨 물리·화학상 수상자만도 10명이 넘는다. 이 교수가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딸 때 지도교수였던 게르하르트 에르틀(Gerhard Ertl·77) 교수도 ‘금속 표면의 촉매 반응 연구’로 2007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이 교수는 GIST에 2009년 설립된 ‘에르틀 실용촉매연구센터’ 소장이기도 하다. 센터는 한국·독일 등 국내외 학자들로 구성돼 연구 활동을 진행 중이다. 2009년 설립 이후 센터에서 나온 SCI급 논문만 65편이나 된다.



 이 교수팀의 연구 분야는 크게 두 가지다. 그중 하나는 산소의 환원과 생산을 위한 신개념 고효율 촉매의 개발이다. 수소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해 미래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는 친환경 연료 전지의 핵심 요소다.



 “현재 이 분야 촉매로 가장 좋은 것은 백금입니다. 다 좋은 데 너무 비쌉니다. 저희 연구는 이걸 대체하기 위한 소재를 찾는 기초 연구입니다.”



 백금은 금보다 더 매장량이 적고 값도 비싸다. 최근에는 같은 백금족 원소인 팔라듐 등도 사용되지만 백금보다 상대적으로 값이 쌀 뿐 희귀하고 비싸기는 매한가지다. 이 교수 연구팀은 같은 성능을 내면서 상대적으로 훨씬 흔한 망간·철·코발트·니켈 등으로 이를 대체하는 연구를 한다. 철 가격은 같은 무게의 백금에 비해 수만 분의 1에 불과하다. 제대로 실용화되면 연료전지나 초고용량 배터리 등을 지금보다 훨씬 싼 값에 만들 수 있다. 그런 만큼 전 세계의 수많은 연구소들이 고효율 촉매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 교수팀은 이 분야에서 선도적인 연구팀 중 하나다.







 또 하나의 다른 연구 분야도 흥미롭다.



 “석유·석탄에 의존하는 탄소경제의 가장 골치 아픈 부산물이 바로 이산화탄소예요. 지구온난화의 핵심 물질이거든요. 기존 기술은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거나,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모아 가둬 두는 데 초점을 맞춰 왔죠. 그런데 이미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다시 쓸 수 있다면 어떨까요? 저희 팀의 또 다른 연구 주제는 이산화탄소를 에틸렌처럼 쓸모 있는 자원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에틸렌은 화학산업에선 ‘쌀’과 같은 존재다. 지구온난화의 ‘원흉’인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화학산업의 ‘쌀’인 에틸렌을 만드는 것은 누가 들어도 귀가 솔깃할 얘기다. 화학적 원리는 다 알려져 있다. 문제는 기존 기술로는 이 과정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 교수팀은 새로운 촉매를 이용해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연구를 해왔다.



 이재영 교수팀의 연구 주제는 이렇게 묵직한 것들이다. 그가 이끄는 실용촉매연구센터의 슬로건인 ‘학문적·산업적 파장이 큰(High Risk, High Impact) 연구’에 딱 맞는다. 노벨상 수상자의 제자로, 그 이름을 딴 국제연구센터를 운영하며 ‘문명’을 바꿀 만한 연구를 한다…. 이쯤 되면 이 교수에게도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물어볼 만하다.



 “아직 한참 먼 얘기죠. 지금 하는 연구에서 결과를 내야 하고, 앞으로 더 많은 혁신적인 성과를 계속 낸 뒤에나 생각해 볼 일입니다. 하지만 저희 팀의 연구 분야가 노벨상을 노려볼 만하다는 점은 분명하죠.”



 겸손한 표현이지만 이 교수는 차근차근 해외 학계의 인정을 받는 중이다. 독일에서 공부하던 2002년 세계전기화학학회(ISE)의 ‘젊은 학자상’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에는 ISE에서 40세 미만의 탁월한 학자에게 주는 ‘타지마상(Tajima Prize)’을 수상했다. 독일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으로부터 ‘중견 과학자’ 펠로십을 받아 연구 지원을 받고 있다.



 이야기는 이 교수가 화학의 길로 접어든 과정으로 넘어갔다. 경북 상주 출신인 그는 충북고 재학 시절 ‘벤젠(C6H6) 고리(Benzene Ring)’의 매력에 빠져 화학에 대한 꿈을 키웠다. 인하대 화공학과에서 학사·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박사과정에 들어간 지 1년 만인 98년 말 독일 유학길에 오른다. 다른 과학자들이 보통 미국 유학을 택하는 것과 달리 독일로 간 이유는 뭘까. 사정이 있었다.



 “석사과정을 마친 게 98년 2월이었죠. 외환위기 여파로 온 나라가 암울할 때였습니다. 이공계 남학생들은 현역 입대 대신 병역특례 혜택을 받는 기업이나 연구소에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자리가 확 줄었어요. 병역특례가 가능한 곳을 찾다가 어느 국책 연구소에 들어가는 걸로 얘기가 끝났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뺏겼습니다. 망연자실했죠. 그때 과학재단이 지원하는 독일 울름대학과의 교환 학생 프로그램 얘기를 들었어요. 딱 한 자리를 잡기 위해 전력 투구했죠.”



 생각도 못했던 독일행이었지만, ‘새옹지마’라는 그의 표현대로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 독일 울름대학 표면 및 촉매연구실 연구원 생활을 하던 그는 뮌헨공대로부터의 박사 입학 제의를 뒤로한 채 베를린에 있는 프리츠 하버 연구소에 들어갔다. 프리츠 하버 연구소는 독일 기초과학의 산실인 막스 플랑크 연구협회 안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이곳에서 그에게 학문적 날개를 달아 준 에르틀 교수를 만나게 된다.



 “에르틀 교수는 연구 업적은 물론, 일상 생활도 모범적인 학자입니다. 그분께 연구활동은 물론 독일 생활을 위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3년도 안 돼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분 덕입니다.”



 이 교수는 귀국 후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거쳐 2007년 광주과기원에 자리를 잡았다. 2010년부터는 한국 막스 플랑크 동문회 회장을 맡았다. 한국-독일동문네트워크(ADeKo)의 상임이사이기도 하다. 그는 독일 기초과학의 산실인 막스 플랑크의 연구 모델이 우리나라에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막스 플랑크는 하나의 연구소나 학교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정식 명칭은 막스 플랑크 게젤샤프트(Max Planck Gesellschaft·MPG)로 연구협회·연구진흥재단 등으로 풀이된다. 산하에 분야별로 87개의 연구소가 있다. 기초과학 분야가 많지만 뇌과학 및 의학, 법학 및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 분야의 연구소도 있다. 한마디로 실용성을 따지지 않는 모든 기초학문 분야에서 독일 최고 수준의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들의 연합체다. 막스 플랑크의 연구소 운영 방식은 독특하다.



 “독립성이 최대 특징입니다. 연간 20억 유로(약 3조원)에 이르는 예산의 80%를 중앙·지방 정부에서 지원받지만,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아요. 각 연구소장 또는 부문 책임자가 어떤 연구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전권을 행사합니다. 오직 세상을 바꿀 연구에만 집중합니다.”



 대신 연구소장이나 부문장을 뽑을 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대개 45세 전후의 소장학자를 연구소장으로 뽑아 20년 이상 활동할 기회를 준다. 말 그대로 ‘차세대 주자’를 발굴해 믿고 맡기는 방식이다. 막스 플랑크가 이런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연구 실적 덕분이다. 막스 플랑크는 전신이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 시절을 합쳐 지금까지 3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독일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 101명 중 3분의 1이다.



 이 교수는 국내 막스 플랑크 동문들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에도 열심이다. 독일식 연구 시스템이 한국과 같은 규모의 나라에 잘 맞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 막스 플랑크는 현재 박근혜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기초과학연구원(IBS)의 벤치마킹 모델 중 하나다.



 “미국식 교육·연구 시스템이 탁월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 한 곳의 기금이 300억 달러가 넘는데, 우리나라의 개별 대학이 그걸 따라갈 수 없죠. 독립적으로 연구를 하면서도 대형 프로젝트 땐 서로 힘을 합치는 독일식 산학연 모델 가운데 우리에게 잘 맞는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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