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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아닌 저주 … 야당 대선불복 종지부 찍겠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3.07.14 01:11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진노했다. 박 대통령은 홍익표 전 민주당 원내대변인의 ‘귀태(鬼胎) 발언’이 나온 지난 11일 오후 참모진에게 자신의 입장을 언급했다고 여권 관계자들이 전했다. “금도를 넘었다” “화룡점정” 등 불편한 심기를 담은 표현들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귀태’발언에 박근혜 대통령 진노한 까닭

홍 전 원내대변인은 11일 국회 브리핑에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란 책 내용을 인용해 “책에 ‘귀태’라는 표현이 나온다. 당시 만주국의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귀태의 후손들이 한국(박 대통령)과 일본(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정상으로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 고위 소식통은 “홍 전 원내대변인의 발언은 단순한 막말이 아니라 지난해 대선 결과와 우리나라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자신을 ‘저주’하는, 도를 넘은 발언으로 박 대통령은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홍 의원이 원내대변인 자격으로 공식 브리핑을 하는 자리에서 이런 발언이 나온 점을 중시했다고 한다. 의원 개인이 아니라 민주당 입장이 아니냐는 판단에서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도 “박 대통령이 엄청나게 화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홍 전 원내대변인이 쓴 트위터 내용에도 심기가 불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홍 의원은 브리핑 전날인 10일 트위터에 “18대 대선 결과는 국정원당과 새누리원의 합작”이라며 “기회는 불평등했고, 과정은 더욱 불공정했으며 그 결과는 전혀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글을 썼다. 지난 4월 22일에는 “18대 대선 결과는 무효다. 부전여전”이라며 “박정희는 군대를 이용해 대통령직을 찬탈했고, 그 딸인 박근혜는 국정원과 경찰조직을 이용해 사실상 대통령직을 도둑질한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12일 원내대변인직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홍 전 대변인의 발언은 대선 이후 민주당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대선 불복’의 절정이란 게 박 대통령의 인식이라고 여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민주당은 지난해 대선 직후 일부 재야단체에서 나온 ‘재검표’ 주장에 어정쩡한 모습을 보였다. 또 지난 7일 민주당 광주시당 보고대회에서 임내현 의원이 “(대통령) 선거 원천무효 투쟁이 제기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고, 이후 ‘탄핵’ ‘하야’ 구호가 민주당 보고대회에서 잇따라 터져나왔다. 이어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9일 부산시당 당무위원회에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대화록 불법 유출로 대선이 대단히 불공정하게 치러졌고, 그 혜택을 박 대통령이 받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 뒤 이틀 만에 홍 전 원내대변인의 발언이 나오자 박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불복 시리즈의 ‘화룡점정’이란 인식 아래 강경 대응에 나섰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민주당의 대선 불복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건 경쟁에 대한 본인의 철학도 작용했다고 여권 관계자는 전했다. 박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진 것으로 나타나자 곧바로 승복을 선언했다. 상당수 측근이 “여론조사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며 불복을 주장했지만 박 대통령은 “깨끗이 승복하겠다. 지난 일은 다 잊어버리자”고 연설한 뒤 이명박 후보 지원에 나섰다.



청와대 일각에선 “홍 의원의 원내대변인직 사퇴로 끝날 일이 아니다”라며 ▶홍 전 원내대변인의 의원직 사퇴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직접 사과 ▶민주당 차원의 대선 결과 승복 선언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요구가 박 대통령의 의중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소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민주당의 ‘대선 불복’ 움직임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고, 민생·안보 중심으로 정치가 복원돼야 한다는 게 박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여권 관계자는 전했다.



민주당 내 ‘대선 불복 세력’은 친노 세력과 구주류에 집중돼 있다. 청와대가 민주당에 ‘대선 승복’을 요구하는 배경엔 문 의원을 비롯한 친노·구주류 세력과 당 지도부를 분리시키고,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으로 인한 정통성 시비를 일소해 정국 주도권을 유지해 나가겠다는 포석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 일각에선 이번 발언 파문을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세력의 연대와 연결시키는 주장도 나왔다. 결국 민주당 지도부가 이런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얘기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정희 전 대표가 지난해 총선에 서울 성동을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했던 홍 전 원내대변인의 유세 지원연설을 하며 ‘보석같은 사람’이라 치켜세우는 등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로 알고 있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카기 마사오’라고 비난한 이 전 대표의 발언과 박 전 대통령을 ‘만주국의 귀태’로 표현한 홍 전 원내대변인의 발언이 비슷한 데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정현 홍보수석이 11, 12일 잇따라 브리핑을 열고 민주당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을 끝으로 ‘귀태’ 언급을 중단하고 새누리당에 공을 넘겼다. 새누리당은 13일 민주당과의 원내대표단 회동에서 국회 정상화에 합의했다. 홍 전 원내대변인을 윤리특위에 제소하는 선에서 귀태 정국을 이틀 만에 봉합한 것이다. 홍 전 원내대변인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열람위원 자격도 유지해 주기로 했다. 귀태 정국을 오래 끌 경우 정치권 모두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친박계인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13일 중앙SUNDAY와의 전화통화에서 “여당의 책무를 생각할 때 귀태 정국은 이번 주말을 넘기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특히 13일이 마지막 기회인 공공의료 국정조사를 파행시킬 경우 당에 돌아올 부담감이 컸다”고 설명했다. 당 일각에선 청와대의 강공 드라이브에 제동을 거는 모습도 나왔다. 황우여 대표 비서실장인 여상규 의원은 “12일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의 사과를 받고, 홍 원내대변인이 사퇴하는 선에서 귀태 정국을 끝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우리 쪽에서 가만히 있으면 민주당이 욕을 먹게 돼 있는데, 청와대가 이정현 수석까지 나서서 격하게 얘기하는 건 모양이 좋지 않다는 우려도 나왔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여야가 합의를 발표한 직후 “더 이상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해 이의를 제기할 뜻이 없음을 시사했다. 여야가 국회 정상화에 합의한 마당에 청와대에서 문제를 계속 제기할 경우 박 대통령에게 역풍이 불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청와대 일각에선 새누리당이 너무 성급하게 합의해 줬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왔다. 향후 민주당 내에서 대선 불공정성이나 박근혜정부의 정통성을 문제 삼는 발언이 재발할 경우 청와대가 반발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대표는 “‘할 말을 할 때는 해야 한다’는 박 대통령 특유의 스타일이 작동된 경우로, 민주당의 신속한 사과를 끌어냄으로써 청와대가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며 “하지만 민주당에서 대선 불복을 주장하는 세력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여당이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등 불리한 이슈를 계속 ‘대선 불복’ 프레임으로 덮으려 하면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한길 대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당에 도움이 안 되는 돌출행동을 하는 세력을 억제하고 당내 지도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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