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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더미 기장의 자살 비행” … 알고 보니 밸브 결함

온라인 중앙일보 2013.07.14 01:08
1 1979년 5월 25일 시카고 오헤어공항에서 아메리칸에어라인 191편이 왼쪽 날개 엔진이 떨어져나가는 바람에 이륙 직후 곤두박질치는 모습. 2 1997년 12월 19일 인도네시아 무수강에 추락한 실크에어 185편의 잔해를 조사대가 수거하고 있다. 3 1967년 7월 19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헨더슨빌 상공에서 소형 비행기와 충돌한 피에몬트항공 보잉 727기의 추락 현장. [중앙포토]
푸른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피어나던 1997년 12월 19일 오후 4시12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상공. 35분 전 자카르타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을 박차고 이륙한 뒤 싱가포르를 향해 순항하던 실크에어 185편 보잉 737 여객기가 갑자기 기우뚱거렸다. 순식간에 기수가 밑으로 꺾이면서 수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고도 1만여m 상공에서 광활한 무수강 물 속으로 떨어지는 데는 1분도 안 걸렸다. 기체는 산산조각 났고 승객 97명과 승무원 7명 모두가 숨졌다.


논란 많은 미 NTSB 역대 조사 결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인도네시아 교통안전위원회(NTSC)는 가장 앞섰다고 평가받는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지원을 받아 공동조사에 착수한다. 조사 기간이 3년을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당국은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발표했다. 반면 NTSB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동원한 끝에 충격적인 결론을 내렸다. 항로의 궤적으로 볼 때 조종사가 고의적으로 항공기를 추락시킨 게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자살 시나리오’였다.



NTSB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싱가포르 출신 추웨이밍 기장의 치부를 낱낱이 공개한다. 조사 결과 추 기장은 사고 직전 주식 투자 실패로 빚더미에 앉은 데다 비행 조작 실수로 징계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불행이 그로 하여금 땅으로 돌진하게 만들었다는 게 NTSB의 설명이었다.



NTSB “조종사가 고의로 추락시켰다”

NTSB의 조사 결과는 물론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사고 원인을 조종사 잘못으로 몰아가는 데 대해 실크에어 측은 승복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그럼에도 기체 결함과 같은 다른 원인을 대지 못하는 탓에 이 사고는 조종사의 자살 사건으로 귀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질 무렵 예상치 못한 대반전이 일어난다. 사고를 일으킨 보잉 737의 자동제어장치 밸브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이 밸브에 이상이 생기면 비행기 방향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다.



실제로 91년 이후 방향타 오작동으로 일어난 737기 사고는 7건에 달했다. 91년 3월 콜로라도 스프링에서 25명의 희생자를 낸 유나이티드에어 585편의 충돌사건, 132명이 숨진 피츠버그 유에스에어 427편 사고 모두 이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미 연방항공청(FAA)은 문제의 밸브를 모두 교체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이렇게 되자 조종사의 자살로 단정지었던 NTSB의 판단도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조종사 잘못이라는 논리를 토대로 희생자 가족들이 실크에어를 상대로 싱가포르 법원에 낸 손해배상 소송은 기각됐다. 반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어진 재판에서는 밸브 제조업체의 잘못이 인정돼 440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2004년 내려진다. 결론적으로 이 사고의 원인을 조종사 개인의 잘못으로 돌렸던 NTSB의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이 미 사법부에 의해 확인된 셈이다.



NTSB가 그릇되거나 성급한 판단을 한 건 이 사고뿐만 아니었다. 그간 대형 항공 사건·사고에 대한 NTSB의 분석을 놓고 심각한 논란이 벌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미 역사상 최악의 항공 사고인 79년 아메리칸에어라인(AA) 191편 추락 사건도 대표적 케이스 중 하나다.



이 사건은 79년 5월 25일 시카고 오헤어공항에서 일어났다. 이날 오후 2시50분 271명을 태운 AA 191편 DC-10 여객기가 이륙 직후 왼쪽으로 갑자기 기울어지면서 그대로 땅바닥에 추락, 탑승자 전원과 땅에 있던 2명 등 273명이 숨졌다. NTSB는 처음엔 AA 191편이 소형 비행기와 충돌, 떨어진 것 같다고 발표했다. 추락 지점에서 수거한 비행기 잔해 중 소형 비행기의 부속품이 발견된 탓이다.



그러나 조사가 진행되면서 첫 발표가 사실이 아니라는 게 확인된다. 추락 지점은 과거 비행장으로 쓰였던 곳으로 한 업자가 소형 비행기의 부품들을 여기에 보관해 왔었다는 것이다.



결국 7개월 후인 79년 12월 NTSB는 문제의 비행기 왼쪽 날개 엔진이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참사가 일어났다고 공식 발표한다. 엔진과 날개를 잇는 부품에 손상이 갔는데도 이를 제대로 보완하지 않은 채 운항을 강행했다는 거다.







FBI 등과 알력도 공정한 조사 걸림돌

NTSB의 수모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NTSB가 창설 후 처음으로 맡았던 사건조차 39년 만에 재조사를 받게 되는 이례적 사태를 겪어야 했다. 문제의 사건은 67년 7월 19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헨더슨빌에서 일어난 것으로 79명을 태운 피에몬트 항공사 소속 보잉 727기가 3명이 탄 경비행기 세스나 310과 공중에서 충돌, 전원이 숨진 참사였다. 이 당시 NTSB는 사고 원인을 세스나 조종사의 운항 실수로 결론짓고 조사를 마무리했다.



하나 이렇게 끝날 것 같던 이 사건은 근 40년 만에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된다. 폴 훌이라는 한 아마추어 역사가가 수년간의 집요한 탐사 끝에 NTSB의 조사 과정에서 결정적인 하자들을 발견해 낸 탓이었다. 사고 지점 근처에서 살아온 그는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NTSB의 조사보고서 및 관련 재판 기록 등을 뒤진 결과 몇 가지 중대한 사실을 알아낸다. 먼저 사고 책임을 뒤집어 쓴 세스나 310의 조종사는 충돌 전 상당한 여유를 두고 운항 고도를 바꾸겠다고 관제탑에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관제사들이 제대로만 했다면 충분히 참극을 피할 수 있음을 나타낸 대목이다. 그는 또 충돌 직전 보잉 727기의 조종석 재떨이에서 불이 났었다는 점도 밝혀냈다. 사고 당시 보잉 727기 조종사들이 정신을 딴 곳에 팔았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사실이다. 추가로 당시 NTSB 책임자와 피에몬트 항공사 부사장이 형제여서 심각한 편파조사의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중대하고 새로운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NTSB는 2006년 전면적인 재조사를 선언하고 과거 기록들을 들춰봐야 했다. NTSB 이사회는 결국 그 다음 해인 2007년 2월 재조사 결과를 놓고 투표를 실시해 3대 1로 과거의 판단 내용을 유지키로 결론을 낸다. 조사 결과가 뒤바뀌진 않았지만 NTSB의 명성에 결정적인 흠이 간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연간 1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쓰면서 최첨단 장비로 무장한 NTSB가 때때로 황당한 내용을 발표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먼저 항공 사고 자체의 성격상 그 원인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보잉 747기의 부품은 600만 개에 이른다. 이 때문에 기체에서 이상이 생길 경우 어디가 잘못됐었는지 파악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수만m 상공에서 폭발하거나 추락하게 되면 산산이 흩어진 잔해를 제대로 수거하기도 힘들다.



다음으로 항공사고가 나면 NTSB 외에 연방수사국(FBI) 등 다른 기관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 기관 간의 알력으로 공정한 조사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96년 7월 TWA 800편이 이륙 12분 만에 공중에서 폭발, 230명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들 기관 간의 다툼을 낱낱이 고발하는 장문의 르포기사를 싣기도 했다.



끝으로 NTSB가 자국 이기주의에 편승하거나 미국 거대기업인 보잉사의 편에 서서 편파조사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외국 항공사 소유의 보잉사 여객기가 추락하거나 미국 공항에서 사고가 나면 조종사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전례들로 볼 때 이번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나기 사고에 대한 NTSB의 초기 조사 결과도 어떻게 흘러갈지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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