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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하얼빈의 안중근 의사

중앙일보 2013.07.11 10:52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에서 특이할 사항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조요청이다. 박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에게 “하얼빈 역의 안중근 의사 의거 현장에 기념 표지석의 설치”를 요청하였고 시 주석은 긍정적인 검토를 약속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한중(韓中) 양국 국민이 모두 존경하는 항일 영웅인데 수교 2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러한 요청은 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중국 땅에서 대한인(大韓人)으로서 당시 일본의 침략에 직접 저항한 인물로는 1909년의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역 의거와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구(虹口)공원 의거를 생각할 수 있다. 윤 의사의 경우 한중 수교 이후 현지 교포들이 모금하고 역대 총영사들의 외교노력과 중국정부의 협조를 얻어 과거 홍구공원이던 노신(魯迅)공원 안에 윤봉길의사의 표지석과 함께 윤 의사의 호인 매헌(梅軒)이라는 기념관을 마련하였다. 지금은 기념관 내부도 잘 정돈되어 누구나 상하이에 가면 반드시 찾아보는 명소의 하나가 되었다.



안중근 의사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원로 정치인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하얼빈 역에서 저격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토는 1905년 대한제국의 황제를 협박하여 을사조약을 맺게 하는 등 우리 민족에게는 침략의 원흉이었다. 윤 의사도 안 의사가 저격에 성공하고 “코레야 우라(대한 만세)”라고 통쾌하게 환호하던 모습에 영향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지금 하얼빈 역사(驛舍)에 가보면 아무런 설명 없이 플랫홈 바닥에 안 의사의 저격지점으로 삼각 표시가 되어 있고 이토가 피격되어 쓰러진 곳에 마름모꼴의 표시가 있는 것이 전부이다. 역사의 풍화인지 학습 부족인지 하얼빈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은 안중근 의사를 점점 잊어 가고 있다.



이번 기회에 중국 정부는 하얼빈 역 입구에 표지석을 세워 이곳을 방문하는 한중일(韓中日) 국민 모두가 역사의 진실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본인 중에는 안 의사의 선구적인 동양평화론에 감동하고 따르는 학자가 많다고 한다.



필자는 하얼빈을 수차례 다녀왔다. 하얼빈에 가면 안 의사의 청초당(靑草塘) 유묵비(遺墨碑)을 만나러 자오린공원을 가본다. 자오린공원도 상하이의 노신공원처럼 아름답다. 신 중국 건국 후 중국 정부는 항일영웅 리자오린(李兆麟)을 이곳에 안장하고 공원이름을 자오린공원으로 개명하였다.



하얼빈의 우리 교민들은 안 의사에 대해 각별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안 의사 유해 찾는데 누구보다 앞장서고 중국의 일류 조각가에 의뢰 안 의사의 입상 동상도 자비로 만들었다. 안 의사의 표지석에 이어 그의 기념관이 자오린공원에 세워진다면 가장 기뻐할 사람들은 우리 교민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오린공원은 한중 항일 영웅 두 사람을 기념하는 명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공원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다오” 라고 안 의사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해는 63년이 지난 지금까지 찾지 못해 국내로 봉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노신공원의 윤 의사 기념관처럼 자오린공원에 안의사 기념관이 세워진다면 후손으로서는 마음이 한결 가벼울 것 같다. 박대통령의 또 하나의 방중성과가 중국 땅에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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