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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신뢰의 위기'에 처한 한국 대학

중앙일보 2013.07.11 00:51 종합 31면 지면보기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서울대 교수·물리학
우리 대학들이 또 한번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번에는 교직원의 연금부담금이 문제다. 일부 대학에서 개인이 내야 할 부담금을 학생등록금이 주 수입원인 교비회계로 대신 납부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해당 대학생들은 반발했고, 대학 당국이 학생들의 교육 여건보다 교직원 복지를 먼저 챙긴다는 의구심을 확인시켜준 꼴이 되었다. 사실 대학이 여론의 비판을 받은 일은 처음이 아니다. 교수들의 논문표절 사건은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고, 성희롱·성추행 사건도 드물지 않으며, 연구비의 부정 집행도 심심치 않게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감사원은 얼마 전 거의 모든 대학에 일제히 회계감사를 시행해 부당 집행 사례들을 공개했고, 이것은 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요구의 근거로 쓰이기도 했다. 이런 일이 겹치면서 대학의 권위와 공신력은 형편없이 떨어졌다. 과거에는 대학의 총장들이 사회에서 어른 대접을 받았는데, 요즘은 청소년들조차 대학 총장들을 존경하지 않는 듯하다.



 하기는 대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우리나라에서만 들리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고의 대학들이 즐비한 미국에서조차 최근 ‘대학 때리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도 연구부정사건은 드물지 않은 일이어서 노벨상 수상자이자 대학총장이었던 유명 생물학자가 연구부정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아 총장직에서 물러난 일도 있다. 또한 스탠퍼드대는 정부연구비의 간접비를 총장 공관 유지비 등으로 부정 사용했다는 고발이 있어 수년간 조사를 받기도 했다. 오랜 조사 끝에 대학 측의 혐의는 대부분 벗겨졌지만 이 과정에서 대학의 권위와 평판은 많이 손상됐다. 오죽하면 하버드대의 총장이었던 데릭 보크(Derek Bok) 교수가 “미국에서 대학에 대한 비판이 이렇게 혹독한 때가 없었다”고까지 말했을까.



 이러한 현상에 대해 스탠퍼드대 총장을 지낸 도널드 케네디(Donnald Kennedy) 교수는 첨단연구와 대학 운영에는 점점 많은 자금이 들어가는데 일반 사람들은 대학에 투자하는 만큼 사회에 혜택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분석하고 있다(케네디 저, 『학문의 의무』). 즉 대학이 사회 전체의 공공이익보다 자신들을 위해 사회의 가용자원을 빨아들이는 이익집단의 하나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뢰의 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생 교육에 대한 투자 등 대학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하며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등 공공성 확대에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 대학들은 21세기 융합·창의의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꾸준히 개편하고 있으며, 무료 인터넷 강의 서비스 등 사회를 위한 공헌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대학이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말은 우리에게도 꼭 들어맞는다. 예를 들어 우리 대학들은 그동안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끈 인재들을 키워냈다고 자랑하지만 회사 경영자들은 대학이 현장과 동떨어진 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최근 많은 대학이 연구업적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 세계 대학 랭킹도 상승하는 등 큰 발전을 이뤘지만 학생들이나 일반 국민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이러한 발전이 과연 대학 본연의 임무인 창의적 인재 양성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그들의 가슴에는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교수들이 연구에만 신경을 써서 학생 교육은 등한시하고 있다는 비판도 무성하다. 게다가 연구의 성과물이 우리 사회의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사람이 많다. 심지어 논문 수 증가는 교수들의 이력서만 화려하게 장식하고 대학 랭킹을 올리는 데만 기여한 것 아닌가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다. 그러니 대학등록금이 비싸니 반값으로 하자는 말이 먹혀들어 가고, 총장들이 아무리 대학 운영의 어려움을 호소해도 이익집단 목소리의 하나로 치부되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우리 대학들이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어서는 앞으로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은 역시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대학 본연의 임무인 학생 교육을 더욱 충실히 하고 대학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연금 대납 같은 사건이 터져도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대학 당국자도 없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인 노력을 하는 대학 구성원의 목소리도 별로 들리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필자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 자연대 학장,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제1기 위원,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오세정 기초과학연구원장 서울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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