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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어린이집·요양시설 과속스캔들

중앙일보 2013.07.08 00:57 종합 28면 지면보기
이 질문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잠시 망설였다. 다소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있나요.”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시 한번 물었다. “20년 전에도 없었나요.” 일행 중 한 명이 추가 질문을 던졌다. “아이 등을 때리거나 추운 날 밖에 세워두거나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나요.” “혹시 어린이집에서 정부 지원금을 빼먹기도 하나요.” 그녀의 답변은 “보육소(한국의 어린이집)에서 그런 게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지난달 말 일본의 간병시스템을 보러 갔다가 도쿄도의 무사시노시에 있는 ‘0123보육센터’를 찾았다. 이노 미유키 원장은 질문이 낯선지 여러 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센터를 찾은 이유는 아동학대·보조금 횡령 등이 빈발하는 한국의 답답한 상황 때문이었다. 최근의 어린이집 사고는 대부분 민간시설에서 발생한다. 개인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일본도 민간 어린이집이 많은 편이다. 전체의 절반가량이다. 하지만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 민간시설의 90%가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한다는 점이다. 사실상 공립이라 해도 무방하다. 개인이 하는 데는 1.9%밖에 없다. 한국은 90% 이상이다.



 한국의 노인요양시설도 어린이집과 비슷한 상황이다. 민간시설이 97.4%(사회복지법인 시설을 포함하면 67%)이다. 노인학대나 부정·허위 청구가 주로 민간시설에서 발생한다. 최근 지인은 “어머니를 구립요양시설에 모셨다. 1년 넘게 기다렸다”며 자랑했다. 그 시설 관계자는 “1년 반~2년 기다려야 한다. 이것도 장담하지 못한다. 입주자가 사망해야 자리가 생긴다”고 말한다. 애가 태어나기 전부터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두는 어린이집 상황과 비슷하다. 어린이집이든 요양시설이든 국공립시설에 들어가면 로또에 당첨됐다고들 한다.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기이한 광경일 것이다.



 어린이집과 노인요양시설 문제는 ‘과속스캔들’이다. 빛의 속도로 달렸다. 무상보육은 그 흔한 시범사업 한 번 할 겨를이 없었다. 지난해 정치권이 0~2세 무상보육을 급작스레 시행하면서 가정어린이집이 하루에도 5~6개씩 늘어났을 정도다. 국공립시설을 탄탄하게 늘리면서 확대해야 하는데 대신 민간자원을 끌어들여 공적 역할을 맡겼다. 그것도 선진국처럼 사회복지법인이 아니라 개인에게 맡겼다. 서비스 공급은 어떻게 할지 생각할 틈이 없었다. 지난해 대선에서 박근혜·문재인 후보는 0~5세 무상보육에 이견이 없었다.



 스웨덴도 민간자원이 일부 어린이집에 들어와 있는데, 철저히 공익성을 기준으로 하며 영리기관은 대상에서 배제된다(신필균의 『복지국가 스웨덴』). 독일은 2008년 1~2세의 어린이집 이용을 허용하기로 합의하면서 시행시기를 6년 후로 잡았다. 시설을 확충할 시간적 여유를 준 것이다.



 장기요양보험은 구상한 지 4년 만인 2008년 전면 도입됐다. 정부는 시설이 부족할까 노심초사했고 시간에 쫓겨 모텔(러브호텔)을 요양시설로 개조하도록 허용했다. 지금은 상가 건물 중간층 곳곳에 들어서 있다. 얼마 전 치매노인의 손을 침대에 묶어두다 적발된 경기도의 한 요양원도 상가형 시설이었다. 일본은 준비기간이 10년이 넘었다.



 물론 아동복지와 노인복지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사람도 있지만 ‘돈이 된다’고 생각해 너도나도 뛰어들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시설을 열기도 했다. 보육료와 장기요양보험 수가가 통제를 받으니 이용료를 올릴 수도 없고, 그래서 손해가 발생할 것 같으면 편법의 유혹에 넘어간다.



 한 방에 해결할 묘수는 없다. 국공립시설을 늘리되 새로 짓느니보다 민간시설을 인수해 전환하고, 공공형 어린이집(서울형 포함)을 차근차근 늘리며 사회복지법인·종교법인이 들어오게 유도할 필요가 있다. 부채비율을 낮추거나 허가를 깐깐하게 하면 개인의 진입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시설별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잘하는 데는 더 지원하고 못하는 데는 자연스레 퇴출되게 출구전략을 짜야 한다. 스웨덴은 1970년대에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국가비전을 내세워 아동 정책의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복지국가 스웨덴』). 우리도 정책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신성식 사회부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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