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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서신' 김영환 22년 만에 접선장소 쌍묘 앞에 서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3.07.08 00:01
강화도 갯벌 앞에 선 김영환 위원.
모든 것은 변한다. 한국도, 북한도, 남북 관계도 끊임없이 변해 왔다. 내가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한 1991년 이후 강과 바다에 가로놓인 비무장지대(DMZ)를 사이에 두고 남북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의 지향점은 어디일까.


정전 60년 千의 얼굴, DMZ

내 변화의 출발은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다. 지난 3일 22년 만에 그곳을 찾았다. 91년 5월 칠흑 같은 갯벌에서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을 다녀온 뒤 한 번도 찾지 않던 곳이다. 그곳은 너무 변했다. 곳곳에 포장도로가 들어서고, 산길은 없어졌다. 갯벌은 논과 도로에 자리를 내주고 저만치 물러났다. 산자락엔 펜션·주택·식당이 들어섰다. 산하는 저처럼 변했는데 남북 관계는 얼마나 변했을까.



91년 밀입북 당시 묘향산별장에서 김일성을 만나 이야기한 기억 중 한 토막이 떠오른다. 김일성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탄자니아의 니에레레 대통령과 친하게 지냈소. 그 사람이 아프리카에서는 가장 분명한 사회주의자였거든. 그래서 자주 교류하곤 했는데…. 그런데 그 사람 아들이 마약쟁이요. 니에레레가 자기 나라에서는 그걸 고칠 수가 없어 고심하다 지구에서 가장 확실한 마약 청정국인 우리 조선에 보냈으면 한다고 요청해 왔소. 두 나라 우호를 생각해 받아들였지. 그 녀석이 조선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뒀지만 마약은 구할 수 없었지. 결국 마약을 완전히 끊고 돌아갔소.”



김일성이 왜 이 말을 했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북한이 제3세계 외교에서 우위에 있다는 것, 외국 정상이 개인적 부탁을 할 만큼 신뢰받는다는 것, 자본주의 나라는 썩었지만 북한은 깨끗하다고 과시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중국을 드나드는 북한 상인들은 “북한은 마약이 가장 심하게 창궐하는 나라다. 마약 중독자가 주민의 20%나 된다”고 한다. 20%는 과하다 싶지만 5~10%라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2년 3월 말, 나는 북한인권 관련 활동을 하다 중국 공안 당국에 억류돼 단둥 구치소에 수감됐었다. 그때 같은 방을 쓰던 중국인 마약 사범들은 한결같이 동북 3성 지역의 마약은 90%가 북한산이라고 했다. 마약 청정국이라던 북한이 지금은 세계 최악의 마약 생산국가, 마약 중독국가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북 인식, 북한 당국·주민의 대남 인식, 남북 관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확실히 북한 주민의 대남 인식은 변했다. 주민들 입소문이나 한국 영화·드라마, 대북 방송 때문에 빠르게 변하는 중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다르다. 북한은 변화를 거부해 가장 크게 실패한 대표적인 나라가 됐다.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설 때 북한은 이를 적대시했고,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방향을 틀 때 북한은 문을 걸어 잠근 채 결국 최악으로 추락했다.



우리 사회도 이젠 대북 인식을 바꿔야 한다. 북측의 협박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자신감과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 잔혹한 독재와 국정 실패 때문에 고통받는 북한 주민에게 진정한 애정과 연대의식, 책임감을 느끼면서 남북 관계를 역동적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이다. 냉전도 체제 경쟁도 끝났다. 천안함 피폭과 연평도 포격으로 국민은 분노했지만 박근혜정부는 북한에 상대적으로 관용적 태도를 보일 준비가 돼 있다. 이제 북한이 화답할 차례다. 핵무기를 버리고 개혁·개방에 나서야 한다. 그게 북한이 살길이다.



김영환 북한 민주화네트워크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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