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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의 칼잡이’ 국정원·CJ 독하게 파헤치다

중앙선데이 2013.07.06 22:05 330호 8면 지면보기
지난해 11월 13일 윤석열(현 여주지청장)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 LIG그룹 기업어음 사기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검찰은 당시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을 구속 기소하고 구자원 LIG그룹 회장,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 [뉴시스]
서울중앙지검 특수라인의 핵심들은 대부분 중수부에서 바로 옮겨왔다. ‘리틀 중수부’로 불리는 이유다. CJ그룹 사건은 윤대진(49) 특수2부장(전 중수2과장)이 맡고 있다. 특수1부엔 여환섭(45) 부장검사(전 중수1과장)가, 3부는 박찬호(47) 부장검사(전 디지털수사담당관)가 각각 포진해 있다. 국정원 사건은 윤석열(53) 여주지청장이 팀장으로 있는 특별수사팀의 작품이다. 윤 지청장은 중수부에서 중수2과장, 중수1과장을 거쳤다. 이 네 사람은 모두 검찰에서 ‘칼잡이’로 유명하다. 채동욱 검찰총장과도 인연이 있다. 2006~2007년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있었던 채 총장은 박영수(61) 당시 중수부장 휘하에서 최재경(51) 중수1과장(현 대구지검장) 등 후배 특수통과 호흡을 맞췄다. 윤 지청장과 윤 부장, 여 부장은 채 총장에게서 한 수 배웠던 멤버들이다. 박 부장은 2010년 당시 검찰의 스폰서 검사 진상조사 단장이었던 채 총장과 같이 일한 경험이 있다.

‘리틀 중수부’로 뜬 서울중앙지검 특수라인

윤 지청장과 윤 부장은 대검 중수부 검찰 연구관 때 친분을 쌓아 의형제를 맺었다고 한다. 둘 다 윤씨인 데다 선이 굵고 호탕한 스타일이라서 쉽게 죽이 맞았다는 것이다. 이후로 검찰 내부에선 형님 윤 지청장을 ‘대윤’(大尹), 동생 윤 부장을 ‘소윤’(小尹)이라고 부른다. 대윤·소윤은 조선 중종의 왕비 일가였던 윤임·윤원형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담배를 안 피우는 윤 지청장 사무실엔 한때 재떨이가 놓인 적이 있다. 거의 매일 윤 지청장 방을 들르는 윤 부장을 위한 배려였다. 윤 부장은 끽연가다. ‘양윤’(兩尹)이 서로 급속도로 친해진 이유로 두 사람 모두 비교적 늦게 검사로 임관됐다는 공통점이 꼽힌다. 윤 지청장은 1991년 사법시험 33회, 윤 부장은 93년 사법시험 35회에 각각 합격했다.

“대윤·소윤은 날이 바짝 선 칼 두 자루”
윤석열 지청장은 서울대 법대 79학번이다. 절친한 친구인 남기춘 전 서울남부지검장을 비롯해 석동현(53) 전 서울동부지검장, 김수남(54) 수원지검장, 공상훈(54) 부산고검 차장검사 등과 같은 학번이다. 이들은 학창시절 학교 앞에서 당구를 함께 치거나 하숙방에서 카드놀이를 하면서 우애를 다졌다. 이종석(52)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수석부장판사도 동기다. 그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로 있던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윤 지청장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러면서 “친구는 친구, 일은 일”이라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윤 지청장은 1999년 당시 경찰청 정보국장을 수뢰 혐의로 구속하면서 주목을 끌었다. 2002년 검찰을 나가 법무법인 태평양에 합류했다. 그러나 1년 만에 다시 친정인 검찰로 돌아왔다. 당시 윤 지청장은 “변호사가 체질에 안 맞았다”고 주변에 밝혔다고 한다. 검찰에 복귀하자마자 2003년 말 대검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에 참여했다.
2005~2006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근무하면서 현대차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이를 상부에 보고해 2006년 대검 중수부가 현대차 비자금 사건 수사를 착수케 했다. 윤 지청장은 중수부에 파견돼 수사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윤대진 부장은 서울대 법대 시절 학생운동을 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비교적 늦게 사시에 합격했다는 것이다. 그는 2011~2012년 윤 지청장과 함께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반에서 팀장을 맡았다. 솔로몬저축은행 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이상득(78) 전 새누리당 의원을 구속기소하고 정두언(56) 새누리당 의원, 박지원(71) 민주당 의원을 재판에 넘겼다.
윤 지청장과 윤 부장은 검찰의 소방수로 자주 투입됐다. 2007년 정상명(63) 당시 검찰총장은 신정아 학력의혹·비호 사건에서 두 사람을 수사팀이 차려진 서울서부지검에 파견했다. 검찰의 초동수사가 미흡하고 수사태도가 소극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 지청장은 중수2과장 당시 2010년 10월 C&그룹 비자금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던 중수부의 수사를 재가동한 것이었다. 윤 부장은 2011년 미국 연수를 마친 뒤 ‘화력지원’ 차원에서 중수부에 바로 파견됐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는 “윤 지청장과 윤 부장은 날이 바짝 선 칼 두 자루다. 잘 드는 칼을 녹슬게 놔둘 검찰 지휘부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윤·소윤은 한번 물면 안 놓치는 독종이다. 두 사람에게 조사를 받은 피의자들로부터 ‘저승사자’로 불리는 이유다. 윤 부장에게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는 전 고위 공직자는 “침을 튀겨 가면서 몰아붙이는 데 정신이 아찔했다”고 회상했다.

윤 부장에게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던 사람들의 모임도 있다고 한다. 한 법조계 인사는 “특수부 검사에게서 조사를 받은 적 있는 정치인·기업인·공직자는 아무래도 에고(ego)에 상처를 많이 받게 된다. 그래서 서로 힐링을 하려는 모임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윤 지청장과 윤 부장은 특수라인의 명예를 위해 총대를 메는 일도 있었다. 2006년 4월 현대차 비자금 사건 수사 중 정몽구(75) 회장의 구속여부를 놓고 검찰 지휘부가 고심하던 무렵의 거사(擧事)가 그 한 예다. 재계를 중심으로 정 회장에 대한 선처를 바라는 여론이 강했다. 검찰 지휘부와 중수부 수사팀 간 갈등을 빚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두 사람은 당시 정상명 총장과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법대로 구속해야 한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상명 당시 총장은 웃으며 둘을 돌려보냈다. 결국 정 회장은 구속됐다. 후에 정 전 총장은 사석에서 “검찰엔 사자(공안통)와 호랑이(특수통)가 있다”고 비유했다. 무리를 지어 사냥을 하는 사자와 혼자 먹이를 찾는 호랑이의 습성에 두 종류의 검사를 빗댄 것이다.

일부선 “거악 척결 의욕 너무 앞서” 비판
여환섭 부장 역시 독하게 수사하는 특수검사로 잘 알려졌다. 그는 술이나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 중수부 시절 오후 1시가 한참 지나서야 구내식당으로 내려와 서둘러 밥만 먹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2011년 동부지검 형사6부장 때 건설현장 식당 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강희락(61) 전 경찰청장과 이길범(59) 전 해양경찰청장 등을 구속기소했다. 지난해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사건으로 최시중(76)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53)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이명박정부의 실세들을 구속기소했다. 박찬호 부장도 정통 호남 특수통으로 분류된다. 2003년 대검 공적자금수사반과 대선자금 수사팀에 차출됐다. 특수3부장 부임 후 문충실(63) 서울 동작구청장의 비리 의혹과 4대 강 담합 의혹 수사에 착수했다. 또 ‘고위 법관과 친해 재판에서 이기게 해주겠다’며 수억원을 뜯어낸 법조 브로커 3명을 구속기소했다.

최근 검찰의 주요 수사는 이들 특수통 검사의 뚝심을 보여주고 있다. 윤 지청장은 중앙지검 특수팀을 지휘하며 지난달 원세훈(62)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55)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 과정에서 여권(與圈) 등의 외압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다만 두 사람에 대한 구속기소 의견만은 관철시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 부장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원세훈 전 원장이 건설업자로부터 1억5000만원어치의 현금·순금·명품가방을 받았다는 의혹을 수사 중이다. 지난 4일 원 전 원장을 소환조사한 뒤 5일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원 전 원장을 구속하지 못했던 윤 지청장의 한을 여 부장이 대신 풀어줄 수 있는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구속 여부는 이번 주 초 결정된다.

이들 특수부 라인은 ‘거악을 척결하겠다’는 의욕이 너무 앞서 세기(細技)가 떨어진다는 얘기도 나온다. 윤 부장은 지난해 유동천(73) 전 제일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이철규(56)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을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이 전 청장은 지난 5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전 청장이 유 전 회장과 스폰서 관계를 맺으며 돈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지적했지만 “관련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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