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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정보공개 공화국?

중앙선데이 2013.07.06 22:34 330호 1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 강일구
의사는 비밀을 지키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분석가도 그렇다. 어떤 경우든 환자의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챙기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정치적·종교적 편향성을 강요해도 안 된다. 환자의 속마음을 잘 알고 있으므로 진료실 밖에서 만나 어떠한 개인적인 친분 관계도 맺지 말아야 한다.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랑에 빠지게도 할 수 있고 조종도 할 수 있는 내밀한 정보를 갖고 있어 애초에 동등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윤리적 기준이 헷갈릴 때도 있다. 억울한 일을 당한 내담자들이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분석가인 나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정의감이 불쑥 솟구치기도 한다. 그러나 환자가 살해 위협을 당하거나 확실하게 상해나 살인 의도가 있을 때를 빼고는 분석 상황에서 나온 정보를 노출할 수는 없다. 사실 한쪽으로부터만 듣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과장되거나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 분석가 개인의 공명심과 섣부른 감정적 반응 때문에 사태를 그르칠 수 있으니 당사자가 해결할 수 있도록 북돋고 지켜봐 주는 것이 먼저다.

 국정원·검찰·경찰 등 사찰기관에 있는 이들도 정신과 의사나 분석가처럼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를 이용해 특정한 누구를 공격하고 조종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무려 8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동안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직을 유지했던 에드거 후버는 비밀정보를 담보로 대통령을 좌지우지할 만큼 막강했던 실세였다. 트루먼과 케네디 대통령이 후버를 해임하려 했으나 실패할 정도였다. 찰리 채플린 등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에 대한 공작과 사찰, 마틴 루서 킹 등과 관련해 광범위하고 추악한 권력 남용 등에도 불구하고 죽는 그날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렇게 고급 정보를 쥐고 있는 사람들은 사안에 따라 큰 이익을 볼 수도,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어 어떤 것은 덮고 어떤 것은 화려하게 포장해 써먹기도 한다.

 사실 세상의 누가 자신의 주관적 자의성을 모두 걷어낸 언어를 사용하면서 철저하게 중립적 가치관에 의거해 말하고 행동하겠는가.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미 사초를 엄정하게 기록하기 시작한 우리 전통은 이런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임금조차도 자료에는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역사 기록과 정보 관리에 있어 우리나라가 많이 앞섰다.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나 국익과 관련된 정보를 비공개 대상으로 규정하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도 우리 전통을 토대로 외국법을 수용한 것 같다.

 최근 국정원 원장이 법을 어겨 가면서 대통령의 대화 내용을 공개한 사건, 거대 금융기관의 수장이 미국 정보기관에 사내 정보를 누출시켜 회사에 큰 손해를 입힌 사건 등을 보면 현대 한국의 파워엘리트들은 무오사화·갑자사화를 일으켰던 유림보다 훨씬 더 과거에서 온 건 아닐까. 미국의 스파이 활동을 고발한 스노든이나 어산지는 그 의도에 대한 논란이 있겠지만 실정법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법대로 처벌받을 수밖에 없다. 쫓기고 갇히는 인생이 된 스노든과 어산지에 비해 자신의 조건에 맞춰 정보를 누출한 이들이 당당하게 활보하는 우리 분위기는 좀 이상하다. 모든 정보를 공개하자는 오픈소스 트렌드까지 한국이 선도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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