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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가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중앙선데이 2013.07.06 23:34 330호 27면 지면보기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 강도를 만나게 돼 거의 죽게 됐을 때 지나가던 사마리아인이 정성을 다해 살려주었다는 내용이다. 선행에 관한 이야기이며 도덕적 교훈을 주는 대표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겉과는 달리 의외로 받아들이기 힘들며, 특히 종교적으로는 굉장히 난해한 구석이 있다.

삶과 믿음

여리고로 가는 길은 ‘피의 길’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길이다. 험할 뿐 아니라 언제든지 강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쉽게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게다가 사마리아 사람은 당시에 이 사건이 벌어진 유대 지역 주민과는 원수 이상의 관계였다. 역사의 깊은 상처가 있는 데다 예수가 왔을 무렵엔 관계가 극도로 악화돼 있었다. 게다가 사마리아 사람에 앞서 두 사람이 죽을 지경에 놓인 사람을 지나쳤다. 한 사람은 제사장이고 다른 사람은 레위인이다. 둘 다 종교인들이다. 그것도 그냥 지나간 게 아니라 피해 지나갔다.

반면 사마리아 사람이 도와준 모습은 눈물겹다. 온 정성을 다했을 뿐 아니라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한다. 자기가 타던 나귀에 강도 만난 사람을 태우고 묵을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치료해주고 비용을 부담하고 함께 밤을 보낸다. 이런 배경을 알고 보면 이 이야기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왜 종교인들은 그냥 지나갔고 사마리아 사람은 도와주었을까. 이들의 관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앞의 두 사람은 종교의 관점에서 보았고 뒤의 사마리아 사람은 생명의 관점에서 보았다. 당시 종교인은 함부로 시체를 만져서는 안 되며 개인의 어려움보다는 종교가 가진 고유한 행사와 제도적 책임을 우선시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려면 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사마리아인에겐 이 모든 것보다 생명이 우선이다. 최우선적으로 생명을 돌보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넘어야 할 장벽도 수없이 많다. 종족 간의 깊은 갈등, 계획한 일정의 연기, 시간과 재산의 손실, 자신의 안전 포기…. 무엇보다 두 민족을 차별하고 원수 이상으로 여기도록 했던 종교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 이야기가 종교인들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사뭇 심각하다. 오늘날 다른 종교 간의 갈등, 같은 종교 내의 갈등은 점점 커져만 간다. 기독교에서는 10월 부산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가 열린다. 한국에선 처음이다. 이로 인해 개신교 안에서의 대립이 여간 치열한 게 아니다. 같은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데도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오직 생명에 관심을 가졌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10:10)고 말했다. 이로 인해 당시의 종교인들과 깊은 갈등을 겪었다. 십자가에 달린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이 지은 생명이며 하나님이 사랑하는 생명이다. 생명을 지은 하나님은 교인 못지않게 교회 밖 생명들에게도 관심을 가진다. 어떤 부모가 잃어버린 자식을 잊을 수 있겠으며 그 무엇이 자식의 생명보다 더 귀하겠는가.

기독교가 보다 넓은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니, 생명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생명은 기독교의 최우선 과제이며 모든 수고와 헌신은 생명을 위한 십자가의 사명이다. 종교가 교리와 제도에 관심을 갖고 자체의 번영과 유지에 매달릴 때 생명들은 버려질 것이며 생명의 영도 떠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건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하는 일이다.



박원호 장신대 교수와 미국 디트로이트 한인 연합장로교회 담임목사 등을 지냈다. 현재 ‘건물 없는 교회’로 유명한 주님의 교회 담임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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