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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젊은 중산층의 반란

중앙선데이 2013.07.06 23:57 330호 30면 지면보기
지난달 13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버스요금 인상 때문에 시작돼 전국으로 번진 거리시위는 처음에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브라질 정부도 버스요금 인상이 왜 사회불만으로 확대됐는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발단이야 어쨌든 시민사회에서 누적된 불만이 한꺼번에 표출된 양상이다. 시위대 구호를 살펴보면 “버스요금 인상 반대” “폭력 금지” “부자를 위한 월드컵인가” “사회복지 축소 반대” “정치 부패 척결” 등이다. 또 의료복지·교육투자·사회정의 등을 요구한다. 이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부정부패’다. 이것이 버스요금 인상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시위대는 월드컵(2014년)·올림픽(2016년) 준비에 투자하는 돈으로 교육·의료·주택·치안 등을 강화하라고 요구한다. 그렇다고 월드컵·올림픽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 축구를 밥 먹는 것보다 더 사랑한다는 브라질 국민이지 않나? 이번 시위의 키워드는 지금까지 먼 나라 얘기로 치부됐던 부정부패로 압축된다. 정부가 당초 발표한 월드컵·올림픽 준비 비용과 달리 공사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공사 속도가 지지부진한 데다 치안·교육·의료 같은 공공서비스의 질은 꾸준히 악화돼 왔다. 룰라 정부 시절처럼 경제 호황을 구가한다면 모를까 지금은 그것도 아니다.

 브라질 국민은 공사비용이 늘어난 배경에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있다고 믿는다. 정치인과 기업이 결탁해 국민 세금을 떼먹고 있다고 믿는다. 공공서비스 개선에 들어갈 돈이 정경유착의 검은 배를 채우는 데 새 나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브라질에선 서민·중산층을 위한다는 중도좌파 정부가 11년간(룰라 8년, 지우마 호세프 3년) 집권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우마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요즘 같은 인터넷 시대에 정보는 빠르게 넘치도록 흐른다. 인터넷을 통해 월드컵 준비에 들어간 돈이 약 120억 달러. 그중 80%가 국고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퍼져 나갔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투자비의 80%가 민간에서 나와야 하는데 민간은 투자를 안 하고 오히려 정부 공사를 통해 기업들이 돈을 버는 구조로 변질돼 버렸다.

 브라질 시위의 발단은 사소했다. 지난달 7일 상파울루시 당국이 버스요금을 3헤알(약 1570원)에서 3.2헤알(약 1670원)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것이었다. 불과 100원 인상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상파울루에서 지난달 6일 처음 시위가 시작됐을 때 규모는 2000명 수준이었다. 그러나 경찰의 폭력 진압 사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대학생들이 대거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경찰 시위 진압대와 충돌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브라질 최대 민영방송사인 글로보가 시위대의 과격한 면만 부각시켰다. 그 반작용으로 시민들이 찍은 시위 진압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져 나갔다. 룰라 전 대통령조차 지난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주의는 침묵이 아니다”며 시위대에 힘을 실어 줬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18일 정치적 스승인 룰라를 만났다. 전·현직 대통령은 상파울루 시장을 만나 버스요금 동결을 주문했다. 지우마 정부는 이후 버스·지하철 요금 인상을 백지화했다. 또 월드컵·올림픽과 관련한 비리 색출을 위한 연방검찰의 특별수사도 시사했다. 집권당의 연방의원 뇌물사건(멘살라웅 사건)의 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시민시위는 브라질의 사회구조가 질적으로 바뀌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시위 참가자의 4분의 3이 대졸자이고 절반 이상이 25세 이하다. 80%는 지지 정당이 없다. 시위자들의 절대 다수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젊은 중산층’이다. 이들은 1985년 민주화 이후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고 인터넷과 SNS로 무장한 정보화 세대다. 공공요금 인상 반대 구호 속에는 부정부패 척결을 요구하는 돌직구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래선지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뿐만 아니라 다비드 루이스 같은 축구 스타들도 시위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이들의 주장은 분명하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반하는 경찰의 폭력 진압과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정경유착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브라질 신세대의 구(舊)질서 거부라고 봐야 한다. 내년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지우마 대통령으로선 신세대의 이런 요구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최대 과제다. 정권의 향방이 바뀔 수 있는 갈림길이다.



조희문 고려대 졸업 뒤 브라질 상파울루대학(USP)에서 국제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브라질 변호사. 브라질 상프란시스코대학(USF) 교수와 최대 로펌인 데마레스트의 아시아 담당 파트너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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